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
구판절판


미성숙한 자가 성숙한 세계의 위선을 순도 100프로의 시니컬리즘으로 날려버림. 동생의 회전 목마. 순수함에의 동경과 추구.... 위선의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아이들을 지키는 순수성의 상징,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홀든....따위는 평론가나 하라고 하고...

난 이 샐린저의 글투가 몹시나 맘에 들었다. 귀엽기까지 하며 홀든이 여친과 보던 연극에 대한 서술에서는 이 양반은 타고난 얘기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작가가 아니었다면 희대의 사기꾼이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루돌프, 이곳은 흡연석이 아닌 것 같구나˝ 루돌프라,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 마티의 춤은 정말 말 그대로 살인적이었다. 마티와 춤을 추는 것은 자유의 여신상이라도 끌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블랙유머의 진수. 아무리 블랙이라지만 너무 진해서 흘러 넘칠 때 그 낙하해 흐르던 잔해에 밟혀 웃겨 죽을 뻔하였다... 진진하게 읽을수록 끽끽거리게 하는 문장들이 끊임없이 눈을 사로잡으며 책장을 넘기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鳥致院

- 기형도


사내가 달걀을 하나 건넨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1시쯤에
열차는 대전에서 진눈깨비를 만날 것이다.
스팀 장치가 엉망인 까닭에
마스크를 낀 승객 몇몇이 젖은 담배 필터 같은
기침 몇 개를 뱉아내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축축한 의식 속으로
실내등의 어두운 불빛들은 잠깐씩 꺼지곤 하였다.


서울에서 아주 떠나는 기분 이해합니까?
고향으로 가시는 길인가보죠.
이번엔, 진짜, 낙향입니다.
달걀 껍질을 벗기다가 손끝을 다친 듯
사내는 잠시 말이 없다.
조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죠. 서울 생활이란
내 삶에 있어서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과도 같은 것이었어요.
조치원도 꽤 큰 도회지 아닙니까?
서울은 내 둥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방 사람들이 더욱 난폭한 것은 당연하죠.
어두운 차창 밖에는 공중에 뜬 생선 가시처럼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겨울 나무들.
한때 새들을 날려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
어느 계절까지 힘겹게 손을 들고 있는가.
간이역에서 속도를 늦추는 열차의 작은 진동에도
소스라쳐 깨어나는 사람들. 소지품마냥 펼쳐보이는 의심 많은 눈빛이 다시 감기고
좀더 편안한 생을 차지하기 위하여
사투리처럼 몸을 뒤척이는 남자들.
발 밑에는 몹쓸 꿈들이 빵봉지 몇 개로 뒹굴곤 하였다.


그러나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덕분에 저는
도둑질 말고는 다 해보았답니다.
조치원까지 사내는 말이 없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마지막 귀향은 이것이 몇 번째일까. 나는 고개를 흔든다.
나의 졸음은 질 나쁜 성냥처럼 금방 꺼져버린다.
설령 사내를 며칠 후 서울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한들 어떠랴. 누구에게나 겨울을 위하여 한 개쯤의 외투는 갖고 있는 것.


사내는 작은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견고한 지퍼의 모습으로 
그의 입은 가지런한 이빨을 단 한번 열어보인다.

플랫폼 쪽으로 걸어가던 사내가
마주 걸어오던 몇몇 청년들과 부딪친다.
어떤 결의를 애써 감출 때 그렇듯이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인다.
조치원이라 쓴 네온 간판 밑을 사내가 통과하고 있다.
나는 그때 크고 검은 한 마리 새를 본다. 틀림없이
사내는 땅 위를 천천히 날고 있다. 시간은 0시.
눈이 내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미쉬낀 공작....상처받지 않으며, 증오하지 않는 선함과 순수함, 도덕성을 상징하는 인물...


불같은 정열과 싸이코패스와 같은 소유욕외 화신 로고진...미쉬낀과 로고진의 첫 만남. 열차. 초라한 행색, 바보같은 미쉬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드미트리처럼 한 여인을 갖기위해 모든 걸, 심지어 살인미수까지 저지르는 로고진...


구타와 협박, 납치... 마치 스토커처럼 나스따시아를 쫓는 로고진...그에게 벗어나 미쉬낀에게 가고 싶지만... 어쩌면 그리스도적인 선량함과 깨끗함을 가진 그와 맺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 했던...한 여인...로고진과 미쉬낀과의 삼각관계를 이루는 ˝세상을 전복시켜 버릴˝ 미모와, 세상을 죽여버리고 싶은 상처와 모욕감을 자신의 존재이유로 삼았던 나스타시야.... 자신의 유년시절, 자신을 양육해 준 또쯔끼에 더럽혀진 몸과 마음... 자신의 미모를 경매붙이듯 돈으로 사로잡으려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모욕감.. 어쩌면 이러한 그녀가 미쉬낀을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더 컸으리라.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그 대상에게는 상처와 수치로 뒤덮인 자신보다는, 유복하고 아이같은 아글라야가 더 어울릴거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뒤로 밀쳐내는 그녀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자신같은 것`은 광기와 집요함과 비열한 고리대금업자의 피를 이어받은 로고진을 선택하는 편이 나은 것이라 판단한 걸까...분노의 힘으로, 치욕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말... 나스타시아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은 그런 것들이었다. 미쉬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사랑과 순결함을 결여한 처참한 생을 살아 온 그녀....애써 미쉬낀을 밀어내지만 진심을 드러내고 결국 스스로 ˝칼날 아래로 들어가˝는...


1부... 어둑한 계단에서 미쉬낀과 로고진 장면의 섬뜩함...

2부... 로고진의 칙칙한 회색빛 3층 거처에서.... 아마도 960여쪽 어딘가였을 거다...


이건 뭐냐...

이건 도대체 뭐냐...

이게 정말 이렇게 되는건가...


무서웠고, 슬펐다...
읽다가 온몸이 서늘해지고...숨쉬는 것을 잊었다...

묵직한 어둠속...인물들과 함께 모든 상황을 생생히 목격하는 듯한 묘사...


잔인한 천재라는 작가의 예명은 이 작품에서도 배신하지 않는다... 죄와벌의 도끼만큼 충격적이다. 카라마조프가의 드미트리와 그의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운명이 결정된 그날 밤과 같은 심장 멎는 긴장감이다. 악령의 끼릴로프가 옷장과 벽사이에서 불러일으킨 공포감과도 흡사한... 그러면서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리만치 담담히 이어지는 서술과 인물들의 메마른 대화...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로고진의 광기, 나스타시아와 아글라야의 변덕, 이뽈리뜨가 유언을 통해 세상과 죽음에 처한, 자신의 실현하지 못한 이상에 대한 철학적 서술, 레베제프가 보여주는 비열함, 예빤친과 또쯔끼의 도덕적 타락, 그에 대응하는 미쉬낀의 선량함과 용서, 아름다움, 믿음....백치라 놀림 받았지만 그 백치가 가장 현명하고 가장 순수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의미한다면... 그가 다시 백치로 남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지금까지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중에서 가장 서정적이지만 가장 비극적이다.


소설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고....뜬금없지만...

소설속의 바보, 소설속의 백치같은 이는...우리에게도 있었다.

세상을 모른다고, 진중하지 못하다고, 영악스럽지 않다고, 정 맞는 모난 돌같다고...

타락하고 야멸찬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뒤늦게 깨우친, 영원한 바보로 남은 한 사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하촌 「김정한」 - 사하촌, 모래톱 이야기, 수라도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 24
김정한 지음, 신두원 엮음 / 사피엔스21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일제치하이고 그 내용은 지주를 대표하는 보광사라는 절의 땡중들이 사유화한 토지에 소작을 붙여 먹는 농민들의 고통과 자각이다.

저수지 윗마을 보광사는 땡중들의 가족이 사는 마을이다. 일제하에서 토지를 소유할 수 있던 부류는 일제와 결탁한 지주들과 교회, 사찰등이었다. 치삼노인은 자손대대로 복을 받을 것이라는 꾐에 속아 조상이 일구던 땅을 절에 바치고 소작인이 되어 자신의 땅을 빼앗은 중들 얘기만 나오면 천불이 나고 속이 뒤집힌다. 이웃 아래마을의 성동리 사람들은 오래된 가뭄으로 보광사에서 관리하는 저수지의 물을 제 논에 조금이라도 더 대기 위해 서로 멱살을 잡는다. 치삼노인의 아들 들깨는 보광사 땡중과멱살잡이를 하고, 붓목에 물을 대려다 발각된 고서방은 주재소로 끌려간다. 자신들의 빈곤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나락 한 올이라도 살리는게 삶의 이유가 되었다. 보광사 땡중들은 기우제를 지낸다는 명목으로 시주금까지 강요하다시피하며 제를 지내지만 소용이 없다. 당연하다. 보광사 땡중들이 벌인 것은 기雨제가 아니라 기錢제였으니.

고서방같은 이는 극빈한 생활고속에서 살인적인 세금에 못이겨 야반도주를 한다. 상한이는, 교비조차 내지 못해 퇴학당한 아이들과 함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출입금지된 보광사로 통하는 숲에 자란 밤나무의 밤따위를 주우려다 보광사 소유 산지기의 추격에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다. ˝그러길래 왜 도둑질이야˝라는 말이 처참히 짓이겨진 죽은 아이에게 보내진 짐승같은 야유일 뿐. 조합에서 간평을 나온 이들은 애가 타는 소작인들의 술과 음식에 취해 아무렇게나 무거운 소작료를 매긴다. 지독한 가뭄에 밥 한 그릇 지을 나락도 건지기 힘들지만, 군청과 일제 경찰과 사찰땡중들의 수탈은 끝이 없다. 동네 남정네들은 야학당에 모여 밤을 지새운다.
 
야수와 같은 수탈과 횡포에 맞서고 싶지만 땡중들과 이를 비호하는 일제순사들 앞에서 남은 것은, 이자와 소작료를 제 때 갚지 못해 붙은 ˝입도차압˝이란 딱지와, 제 아들 장가도 못보내게 되어 술에 진탕이 되고 보리밥상을 엎어대고 마누라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죽은 손자를 보고 파안대소를 짓는 미친 할머니가 되는 수 밖에 없다. 그러한 간고한 현실과 고통스런 시름을 달래기위해 밤마다 야학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징소리를 내고, 볏짚단을 쥐고, 콩대와 메밀대를 메고 불을 내겠다며 마을을 나선다. 아이들도 뒤꽁무늬를 쫒는다. 보광사로 몰려가 면세와 소작료연기에 대한 요구로 끝나지 않을 듯 하다.  

******

사하촌이라는 이름은, 지명이 아니라. 寺. 下. 즉, 절 아래 마을이다. 절과 절의 가족들이 사는 윗목과 아랫목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이야기 뼈대인데, 같은 조선민족이면서 일제와 결탁해 기득권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는 당시 종교권력들, 사찰의 횡포와 그 폭력에 맞서는 농민들의 자각을 대립구조로 한다.

지금의 현실과 단순치환되긴 어렵겠지만, 본질적으로 뭐가 달라진게 있나 싶다. 보광리와 성동리, 지주-마름-소작인으로 대표되는 봉건제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굳건해 보인다. 부당한 기득권세력. 그 기득권을 비호하고 강화하는데 복무하는 자들. 그들의 기만과 허위에 속기를 반복하는 자들, 저항해도 무참히 밟히는 자들. 검찰과 경찰. 대기업과 하청기업, 투기개발욕과 용산참사, 공권력과 기본권, 귀족노조와 영세노조, 대형교회와 빈층신도들. 강남과 나머지 떨거지들. 빈자와 부자. 엘리트교육과 평준화교육. 브랜드빵집과 동네빵집.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징소리를 내고 볏짚단을 쥐고 콩대와 메밀대를 메고 불을 내겠다고 나서지 않는 선에서 많은 이들이 변화를 모색해왔지만 역사는 그 나약하디 나약한 의지에 참혹한 냉정을 퍼부었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먹이 앞에 침흘리다 먹이를 먹고나면 배를 깔고 잠에 빠지는 개처럼 만들어 놓았다. 자동반응형 개. 자동반응형 국민. 이 자동반응은 저항의식과 마찬가지로 순응의식 또한 자동이 되었다.

그 불들이 모여 활화산처럼 터지지 않는 한 이 구조는 적어도 우리세대에서는 영원할 것이며 어쩌면 세대를 넘어 영속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할 것이다.

 

1936년 작.


 

***** 

 

김정한은 카프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당시 가장 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썼는데, 사하촌은  그 중 대표작의 하나로 소개된다. 물론 그가 사회주의리얼리즘과 계급문학을 표방하는 카프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관념성으로 비판받은 카프작가들에 비해 훨씬 사실적인 묘사와 미래적 낙관주의를 보임으로써 대표적인 리얼리즘 작가로 평가 받는다. 실제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사하촌의 궁핍한 농촌모습과 농민들의 자위로의 인식과 행동으로 향하는 과정을 향토성짙은 어휘와 문장으로 묘사하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고 민족적 색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그는 1940년을 넘어서부터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 통치 강화로 조선말과 글사용이 금지되고, 최남선, 이광수, 서정주와 같은 친일부역문학작가들의 천황과 황군입대를 격려하는 친일 문학이 득세하자, 붓을 꺽었다고 한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20여년 동안의 공백은 그 무엇보다 고통스런 나날들이었겠지만, 친일 작가의 치욕보다 더 컸을까. 그의 문학세계로의 귀환은 1960년대였다. 1996년 별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단, 이 책은 도끼선생의 다른 작품과는 사뭇 다르다. 플롯의 전개나 인물의 심리묘사에 있어 통일적인 구조가 약간은 허물어진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얼핏 보면 말이다, 얼핏 보면...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이 미성년이란 걸 책읽기가 끝나기 전까지 놓치지 않는다면 왜 도선생이 그런 흐트러진 구성과 부조화스러운 심리묘사와 이야기 전개의 형식을 빌었는가를 알 수 있다. 미성년이 성년이 되기 위한 방황과 혼란은 화자와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바로 소설의 구조 자체 또한 미성년에서 성년으로의 편력을 그대로 담아내려는것. 흐트려뜨려놓고 모아가는 구조로 의도적 설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든다. 설사 그런 인식을 못하더라도 읽는 과정에서 저절로 이 책의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은 미성년일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책은 일종의 수기이다. 화자인 아르까지가 유년시절부터 성년이 되기까지의 험난하고 고립되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친부인 베르실로프와의 관계에서,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수기형식을 빌어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까지의 입을 빌어 전개되는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베르실로프이고 그가 바로 미성년의 플롯과 이야기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다.


스포가 될 것 같아 구체적인 줄거리는 생략한다. 너무나 많은 주제와 이야기와 심리묘사가 있는 도끼선생의 책을 몇줄로 요약해내긴 불가능하다.


다만, 아르까지가 끝까지 추구했던 이념에 대해서 몇자 끄적여야겠다. 왜냐하면, 이 이념의 배경과 내용이야말로 그와 주변인물에 대한 판단과 그로 인해서 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방향을 규정짓기 때문이다.

베르실로프의 서자로 거의 내버려지다시피한 아르까지는 그 상처와 복수심으로 세상과의 단절과 고립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트로우마로 자신의 독특한 이념을 추구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영혼과 환경을 온전한 [혼자만의 고독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 관념적인 이념을 향한 실존적 목표는 바로 로스차일드(프랑스은행의 거부)가 되고자하는 것인데 이는 바로 물질적인 궁핍과 사회적인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예를 들어 돈이 없는 부랑자가 거렁뱅이차림으로 사교계를 출입하게 되면 온갖 멸시와 조롱을 받게 되지만 그가 만약 로스차일드처럼 세기의 부자라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우러르고 심지어 그런 옷차림조차 존경의 대상이 되며 그 앞에서 구역질이나 냈을 아름다운 여성들은 그앞에서 온갖 아양을 떨게 될 것이며, 바로 그러한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경제적, 사회적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있다.


그렇다고 탐욕의 화신이 될 생각은 없다. 설사 모은 돈 전부를 기부한다고 해도 그는 일반적인 부호의 이미지-심지어 로스차일드 이상으로!-를 벗어난 어떤 성인의 반열에 설 수 있기 때문에 그것조차 자신을 사회의 일반성을 뛰어넘는 유일한 존재로 만들 것이며 바로 그 상태야말로 타인과 자신을 구분짓는 유일 무이한 상태로 만들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서자로 외톨이로 지내면서 당했던 멸시와 수치에 복수를 하듯, 로스챠일드 정도가 된다면 ˝사회의 눈치보기˝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존재로 홀로 그 고독의 상태에 빠질 수 있는 확실한 토대가 된다는 의미다. 

 그의 이념을 설명하는 이 부분은 무척이나 설득력있게 들리지만 사실 굉장히 유치하기 그지 없다. 로스차일드가 될 수 있는 수학적확률을 말하지만 그만한 능력이 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달성할 목표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을 못하고 있다. 그저 자신이 가졌다는 [강인한 인내심]뿐이다. 의지와 인내심만 가지고 그런 거창한 계획과 이념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아르까지가 자신의 독자적인 영혼과 정신세계를 추구하면서도 결국 [미성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암시이기도 하다.

 

그가 증오해 마지 않던 베르실로프에 대한 오해와 부자가 함께 사랑에 빠진 까쩨리나에 대한 설익은 감정, 베르실로프의 친딸이자 아르까지를 친해하는 노공작 니꼴라이의 약혼자인 안나와 까쩨리나사이에서 벌어지는 [편지]둘러싼 암투, 사기꾼 람베르뜨에 대한 오판에서 [스쮸르뚜쯔]같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아르까지의 이런 돌출되고 성기고 미성숙된 판단과 사고체계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그의 미성숙된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자가 바로 그의 친부인 베르실로프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처럼, 거꾸로 그 아들에 그 아버지인 셈인데, 베르실로프 또한 자신만의 고유한 이념을 향해 전 인생을 허비하는 인물이다. 마치 악령의 스따브로긴같은 지력과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와 매력을 가진 인물. 한때는 그리스도적인 순례의 여정에 나서기도하고, 유럽문명의 황금시대에 대한 관념적판단을 통해 범신론을 바탕으로 공공의 선을 추구하다가 러시아 슬라브주의에 귀착되는 사상적 방황을 숱하게 거치는 인물이지만, 결국 자신의 이상적인 관념과 존재론적 실존의 역동성 사의의 괴리사이에서 분열된 [제2의 자아]의 중력을 거부하지 못하고 정욕과 복수의 화신이 된다. 어찌보면 그의 서자인 아르까지가 겪었던 젊은 시절의 방황과 정신적 편력, 앞으로 겪게 될 지 모르는 대립과 화해의 인생역정을 미리 보여주는 모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아르까지의 성장소설이랄 수 있다. 아직 미성년인 나이의 화자가 유동적이고 정체를 확립하지 못한 자신의 내면세계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미성년을 넘어서 성년으로 성장하기 위해 치열한 자기탐구의 여정이 매우 치열하게 그려지고 있다.

과연 미성년을 넘어서 `성년`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의 의식과 삶에서 완벽한 이념을 성립하고 한치의 실수도 없이 단 한번의 방황도 없이 삶을 살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죽음에 임박하는 그 순간까지도 인간은 오류와 오해와 실수투성이 삶을 산다. 정도와 질의 차이가 있겠지만 미성년의 상태는 지속되는게 아닐까. 그러면서도 뭔가를 성취하고 확립하고자, 이상과 실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여정을 살아가는게 인간이다.

인간세계에서 미성년을 넘어서는 인간은 어쩌면 없을 것이고 있다면, 그는 성년이 아니라 성인으로 불려져야 할 것이다...


* 주요 장면

- 아르까지의 유년시절과 그의 미성숙됐지만 자못 설득력있는 [이념]에 대한 열변

- 제르가쵸프모임에서 이념 논쟁

- 돌에 관한 이야기

- 올랴의 자살

- 아르까지의 기숙사에서 만난 어머니와의 일화....정말...눈물 날 정도로 서정적이고 감상적

- 아르까지의 법적 아버지인 돌고루끼의 순례자적인 인생여정

- 베르실로프의 사상적 편력....유럽 문명사를 통한 자신만의 철학적 이상을 완성해 나가는...

- 까쩨리나와 안나의 [편지]를 둘러싼 암투...

- 베르실로프와 람베르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