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미쉬낀 공작....상처받지 않으며, 증오하지 않는 선함과 순수함, 도덕성을 상징하는 인물...
불같은 정열과 싸이코패스와 같은 소유욕외 화신 로고진...미쉬낀과 로고진의 첫 만남. 열차. 초라한 행색, 바보같은 미쉬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드미트리처럼 한 여인을 갖기위해 모든 걸, 심지어 살인미수까지 저지르는 로고진...
구타와 협박, 납치... 마치 스토커처럼 나스따시아를 쫓는 로고진...그에게 벗어나 미쉬낀에게 가고 싶지만... 어쩌면 그리스도적인 선량함과 깨끗함을 가진 그와 맺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 했던...한 여인...로고진과 미쉬낀과의 삼각관계를 이루는 ˝세상을 전복시켜 버릴˝ 미모와, 세상을 죽여버리고 싶은 상처와 모욕감을 자신의 존재이유로 삼았던 나스타시야.... 자신의 유년시절, 자신을 양육해 준 또쯔끼에 더럽혀진 몸과 마음... 자신의 미모를 경매붙이듯 돈으로 사로잡으려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모욕감.. 어쩌면 이러한 그녀가 미쉬낀을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더 컸으리라.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그 대상에게는 상처와 수치로 뒤덮인 자신보다는, 유복하고 아이같은 아글라야가 더 어울릴거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뒤로 밀쳐내는 그녀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자신같은 것`은 광기와 집요함과 비열한 고리대금업자의 피를 이어받은 로고진을 선택하는 편이 나은 것이라 판단한 걸까...분노의 힘으로, 치욕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말... 나스타시아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은 그런 것들이었다. 미쉬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사랑과 순결함을 결여한 처참한 생을 살아 온 그녀....애써 미쉬낀을 밀어내지만 진심을 드러내고 결국 스스로 ˝칼날 아래로 들어가˝는...
1부... 어둑한 계단에서 미쉬낀과 로고진 장면의 섬뜩함...
2부... 로고진의 칙칙한 회색빛 3층 거처에서.... 아마도 960여쪽 어딘가였을 거다...
이건 뭐냐...
이건 도대체 뭐냐...
이게 정말 이렇게 되는건가...
무서웠고, 슬펐다...
읽다가 온몸이 서늘해지고...숨쉬는 것을 잊었다...
묵직한 어둠속...인물들과 함께 모든 상황을 생생히 목격하는 듯한 묘사...
잔인한 천재라는 작가의 예명은 이 작품에서도 배신하지 않는다... 죄와벌의 도끼만큼 충격적이다. 카라마조프가의 드미트리와 그의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운명이 결정된 그날 밤과 같은 심장 멎는 긴장감이다. 악령의 끼릴로프가 옷장과 벽사이에서 불러일으킨 공포감과도 흡사한... 그러면서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리만치 담담히 이어지는 서술과 인물들의 메마른 대화...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로고진의 광기, 나스타시아와 아글라야의 변덕, 이뽈리뜨가 유언을 통해 세상과 죽음에 처한, 자신의 실현하지 못한 이상에 대한 철학적 서술, 레베제프가 보여주는 비열함, 예빤친과 또쯔끼의 도덕적 타락, 그에 대응하는 미쉬낀의 선량함과 용서, 아름다움, 믿음....백치라 놀림 받았지만 그 백치가 가장 현명하고 가장 순수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의미한다면... 그가 다시 백치로 남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지금까지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중에서 가장 서정적이지만 가장 비극적이다.
소설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고....뜬금없지만...
소설속의 바보, 소설속의 백치같은 이는...우리에게도 있었다.
세상을 모른다고, 진중하지 못하다고, 영악스럽지 않다고, 정 맞는 모난 돌같다고...
타락하고 야멸찬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뒤늦게 깨우친, 영원한 바보로 남은 한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