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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명강 동양고전 - 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들이 들려주는 인문학 명강 시리즈 1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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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명강 동양고전편을 읽었다.

어느 재단과 대학교 학술정보원과 공동진행한 '동양고전, 2012년을 말하다'란 강의 내용을 묶어 편찬한 책이다.

인기 대중철학자인 강신주를 비롯하여 고미숙, 박웅현 등 인기 인문학자들이 참여한 짧은 동양고전 강독편인데, 각 챕터 별로 위 인문학자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을 더해 중국, 한국의 인문 고전서의 주요내용을 뽑아 친절히 소개하면서 그 의미를 짚어보고 일깨워 준 점, 무엇보다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줬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사실 나의 책장에 꽂혀있는 장서들은 대부분 서양 사상이나 서양고전문학 등 서양에서 온 것들이 많다. 그것이 곧 나의 취향임을 알았지만 본디 나는 동양인으로 동양사상의 본류 혹은 그 흐름을 알아 나의 현재 삶에 대입하여 나 혹은 내 삶의 위치나 방향 등 그 지침을 얻게 하는 데에 소홀히 하면 안되겠다는 것을 느꼈다.

짧은 단편들이었지만 스치듯 진한 향기에 베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듯하다.

특히 다산 선생과 연암 선생은 다시 찾아 뵙고 싶은 생각이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유배기간동안 철학, 역사, 과학, 지리서 등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서를 후세에 전해주었고, '목민심서'의 절용, 청심 등 마음의 근검을 바탕으로 나라 및 공직자 들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며 백성을 위한 사상을 전파하고 실천해 마지 않은 우리나라 보석같은 학자요, 

연암 박지원은 선비는 모름지기 새벽부터 일어나 책을 읽어야 하며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것을 문장으로 증명해야 한다 설파하며, 청나라 여행하며 쓴 기행문인 '열하일기'에 '명심'을 통해 자유로운 존재자로서 내면의 빛을 바로 볼 수 있는 경험과 길을 제시하며 그 자신이 바로 구원이었음을 증명해 보였으며,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저변에 흐르는 그 의미의 정수를 통찰할 줄 아는 또 한 명의 빛나는 선구자였다.


또 하나 장자에도 관심을 가졌던 바, 강신주가 소개한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오는 대붕과 메추라기 우화는 그야말로 사람에게 진정한 자유의 함의를 적절한 비유로 완벽히 설명한 이야기였다.

소소한 자유에 함몰하는 메추라기가 될 것이냐 거대한 고통의 바람에야 비로소 날아가는 저 장엄한 대붕이 될 것이냐?!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 있지만 그 선택의 무게는 여전히 너무나도 무겁기도 하다.


중국신화 '산해경', 사마천의 '사기', 공자가 달달 외우고 다녔다는 '시경' 그리고 매월당의 금오신화 등 주옥같은 고전들 일일히 거론하긴 벅차지만, 스치는 강렬한 향기의 내음,  내 비로소 '다시' 가슴에 새길 때 아프게 또 한 번 베여 남으리라.


본인처럼 동양고전에 입문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14.10.02

공자는 `시경`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제자들을 꾸짖으며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시는 마음으로 느낀 것을 밖으로 표출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시는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해 준다.
셋째, 시는 개인이 어떻게 세상과 조화롭게 소통하며 방종과 타락에 이르지 않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넷째, 시는 온갖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카타르시스 작용을 한다.
다섯째, 시는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준다.
여섯째, 시를 읽으면 새, 짐승, 풀, 나무 등의 생리와 명칭을 알게 해주는 덤도 있다.
(P.276)

첫째, 대붕은 `자기변형self transformation`의 상징입니다.
....
둘째, 대붕의 비행은 자유롭기 보다는 오히려 의존적입니다.
.....
오직 바다가 움직일 정도의 커다란 바람이 불 경우에만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P.210)

자유라는 나무의 그림자는 고통입니다. 고통의 길이만큼 나무는 높은 겁니다. 거저 얻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을 제거하면 나무를 유지하지 못합니다.(P.212)

(중략)
바람의 부피가 충분히 크지 않으면, 그것은 커다란 양 날개를 실어 나를 수 있는 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새가 9만리를 날아올라 자신의 밑에 바람을 두엇을 때에만, 그 새는 자신의 무게를 바람에 얹을 수 있는 법이다. 그 새가 남쪽으로 향하는 자신의 여정을 시작하려면, 자신의 등에 푸른 하늘을 지고 앞에 명료한 시야를 얻어야만 한다.
(P.213 `소요유`에 실린 또 다른 우화 일부)

...(중략)
제가 `열하일기`에서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는 구절 중의 하나가 "청 문명의 장관은 깨진 기와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게 아주 압권입니다. 모두들 만리장성, 자금성, 요동벌판, 요동백탑 같은 스펙터클에 빠져 있을 때 그는 그 저변에 작동하는 일상의 흐름을 통찰한 것입니다.
...(중략)
가난하고 천한 물건을 재활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문명의 정수를 본 것이죠. 한 나라가 잘 통치되고 있는가는 사람들이 자기 삶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보면 압니다. 얼마나 존중하는지 알려면 일상의 리듬을 보면 되고, 자기가 처한 공간을 얼마나 아끼고 정갈하게 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
결국 자기가 어떤 공간을 만드느냐가 자기 삶의 척도입니다.
(P.391~392)


"이제야 도를 알았도다. 명심(冥心)이 바로 도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명심은 이목에 사로잡힌 분별망상의 허황한 불빛이 꺼진 상태입니다. 그러면 내면의 빛이 나옵니다.
...
`열하일기`는 자기 존재의 완벽한 탈영토화, 다시 말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길을 알려 줍니다. 이러한 연암의 사유를 요즘 서양 철학의 용어를 빌리면 `유목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목주의는 `고도의 유동적 지성`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유목주의는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어디에 있어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열어서 접속하고 아무런 집착과 미련 없이 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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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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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를 통해 알게된 인터넷 서평꾼 이 현우 작가의 블로그 글을 모아놓은 글이다.

(이 독서의 계기로 최근에 자주 로쟈의 저공비행 블로그에 자주 들어가 추천책을 골라 놓곤 한다. 굉장히 유용하다.)

크게 문학, 예술, 철학, 지젝읽기, 번역비평으로 나눈  카테고리를 바탕으로 작가가 섭렵한 책과 영화, 작가(지젝 중심), 전공분야(러시아 문학) 등에 대해 생각하는 바와 느끼는 바를 평론/비평하는 형식이다. 


문학부분에는 클랙식의 의미와 즐거운 도망 혹은 즐거운 저항이라는 책읽기에 대하여 얘기한 부분, 김훈의 문체가 너무 아름다워 소설 쓰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의견 등이 매우 흥미로웠고, 김규항, 고종석의 문체가 매우 뛰어나고 그들이 얘기하는 바를 자신의 생각과 중첩하여 때론 비판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하여 김훈의 소설보다 에세이을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으며, 김규항의 대표작, B급좌파 라는 책은 알라딘 중고서점을 통해 직접 구매했고, 고종석의 문장 등의 책도 구매목록에 담아두었다. 이렇듯 하나의 책 속에서 추천되는 여러 책과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라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김기덕 영화와 쿠스투리차의 영화에 대한 풍부한 리뷰와 해석, 니체, 데리다, 벤야민의 철학을 해박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 로쟈만의 주석 등 쉽진 않지만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는 재미와 더불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 졌으며, 그 간 관심을 가졌던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지젝이 탐구하는 헤겔과 라캉이라는 철학자와 연결시켜 탐구해 보리라는 의욕을 확실히 고취하였다. 

지적인 탐욕을 게걸스럽게 훅 한 번 통독하였지만 더욱 심도 깉은 이해를 위하여는 각 단락을 다시 한 번 정독하며, 정말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다.


마지막 번역비평에 대한 부분도 번역의 중요성과 함께 저자가 우리나라 번역시스템에 대해 지적한 날카롭게 지적한 것들은 되새겨볼 만 하다. 외래의 좋은 책들이 양질의 번역과 만나지 못해 사장되고 곡해되는 것들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다.

나 또한 한 명의 독자로서 그것을 바란다.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읽기란 책도 언급되어 있는 세계문학작품을 먼저 읽어본 후 내 생각과 비교해보며 읽어 보면 큰 도움이 되겠다.


1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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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신은주.홍순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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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바벨의 컴퓨터까지 다 읽고 나서 또 다시 칠일재를, 다시 한 번 바벨의 컴퓨터를 제대로 읽고 나서 첫번 째 백주로 시작되는 단편들의 이야기의 구성과 그 의미의 윤곽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었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찾는 재미와 또한 내가 상상하고 이해한 오역의 즐거움이 합해져 비로소 풍요로워 질 수 있었고, 히라노의 다른 책 "책을 읽는 방법"에서 강조한 '슬로리딩'을 실천한 바 내 빈약했던 독서의 지평과 사고의 높이가 한 차원 도약한 듯한 기분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죽음', '자의식', '가능성', '재생(再生)' 이라는 키워드에서 집약되고 또 확장된다.

「백주」의 결(結)에서 맺는 한 편의 '시'(표제가 포함된)의 멜랑콜리한 난해함이 구체적인 이미지와 의미들의 고리로 연결되며 확장된 파문을 일으키며 보다 선명한 동요를 일으켰다.

 

「바벨의 컴퓨터」는 크로아티아 태생 이고르 올리치의 '아이드로잉'과 '바벨의 컴퓨터'(보르헤스의 소설 바벨의 도서관의 제목에서 차용) 란 테크놀로지 예술 작품들을 통해 히라노의 예술관과 문학관을 투영하여 보여주며, 특히 바벨의 컴퓨터는 유한한 삶(죽음) 안에서 도서관(유한의 언어)이란 시간의 초월적 존재자에게 현대의 신(新) 전능자인 테크놀로지를 결합시킴으로써 인간 삶의 다양하고 우발적이고 경계지어져 있는 것들(이념, 종교, 인종 따위)에 대해 그 의미를 소멸시킴으로써(*참조: p.347~348  "이 때 죽음은 그들을 언어에 의해 온전하게 하는 마지막 꿈이다. 컴퓨터는 그 때문에 모든 '씌어지지 않는 말'을 구제하고 기록한다. '씌어질 수 있는 말'은 단지 그 예외에 지나지 않으며, 게다가 그 특권성은 박탈된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것들을 산출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어떤 프로그램이며, 그것들은 무한에 가까운 다양한 말 속에서 우연히 생긴 어느 한 가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생(生)의 의미를 죽음이란 꿈으로 성육신(成肉身) 혹은 갱생시키고자 하는데 그것은 피안의 세계를 지향하는 가톨릭적인 것으로 그 피안의 영위가 곧 니힐리즘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것(바벨의 컴퓨터)이 허무적인 것임과 동시에 신이 죽은 시대에 피안을 향해 희망을 거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음의 인식에 착안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가진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망라되어 표현되어지려는 모든 언어 표현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그 광경의 구체성에 있으며 또한 그 작업에는 끝(유한)이 있으며, 그후에 인간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컴퓨터에 의해 산출된 언어(문학, 갱신)뿐이다. 이러한 언어는 그 혼돈을 야기한 신의 입장(바벨의 기원)에 입각하여 실은 신이 인간에게 벌을 준 것이 아니라 인간을 가능성을 향해 더욱더 전진시키기 위한 은총이라는 올리치의 의견이 곧 히라노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리라.


 「아이드로잉」도 흥미롭다, 어쩌면 올리치의 이 작품에서 얘기하는 바가 히라노의 「백주」의 비유와 상징을 역설적으로 더욱 명징하게 보여주는 게 아닐까.

동일한 상황을 설정하여 피실험자에게 눈으로 그리는 궤적(eye-mark)를 그리게 함으로써 동시에 여러 사람의 그것을 확인하게 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상호간이 그리는 패턴과 경계 그 윤곽은 사실은 차이가 없으나 그 마크야 말로 축소되고 복제된 국경과 같은 것으로 만듦으로써 우리가 경계 짓는 민족, 성별, 사회적 지위 등의 차이를 만들어 우리가 갖고 있는 동질성을 은폐하여 타자와 결합할 수 없는 이기적인 복수로 만드는 데,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인 단일성을 희구하여 개개인의 탈 차이화(non-differentiate)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예술은 따라서 우리의 윤곽을 절단하여 우리를 흘러넘치게 하는 도끼이다.]-p331. ; 여기에서 책은 우리 가슴 속 언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와 같다 고 말한 카프카와도 통한다.

 

그리고 다시 처음, 「백주」..."현기증이 난다.~" 내가 너를 쫓는 것이냐, 네가 나를 쫓는 것이냐, 너와 나의 경계가 무너지고 마주보는 거울의 비춰진 모습처럼 어느 빌딩 어느 차 마저 다 똑같다...

틀림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계속 일그러지는 상, 심연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자신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

이름 없는 것이 날아와 그 거처를 드러낸다.

그 착수(着手)에 무르게 이가 빠진 칼날의 경계 오려낸 틈에서 뿜어낸 뜨뜻미지근한 숨

시간의 단면 투명한 황폐에서 용접은 무한히 지연되고

임시로 박힌 원심의 찰나에 어두운 집에서 들려오는 외침 소리가

환청의 물방울을 흩뿌리는 불꽃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대문 위에서

날개는 그 때마다 매듭이 풀려 석류의 과육에 물든 윤곽을 허공으로 날려버린다

그 궤적의 순간에

갑자기 거리를 씻긴다

진흙

말게 갤 전조에 긴장되어

녹슨 쇳덩어리는

침묵의 틈에 빙하처럼 스스로를 쏟아 붓는다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

성대에 박힌 말뚝의 광선을 다 마시고

하나인 장소는

언어로 나타난다

깊이 그 난반사에 침잠하는

숫자들의 희롱

 

-p.13~15

 

 「칠일재」에는 퇴역군인인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칠일재를 치르는 분주함 속에서 죽음을 현실로 대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반면 아버지를 화장하는 과정에서 불에 탄 뼈에 삶의 흔적을 보는 등 죽음 자체가 가지는 철학적인 의미를 삶과 결부시켜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메세지가 있었으며, 고양이를 매개로 하여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이야기형식이 인상적이었으며, 더하여 견고하고 미려한 문체는 이 단편 전체 아우라의 부피를 극대화해 주었다.

 

「저편」에서「자기」까지 이어지는 극단편들에도 소년의 죽음이라는 비유적인 상징으로 극적이고 초현실적인 죽음을 통해 재생하게 되는 역설과 가능성을 그리고 있다.

 

여기까지가 전개라면, 그 절정은「최후의 변신」으로 치닫는다. 잘 알려진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의 내용에서 그 아이디어를 가져와 자기를 잃어버리고 남의 잣대와 역할로서 정의 되어지는 자아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멀쩡했던(?) 주인공이 히키코모리로 전락(변신)하여 죽음과도 같은 최후의 변신을 모색한다.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오로지 자신이라고 여겨지는 것으로서.

 

문학의 존재의의를 유려하고 응축된 문체, 그리고 풍부한 비유와 상징으로 증명한 듯 하다.

여러 각도로 접근하게 하고 분석하게 하고 두 번 세 번 밑줄긋게 하였으니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추천한다, 이 책 뿐 아니라 이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를.....

 

1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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