서울 백년 가게
이인우 지음 / 꼼지락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 냄새가 나는 이곳, 서울이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내린지 600여년이 흘렀다. 한양에서 경성, 그리고 이젠 서울로 불리고 있는 이 땅은 1000만 시민의 보금자리이자 행정의 중심이 되는 수도로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내가 나고 자란 이 도시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서울 백년 가게>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짓기도 하고 안타까움에 탄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한겨레신문>> 금요 섹션 <서울&>에 연재된 기사를 다듬어 단행본으로 엮은 이 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어 서울의 과거를 잘 간직하고 있는 상점, 업체, 생활공간 중 24곳을 꼽아 소개하고 있다.



이미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가게들도 있고 또 처음 듣는 곳도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곳은 단순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곳을 ‘가봤다’를 넘어 그곳의 역사를 알 수 있어 색달랐다. 보통은 방문했다할지라도 사장님과 도란도란 얼굴을 마주보며 사장님의 인생사, 가게의 우여곡절을 함께 이야기 나눠 볼 기회는 드물기 때문이다.



단순히 오래되어 그 분위기로 유명해졌다고만 여겼던 ‘학림다방’의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된다. 동승로에 위치한 학림다방은 저항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학림(學林)은 학문의 숲, 배움의 숲(p16)이란 뜻으로 문학을 좋아하는 서울대생들의 아지트였다고 한다. 서울대가 관악 캠퍼스로 이전 후에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지금의 주인 이충렬씨에게 인수된 학림다방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다방이 아니라 사회, 문화운동가, 유명, 무명의 사상가, 문인, 예술가가 그 자취를 남긴 곳(p18)이라 하니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곧 우리의 역사가 된 것과 다를 바 없다. 몇 년 전 갔을 때는 관광지화 된 느낌에 조금은 아쉬웠지만 학림의 그 뜻 그대로 ‘학문의 숲’을 느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해본다. 무엇보다 양질의 커피를 브랜드화 시켜서 어느 프랜차이즈와도 뒤처지지 않을 우리만의 역사와 전통을 품은 다방이 탄생하길 바라본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에게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은 음식점이다. 서울식 통추어탕의 용금옥, 돼지 껍대기를 먹은 후 2차를 즐겼던 마포의 터줏대감 을밀대, 안동국시의 선구자 소호정 등, 맛과 분위기로 대중들을 사로잡은 이 식당들은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의정부의 상징과도 같은 부대찌개를 서울에서 꾸린 ‘황해’는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해가 갈수록 사장님의 몸이 여의치 않아 이젠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그곳, 당장 책을 덮고 달려갔다. 세탁소 총각과 음식만큼은 자신 있던 처자의 만남은 특제소스를 비법으로 삼은 ‘황해집 티본 스테이크’로 명성을 날렸다. 지금은 모듬구이와 부대찌개만 판매하지만 이 역시도 오랜 전통의 산물이다. 개인적인 감상평으로는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부대찌개인가 시원한 김치콩나물국인가. 서울식 부대찌개는 의정부의 칼칼함과 달리 시원했다. 신선한 햄과 풍성한 콩나물의 조합은 느끼함과 걸쭉하다는 부대찌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가게들이 새로 문을 열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그만큼 오랜 시간, 역사를 써나가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내부적, 외부적 요인에 의해 매일같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각자의 뚝심으로 수십 년을 견딘 서울의 자랑. 다른 나라의 오래된 가게를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보는 건 어떨까. 이 책에 소개된 가게들뿐만 아니라 지금 성업하고, 앞으로 생길 모든 가게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영원히 간직되길 바란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전통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찰을 해볼 수 있었다. 우리는 너무 편리함과 깨끗함에 익숙해졌기에 이런 가게들을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운 밤이다. 100년을 향해 달려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일까. 사실 이 책에 나온 가게들도 100년이 되기까지는 조금은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100년이 되었을 때 내가 다시 찾을 수 있는 영광이 있을까 걱정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