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간식집 - 겨울 간식 테마소설집
박연준 외 지음 / 읻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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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겨울은 무슨 맛입니까?

박연준, 김성중, 정용준, 은모든, 예소연, 김지연, 『겨울 간식집』(읻다, 2023)

저마다 겨울을 잘 지내기 위한

따뜻하고 쌉쌀한 음식을 다룬 여섯 편의 이야기

읻다 출판사에서 겨울의 장면에 음식을 접목하여 만든 테마 소설집 앤솔로지 『겨울 간식집』이 출간되었다. 『겨울 간식집』에는 박연준, 김성중, 정용준, 은모든, 예소연, 김지연이 참여하였으며 각각 뱅쇼, 귤, 다코야키, 만두, 호떡, 유자차를 소설에 등장시켜 겨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들의 이야기는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쌉쌀하다. 독자들은 필진이 내놓는 간식을 손에 쥐듯 소설을 쥘 때마다 이야기의 풍경으로 들어가 각기 다른 겨울의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겨울에 가장 좋은 음식은 뭘까? 개인적으로는 호떡, 귤, 다코야키, 굴 …. 너무 많이 떠올릴 게 뻔하니 이만 줄여야 한다. 아무튼, 겨울에는 따뜻한 음식이 좋다. 그건 겨울만의 특권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시원한 음식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겨울에는 오히려 차가운 음식을 먹는 것도 추운 겨울에 더욱 정신을 차리기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냉면 같은 음식. 생각해보면 겨울에는 손이 시려운데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누군가와 국화빵을 함께 나눠 먹으며 추운 거리를 돌아다닌다거나, 다코야키 트럭 아저씨 앞에서 오 분이고 십 분이고 기다렸다가 열두 알 정도 사서 후후 불어먹는 장면들. 이런 순간들은 생각만 해도 속이 뜨뜻해지고 손발이 시렵다.

『겨울 간식집』에 작품을 실은 작가들은 각자 겨울에 내놓고 싶은 음식들을 통해서 다채로운 겨울의 장면을 보여준다. 박연준의 「한두 벌의 다른 옷」에서는 뱅쇼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팔각은 어째선지 시적이기도 하다. “알 수 없는 붉음”으로 주머니가 물드는 상상은 오직 겨울의 몫이겠거니 싶다. 김성중의 「귤락 혹은 귤실」에서는 귤을 둘러싼 귤락에 관해 말한다. 누군가는 귤실이라고도 했지만, 귤을 보호하는 귤실 같은 누군가 혹은 대상을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겨울 간식집』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크게 무겁거나 어려운 소설집은 아니다. 겨울의 어느 화창한 하늘을 보면서 읽거나, 눈이 펑펑 오는 날 뜨거운 뱅쇼 혹은 캐모마일 차를 마시면서 읽기 좋은 편안한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누군가는 아껴먹으려고 하나씩 읽을 수 있고, 나처럼 맛있는 것을 못 참는 사람들은 다 먹어버릴 듯 한 자리에서 완독해도 좋다. 겨울은 그런 맛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주목한 소설은 정용준의 「겨울 기도」였다. 다른 소설들도 분명하게 좋았으나, 나는 다코야키를 좋아하니까…. 겨울 간식 테마소설집인 만큼 내가 먹고 싶은 걸 리뷰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만두를 가장 좋아하지만, 만두는 겨울보다는 새해가 좋다.

정용준의 「겨울 기도」에서는 몸도 마음도 혼란한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는 스무 살, 신경이 등장한다. 학교도 나가지 않는 신경은 기숙사에서 나와 고시텔에서 살고 있다. 그런 신경을 찾아온 엄마는 문어를 가지고 오고 신경은 그것을 정말 싫어했다. 문어를 버리려다가 고시텔 관리인이 제지하고 문어를 삶고 손질해준다. 105호 여자는 신경에게 다코야키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허기를 채운 신경은 어른이 되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정리해야만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정용준의 소설은 대표적인 겨울의 감각을 보여준다. 겨울이란 한 해의 마무리기도 하지만 다음 해의 포문을 여는 도약으로써의 계절이기도 하다. 갓 스무 살이 된 신경은 자신이 넘어야 할 문턱 앞에서 배고픔을 겪고 있다. 몸과 마음이 배고픈 그에게는 어떤 온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온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 소설에서는 다코야키이며 다코야키는 겨울의 생경함과 추위를 지워주고 배와 마음속에 온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주변의 인물들에게 받은 사랑과 따스함으로 자신이 과거에 사랑을 받았던 사람에게 다시 사랑을 베풀려고 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은 선경이 새벽에 엄마의 병원에 가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 나는 겨울의 감각을 엿본 것 같다. 우리에게 겨울은 어떤 의미이며 겨울 속에서 무엇을 바라볼 수 있는가. 나는 정용준이 제시하는 장면에서 겨울만의 온기를 볼 수 있었다. 인물의 행위를 통해서만 발현되는 온기를 말이다.

다른 소설들은 소개하지 못했지만, 소설마다 주목하는 바가 다르다는 점에서 이 소설집이 다채롭다는 점은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겨울 간식처럼 이번 소설들을 하나씩 빼먹으며 나는 겨울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아무래도 조금 따뜻하면 좋겠다는 생각. 『겨울 간식집』을 통해 나의 겨울에 몇 가지의 맛을 더 수놓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맛의 겨울을 가졌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당신의 겨울은 무슨 맛입니까? 묻자마자 주변이 따뜻해지는 감각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겨울을 지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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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체조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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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을 쥔 손가락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오쿠다 히데오, 이영미 옮김, 『라디오 체조』(은행나무, 2023)


마음의 여유를 스스로 찾게 도와주는

닥터 이라부의 이상하고 날카로운 처방전

오쿠다 히데오의 『라디오 체조』가 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다. 『라디오 체조』는 오쿠다 히데오의 대표작 ‘공중그네 시리즈’로서 17년 만에 출간되었다. 평범하지 않은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그의 속을 알 수 없는 조수인 간호사 마유미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후속편을 거부하던 오쿠다 히데오는 팬데믹 이후의 혼란과 불한을 직접 목격하면서 ‘이라부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궁금증에서 귀환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상하기에 마음을 관통하는 이라부의 치료에 독자들은 읽는 순간 유연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팬데믹 이후 정신과를 다니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코로나 블루로 불리기도 했다. 바깥을 나서지 못해서 우울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람 간의 교류가 없어졌기에 고독을 집에 들여 커다란 수렁으로 빠지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개인적으로 이 시기에 크게 힘들었던 것 같다. 상담을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의 문제는 너무 많은 생각으로 불안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화로 선생님과 함께 풀어가는 과정을 믿지 못했지만, 점점 만날수록 달라지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으로 알게 된 건 사람 간의 일은 사람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라디오 체조』에 등장하여 치료받는 인물들은 각자 다른 심리적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다. 시청률에 미친 PD, 화를 낼 줄 모르는 세일즈맨, 강박이 심한 피아니스트, 오래 격리된 탓에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대학생 등 마음이 다친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심리적으로 고립되었다는 점이다. 고립은 서서히 마음의 목을 졸라 서서히 숨통을 조인다. 숨의 끝에 매달린 사람들은 긴박해지고 어딘가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스스로 발목을 잡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이들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이 버틸 수 있다고 한다지만, 어떻게든 의사를 찾게 되고야 만다. 그들에게 필요한 의사는 어떤 의사가 좋을까. 아무래도 여유롭고 자유로운 사람이 좋을 듯하다. 타인의 호흡을 한 번 끊어 일정하면서도 느릿한 박자를 몸에 심어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라디오 체조』에 등장하는 닥터 이사부다.

이사부의 처방은 다른 의사들과는 다르다. “그만둘 거면 다 써버려. 1엔짜리 하나 남기지 말고.”(「어쩌다 억만장자」) 돈을 탕진하라고 하거나, “일단 지각부터”(「피아노 레슨」) 하라는 식으로 행동을 교정한다. 그의 처방에 환자들은 이사부를 미쳤다고, 잘못 걸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사부가 요청한 행동을 조금씩 시도하는 환자들에게서는 처방보다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자신이 겪는 괴로움이 서서히 해소된다는 점이었다. 어딘가 풀리지 않는 매듭이 서서히 풀리는 듯한 기분을 경험하면서 환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게 된다. 이는 어쩌면 이사부가 환자들의 꽉 쥔 손가락을 하나씩 풀어주면서 힘을 멀리 놓아주는 것은 아닐까. 의사처럼 행동하고 말하진 않지만, 어느 의사보다 더 확실하게 치료하는 이사부의 처방은 지금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필요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에는 자연스럽게 웃는 표정까지 나왔다.

가슴속에 막혀 있던 뭔가가 단번에 배출된 느낌이 들며, 마음이 가벼워졌다.

돌발적인 행동이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섭지도 않았다. 해냈어. 껍데기를 깼어.

스스로를 칭찬했다.

「라디오 체조 2」 중에서

「라디오 체조 2」에 등장하는 가쓰미는 화를 내지 못하고 쌓아둬서 화병(한국식 표현을 빌리자면)에 걸린 사람이다. 그를 위해 이라부는 “일단 나가서 고함부터” 쳐볼 것을 권한다. 함께 차를 타고 난폭 운전을 당했던 도로로 가보며 정상 속도로 가다가 사고를 내보기도 한다. 이라부는 언뜻 보면 가쓰미의 분노를 키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매번 당하던 난폭 운전과 다른 화나는 일을 겪으면서 억지로 화를 낼 수 있는 굴뚝을 마련해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처방으로 가쓰미는 여러 일을 겪으며 마지막에는 화를 낼 수 있는 인물이 된다. 나는 이라부의 행동이 가쓰미의 혈을 뚫은 것처럼 보였다. 그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은 이와 같다.

여하튼 그 의사 선생이 나오면 묘하게 치유가 되더군.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거겠지.

우울함의 특효약은 힘을 빼는 걸지도 몰라.

「해설자」 중에서

결론적으로 보면 이라부의 처방은 힘을 빼주는 것이었다. 「라디오 체조 2」에 등장하는 가쓰미도, 다른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이라부의 처방으로 인물들은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게 된다. “유야는 한 번쯤 자기를 깨보고 싶은 기분”(「퍼레이드」)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전액 기부”(「어쩌다 억만장자」)를 생각하게 된다. 이라부는 혈을 뚫어주는 역할을 하고 이후를 담당하는 건 전부 환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생활에서 힘을 조금 풀었을 때의 여유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파장이 되어 개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아주 큰 기쁨으로 말이다.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주고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가 있다. 이라부의 기묘하지만 어딘가 편하게 만들어주는 처방은 힘들고 빡빡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이라부가 필요하다. 잠시 손에 쥔 것들을 놓을 수 있는 용기를, 스스로 옥죄는 생활에 숨통을 틔는 쉼으로 나아가는 첫발을 『라디오 체조』가 도와줄 것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라부의 유쾌함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좋다.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얼굴에 힘을 풀고 웃고 있을 것이다. 그 웃음이 미래를 여는 도입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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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 여행기 을유세계문학전집 129
하인리히 하이네 지음, 황승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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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라는 나침반으로 걸어가는 미래       

  


하인리히 하이네의 『하이네 여행기』가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하이네는 여행기에서 자신이 살던 시대의 상황과 문화적 요소들 그리고 종교와 분열된 시대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며 독일과 유럽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독일 문학을 깊게 접해본 적이 없는 내게는 독일 문학이 다소 고루하다거나 진지하여 무겁다고 생각한 적 있다. 특히 고전은 더욱 그러했고 하이네의 문학은 더욱 그랬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유럽적 사건으로 불리는 그의 문학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그의 배경을 알고 접해야만 했다. 하이네는 낭만주의 시기를 살던 작가이지만 수필과 시의 형태에서 본다면 사회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여타 다른 낭만주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방향성과는 다르다.

그의 책에는 「북해」와 「이념-르그낭의 책」을 묶은 책인데 「북해」에서는 바다에서 시작하는 여행기를 볼 수 있다. 신기한 점은 여행기인데 시의 형태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점은 내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저녁이 오면서 어스름이 깔리고

파도는 더욱 거칠게 포효했다.

바닷가에 앉아

물결의 하얀 춤을 보자

내 가슴은 바다처럼 부풀어 올랐다.

어디에서나, 어디에서나,

휘잉휭 불어 대는 바람 소리에도, 철썩이는 파도소리에도

내 가슴의 탄식 소리에도

어디에서나 내 주위를 맴돌며

어디에서나 나를 부르는     

「선언」 중에서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여행의 한 장면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그 장면은 그의 언어로 이루어진 장면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회상과 성찰을 반복하여 오가며 결론적으로 다양한 시간대를 오가는 그의 방대한 시대의 여행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점들은 마치 당시 상황에 독자를 놓아둔다.

하이네 여행기는 시의 아름다움과 시대의 냉철함이 담긴 복합적인 책이다. 독일 문학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하이네 여행기를 먼저 접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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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과 인생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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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일은 어떠신가요?

    기시미 이치로, 전경아 옮김, 『일과 인생』(을유문화사, 2023)




    ‘잘’ 살기 위한 노동을 위하여


     기시미 이치로의 『일과 인생』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되었다. 『미움받을 용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는 이번 책에서 직장에 대한 의문, 노동에 대한 의문을 철학과 문학의 텍스트를 이용하여 해소하고자 한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취준하고 있지만, 항상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즐기면서 일하는 삶을 막연하게 꿈꾸면서 즐길 수 없는 일을 해야 하거나 할 수밖에 없을 때 그것에 분노하며 슬퍼했다. 결국 사람은 마냥 즐거울 수 없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톱니바퀴처럼 사용되고 버려진 사람들을 보며 측은함이 들면서도 나도 저렇게 될까 두려움을 품었다.

    아빠는 항상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처럼 살려면 일을 해야 한다고, 그건 아마도 돈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 중에는 돈이 있지만, 그것과 견줄 수 있는 건 어떤 루틴이 있는 생활과 그것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감각 혹은 마음이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사람과 함께 부대끼는 생활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들은 사회생활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가장 근원적이고 커다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왜 나는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가? 기시미 이치로는 『일과 인생』에서 그것에 대한 답변을 문학으로, 철학으로 혹은 자신의 생활로 비유하여 답한다.


    책에서는 네 가지 장으로 구성하여 여러 질문 혹은 생각을 짧게 단문으로 풀어낸다. 1장 우리는 왜 일하는 걸까?, 2장 당신의 가치는 ‘생산성’에 있지 않다, 3장 직장 내 인간관계 개선을 위하여, 4장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일해야 할까? 와 같은 큰 카테고리를 통해 기시미 이치로는 삶을 바라본다.

    가장 근원적인 질문인 1장은 사람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관해 말한다. ‘공헌감’이라는 가치를 느끼기 위함이고 그 가치를 통해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 1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고 그것을 이탈한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이 근원적인 상황에 대한 납득 가능한 이유가 필요하고 기시미 이치로는 그것을 여러 질문에 답변하며 해답을 내놓는다. 어차피 인간을 부품으로 생각하는 건 사회이며 부품인 인간은 그렇기에(그렇다고 저자가 인간을 부품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이니까. 인생의 큰 과제를 버려가면서까지 일에 미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러나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순 있다는 것을 동시에 말한다.

    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에 관해 말한다. 2장과 3장은 직장 내에서 왜 사람이 이렇게 일을 통해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일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등을 말한다. 1장에서 말하던 기시미 이치로의 철학적 관점들을 기반으로 일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를 말하며 그러한 직장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4장에서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언급한다. 일의 동기를 파악하고 가장 중요한 것을 우선으로 두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저자는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철학과 문학의 텍스트를 이용하여 그리고 자신의 일화를 꺼내어 말한다. 어쩌면 기시미 이치로가 말하는 일과 인생은 조금 더 스마트하게 살아가라는 어떤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우선시하면서도 일에 프로가 되는 것. 프로는 마음가짐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에 매료됨과 동시에 저자의 일화와 철학 등을 만났다. 어쩌면 취준생인 내가 조금 더 관심 있게 살펴보고 집중해야 할 건 아닌가 싶다. 어딘가 막힌 것 같으면 그저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직진하는 태도도 중요하겠지. 멀리 돌아갈수록 더 멀리 가버리게 된다. 어쩌면 문은 눈앞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저자라면 어떻게 할까. 그냥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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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젤과 그레텔의 섬 읻다 시인선 13
    미즈노 루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읻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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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의 미로 속으로

    미즈노 루리코, 『헨젤과 그레텔의 섬』(읻다, 2022)

    유년의 기억이 가득한 외딴섬으로

    이어지다가 기어이 멀어지는 기억을 말하다

    읻다 출판사 시인선에서 출간된 일본의 시인 미즈노 루리코의 『헨젤과 그레텔의 섬』이 2022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은 1932년 도쿄에서 태어나 세계대전을 유년에 겪고 오랜 시간이 흘러 쉰이 될 무렵에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공포와 슬픔을 「헨젤과 그레텔의 섬」으로 형상화했다. 그렇게 탄생한 시집 『헨젤과 그레텔의 섬』은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두려움이 기저에 깔려있고 화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에서 독자는 미즈노 루리코가 마련한 판타지적인 세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부터 “작고 투명한 유리잔 같은 여름”(「헨젤과 그레텔의 섬」 중에서)이 환하게 열리는 세계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외국 시는 한국 시보다 조금 더 직관적이고 크고 어딘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겐 영미 시가 그랬고 한동안 멀리했다가 제임스 테이트의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창비, 2019)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 뒤로 외국 시를 종종 보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이것도 어쩌다 보니 읻다에서 출간된 것이긴 하지만) 사가와 치카의 『계절의 모노클』(읻다, 2022)이었다. 맑고 투명한 모노클을 엿보는 느낌이었고 원래 일본 문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일본 시의 매력도 있다는 걸 이때 알게 되었다.

    이번 서포터즈 활동 도서 중 하나인 『헨젤과 그레텔의 섬』은 『계절의 모노클』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조금 더 판타지적인 느낌이 강했고 시인이 유년의 기억을 기반으로 시를 쌓은 만큼 감각적인 요소가 많았다. 기억으로 만든 동화를 읽은 느낌. 하지만 유년의 기억은 다 자란 지금에서 찾으려고 해도 찢겨 있거나 사라져 찾을 수 없다. 일부의 기억으로 잠시 엿보았다가 바로 사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스스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시인은 이러한 행위를 반복해서 하지 않았을까. 신비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아픈 기억을 꺼내 남은 것들이라도 제대로 보려고 상처에 상처를 더 낸 건 아닐까. 상처에서 가지가 돋는다는 건 이후의 이야기. 독자인 나는 그 경로를 따라 걸어본다. 예측할 수 없는 동화의 미로 속으로.

    어두운 그림이구나 어머니가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회색빛 나무」 중에서

    시집에 나오는 화자는 유년 시절의 시인처럼 보인다. 화자는 죽은 자신의 오빠와 함께 어머니나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어디론가 떠나기도 하고, 도라를 찾기도 하고(「도라의 섬」), 거대한 새인 모아가 있던 하늘을 생각하기도 하면서(「모아가 있던 하늘」) 무언가가 있던 자리를 계속해서 생각하거나 찾으러 간다. 훼손되었거나 이미 사라진 것들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시인은 자신의 유년에 잃어버렸던 기억을 찾으려는 행위를 거듭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판타지적인 세계를 기억하려는 시인의 행위는 자신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년의 기억에 두고 온 무언가를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추억을 되새기며 “번역도 통역도 할 수 없는 침묵의 세계”(「시인의 말」)를 들여다본다. 동화적인 요소는 어쩌면 자신이 겪었던 전쟁과 끔찍한 기억을 자신도 모르게 순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아픈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힘들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혹은 경험한 감각적인 현상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치환하여 스스로 계속 들여다볼 수 있게 치장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기억의 알맹이를 찾기 위해, 여러 생명을 화자와 동등한 위치에 두며 망가진 기억을 선명하게 바라보기 위함이다.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렵고 힘든 기억 앞에서 한 사람은 지극히 작아진다. 하지만 기억을 바라보고 어떤 것으로든 표현하려 한다면 두려움은 뜻이 되고 무언가가 된다. 그 무언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 독자의 입장으로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의 귀한 어떤 기억을 잠시 관람한 것 같다. 어쩌면 나에게 시인이 가진 기억의 거리감이 스며들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 부르는 작고 투명한 여름이 『헨젤과 그레텔의 섬』을 펼치는 순간 독자를 환하게 비추고 조금 따가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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