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촌 「김정한」 - 사하촌, 모래톱 이야기, 수라도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 24
김정한 지음, 신두원 엮음 / 사피엔스21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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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일제치하이고 그 내용은 지주를 대표하는 보광사라는 절의 땡중들이 사유화한 토지에 소작을 붙여 먹는 농민들의 고통과 자각이다.

저수지 윗마을 보광사는 땡중들의 가족이 사는 마을이다. 일제하에서 토지를 소유할 수 있던 부류는 일제와 결탁한 지주들과 교회, 사찰등이었다. 치삼노인은 자손대대로 복을 받을 것이라는 꾐에 속아 조상이 일구던 땅을 절에 바치고 소작인이 되어 자신의 땅을 빼앗은 중들 얘기만 나오면 천불이 나고 속이 뒤집힌다. 이웃 아래마을의 성동리 사람들은 오래된 가뭄으로 보광사에서 관리하는 저수지의 물을 제 논에 조금이라도 더 대기 위해 서로 멱살을 잡는다. 치삼노인의 아들 들깨는 보광사 땡중과멱살잡이를 하고, 붓목에 물을 대려다 발각된 고서방은 주재소로 끌려간다. 자신들의 빈곤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나락 한 올이라도 살리는게 삶의 이유가 되었다. 보광사 땡중들은 기우제를 지낸다는 명목으로 시주금까지 강요하다시피하며 제를 지내지만 소용이 없다. 당연하다. 보광사 땡중들이 벌인 것은 기雨제가 아니라 기錢제였으니.

고서방같은 이는 극빈한 생활고속에서 살인적인 세금에 못이겨 야반도주를 한다. 상한이는, 교비조차 내지 못해 퇴학당한 아이들과 함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출입금지된 보광사로 통하는 숲에 자란 밤나무의 밤따위를 주우려다 보광사 소유 산지기의 추격에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다. ˝그러길래 왜 도둑질이야˝라는 말이 처참히 짓이겨진 죽은 아이에게 보내진 짐승같은 야유일 뿐. 조합에서 간평을 나온 이들은 애가 타는 소작인들의 술과 음식에 취해 아무렇게나 무거운 소작료를 매긴다. 지독한 가뭄에 밥 한 그릇 지을 나락도 건지기 힘들지만, 군청과 일제 경찰과 사찰땡중들의 수탈은 끝이 없다. 동네 남정네들은 야학당에 모여 밤을 지새운다.
 
야수와 같은 수탈과 횡포에 맞서고 싶지만 땡중들과 이를 비호하는 일제순사들 앞에서 남은 것은, 이자와 소작료를 제 때 갚지 못해 붙은 ˝입도차압˝이란 딱지와, 제 아들 장가도 못보내게 되어 술에 진탕이 되고 보리밥상을 엎어대고 마누라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죽은 손자를 보고 파안대소를 짓는 미친 할머니가 되는 수 밖에 없다. 그러한 간고한 현실과 고통스런 시름을 달래기위해 밤마다 야학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징소리를 내고, 볏짚단을 쥐고, 콩대와 메밀대를 메고 불을 내겠다며 마을을 나선다. 아이들도 뒤꽁무늬를 쫒는다. 보광사로 몰려가 면세와 소작료연기에 대한 요구로 끝나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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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촌이라는 이름은, 지명이 아니라. 寺. 下. 즉, 절 아래 마을이다. 절과 절의 가족들이 사는 윗목과 아랫목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이야기 뼈대인데, 같은 조선민족이면서 일제와 결탁해 기득권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는 당시 종교권력들, 사찰의 횡포와 그 폭력에 맞서는 농민들의 자각을 대립구조로 한다.

지금의 현실과 단순치환되긴 어렵겠지만, 본질적으로 뭐가 달라진게 있나 싶다. 보광리와 성동리, 지주-마름-소작인으로 대표되는 봉건제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굳건해 보인다. 부당한 기득권세력. 그 기득권을 비호하고 강화하는데 복무하는 자들. 그들의 기만과 허위에 속기를 반복하는 자들, 저항해도 무참히 밟히는 자들. 검찰과 경찰. 대기업과 하청기업, 투기개발욕과 용산참사, 공권력과 기본권, 귀족노조와 영세노조, 대형교회와 빈층신도들. 강남과 나머지 떨거지들. 빈자와 부자. 엘리트교육과 평준화교육. 브랜드빵집과 동네빵집.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징소리를 내고 볏짚단을 쥐고 콩대와 메밀대를 메고 불을 내겠다고 나서지 않는 선에서 많은 이들이 변화를 모색해왔지만 역사는 그 나약하디 나약한 의지에 참혹한 냉정을 퍼부었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먹이 앞에 침흘리다 먹이를 먹고나면 배를 깔고 잠에 빠지는 개처럼 만들어 놓았다. 자동반응형 개. 자동반응형 국민. 이 자동반응은 저항의식과 마찬가지로 순응의식 또한 자동이 되었다.

그 불들이 모여 활화산처럼 터지지 않는 한 이 구조는 적어도 우리세대에서는 영원할 것이며 어쩌면 세대를 넘어 영속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할 것이다.

 

1936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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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은 카프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당시 가장 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썼는데, 사하촌은  그 중 대표작의 하나로 소개된다. 물론 그가 사회주의리얼리즘과 계급문학을 표방하는 카프의 일원은 아니었지만, 관념성으로 비판받은 카프작가들에 비해 훨씬 사실적인 묘사와 미래적 낙관주의를 보임으로써 대표적인 리얼리즘 작가로 평가 받는다. 실제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사하촌의 궁핍한 농촌모습과 농민들의 자위로의 인식과 행동으로 향하는 과정을 향토성짙은 어휘와 문장으로 묘사하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고 민족적 색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그는 1940년을 넘어서부터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 통치 강화로 조선말과 글사용이 금지되고, 최남선, 이광수, 서정주와 같은 친일부역문학작가들의 천황과 황군입대를 격려하는 친일 문학이 득세하자, 붓을 꺽었다고 한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20여년 동안의 공백은 그 무엇보다 고통스런 나날들이었겠지만, 친일 작가의 치욕보다 더 컸을까. 그의 문학세계로의 귀환은 1960년대였다. 1996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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