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책은 도끼선생의 다른 작품과는 사뭇 다르다. 플롯의 전개나 인물의 심리묘사에 있어 통일적인 구조가 약간은 허물어진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얼핏 보면 말이다, 얼핏 보면...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이 미성년이란 걸 책읽기가 끝나기 전까지 놓치지 않는다면 왜 도선생이 그런 흐트러진 구성과 부조화스러운 심리묘사와 이야기 전개의 형식을 빌었는가를 알 수 있다. 미성년이 성년이 되기 위한 방황과 혼란은 화자와 이야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바로 소설의 구조 자체 또한 미성년에서 성년으로의 편력을 그대로 담아내려는것. 흐트려뜨려놓고 모아가는 구조로 의도적 설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든다. 설사 그런 인식을 못하더라도 읽는 과정에서 저절로 이 책의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은 미성년일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책은 일종의 수기이다. 화자인 아르까지가 유년시절부터 성년이 되기까지의 험난하고 고립되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친부인 베르실로프와의 관계에서,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수기형식을 빌어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까지의 입을 빌어 전개되는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베르실로프이고 그가 바로 미성년의 플롯과 이야기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다.


스포가 될 것 같아 구체적인 줄거리는 생략한다. 너무나 많은 주제와 이야기와 심리묘사가 있는 도끼선생의 책을 몇줄로 요약해내긴 불가능하다.


다만, 아르까지가 끝까지 추구했던 이념에 대해서 몇자 끄적여야겠다. 왜냐하면, 이 이념의 배경과 내용이야말로 그와 주변인물에 대한 판단과 그로 인해서 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방향을 규정짓기 때문이다.

베르실로프의 서자로 거의 내버려지다시피한 아르까지는 그 상처와 복수심으로 세상과의 단절과 고립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트로우마로 자신의 독특한 이념을 추구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영혼과 환경을 온전한 [혼자만의 고독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 관념적인 이념을 향한 실존적 목표는 바로 로스차일드(프랑스은행의 거부)가 되고자하는 것인데 이는 바로 물질적인 궁핍과 사회적인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예를 들어 돈이 없는 부랑자가 거렁뱅이차림으로 사교계를 출입하게 되면 온갖 멸시와 조롱을 받게 되지만 그가 만약 로스차일드처럼 세기의 부자라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우러르고 심지어 그런 옷차림조차 존경의 대상이 되며 그 앞에서 구역질이나 냈을 아름다운 여성들은 그앞에서 온갖 아양을 떨게 될 것이며, 바로 그러한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경제적, 사회적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있다.


그렇다고 탐욕의 화신이 될 생각은 없다. 설사 모은 돈 전부를 기부한다고 해도 그는 일반적인 부호의 이미지-심지어 로스차일드 이상으로!-를 벗어난 어떤 성인의 반열에 설 수 있기 때문에 그것조차 자신을 사회의 일반성을 뛰어넘는 유일한 존재로 만들 것이며 바로 그 상태야말로 타인과 자신을 구분짓는 유일 무이한 상태로 만들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서자로 외톨이로 지내면서 당했던 멸시와 수치에 복수를 하듯, 로스챠일드 정도가 된다면 ˝사회의 눈치보기˝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존재로 홀로 그 고독의 상태에 빠질 수 있는 확실한 토대가 된다는 의미다. 

 그의 이념을 설명하는 이 부분은 무척이나 설득력있게 들리지만 사실 굉장히 유치하기 그지 없다. 로스차일드가 될 수 있는 수학적확률을 말하지만 그만한 능력이 있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달성할 목표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을 못하고 있다. 그저 자신이 가졌다는 [강인한 인내심]뿐이다. 의지와 인내심만 가지고 그런 거창한 계획과 이념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아르까지가 자신의 독자적인 영혼과 정신세계를 추구하면서도 결국 [미성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암시이기도 하다.

 

그가 증오해 마지 않던 베르실로프에 대한 오해와 부자가 함께 사랑에 빠진 까쩨리나에 대한 설익은 감정, 베르실로프의 친딸이자 아르까지를 친해하는 노공작 니꼴라이의 약혼자인 안나와 까쩨리나사이에서 벌어지는 [편지]둘러싼 암투, 사기꾼 람베르뜨에 대한 오판에서 [스쮸르뚜쯔]같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아르까지의 이런 돌출되고 성기고 미성숙된 판단과 사고체계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그의 미성숙된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자가 바로 그의 친부인 베르실로프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처럼, 거꾸로 그 아들에 그 아버지인 셈인데, 베르실로프 또한 자신만의 고유한 이념을 향해 전 인생을 허비하는 인물이다. 마치 악령의 스따브로긴같은 지력과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와 매력을 가진 인물. 한때는 그리스도적인 순례의 여정에 나서기도하고, 유럽문명의 황금시대에 대한 관념적판단을 통해 범신론을 바탕으로 공공의 선을 추구하다가 러시아 슬라브주의에 귀착되는 사상적 방황을 숱하게 거치는 인물이지만, 결국 자신의 이상적인 관념과 존재론적 실존의 역동성 사의의 괴리사이에서 분열된 [제2의 자아]의 중력을 거부하지 못하고 정욕과 복수의 화신이 된다. 어찌보면 그의 서자인 아르까지가 겪었던 젊은 시절의 방황과 정신적 편력, 앞으로 겪게 될 지 모르는 대립과 화해의 인생역정을 미리 보여주는 모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아르까지의 성장소설이랄 수 있다. 아직 미성년인 나이의 화자가 유동적이고 정체를 확립하지 못한 자신의 내면세계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미성년을 넘어서 성년으로 성장하기 위해 치열한 자기탐구의 여정이 매우 치열하게 그려지고 있다.

과연 미성년을 넘어서 `성년`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의 의식과 삶에서 완벽한 이념을 성립하고 한치의 실수도 없이 단 한번의 방황도 없이 삶을 살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아니 어쩌면 죽음에 임박하는 그 순간까지도 인간은 오류와 오해와 실수투성이 삶을 산다. 정도와 질의 차이가 있겠지만 미성년의 상태는 지속되는게 아닐까. 그러면서도 뭔가를 성취하고 확립하고자, 이상과 실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여정을 살아가는게 인간이다.

인간세계에서 미성년을 넘어서는 인간은 어쩌면 없을 것이고 있다면, 그는 성년이 아니라 성인으로 불려져야 할 것이다...


* 주요 장면

- 아르까지의 유년시절과 그의 미성숙됐지만 자못 설득력있는 [이념]에 대한 열변

- 제르가쵸프모임에서 이념 논쟁

- 돌에 관한 이야기

- 올랴의 자살

- 아르까지의 기숙사에서 만난 어머니와의 일화....정말...눈물 날 정도로 서정적이고 감상적

- 아르까지의 법적 아버지인 돌고루끼의 순례자적인 인생여정

- 베르실로프의 사상적 편력....유럽 문명사를 통한 자신만의 철학적 이상을 완성해 나가는...

- 까쩨리나와 안나의 [편지]를 둘러싼 암투...

- 베르실로프와 람베르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