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장갑

흰 손이 검은 장갑을 끼었을 때 빈틈이 없었다.
(세상이 불현듯 돌기 시작했다.)
흰 손이 검은 장갑을 끼는 것은 검은 장갑의 빈말이었다.
(검은 장갑의 깨어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흰 손은 검은 장갑 밖으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흰 손을 보지 못했다.)
흰 손의 나라에는 검은 장갑들만 걸려 있었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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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앞을 향해
나는 뒤를 향해 헤엄친다
전력투구로 마주 보는 시간이 생겨난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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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누설


항아리 물속에 뜬 달을 본 것은 여섯 살 무렵 보광동에 살 때였다. 뭔지는 몰랐지만 아주 조용한 느낌이었고, 그 고요를 깨선 안될 것 같아 물을 마시고 오줌을 누고 방에 들어가 잤다.


ㅡ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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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아주 멀고 조금 더 멀다. 조금 더 멀고 아마 더 멀 것이
다. 조금도 가깝지 않다. 조금 더 가깝지 않은 곳에 있다.
조금 더 가깝지 않은 것이 조금 더 있다. 조금 더 있으려
고 조금 더 빠져 있다. 조금씩 빠지고 있다. 다시 빠지고
있다. 다시 빠져나와야 있다. 있는 것만 알고 있다. 없는
것도 알고 있다. 어디든지 어디에도 없는 것이 있다. 조
금 더 있고 아마 더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려고 더 있
을 것이다. 여기서 조금도 가깝지 않다. 거기서도 아주 멀
다. 조금 더 깊은 자국이 생겼다. 그걸 밟고 간다. 하마터
면 지나쳤을 것이다.


ㅡ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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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의 꿈


엄마, 난 커서 해녀가 될 거예요. 바닷속에 집을 
짓고 낮엔 그 속에 들어가 살 거예요. 전복으로 지붕
을 올린 집에서 물고기들과 함께 놀 거예요. 그 집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집. 집 앞에 꽃도 심을 거예요. 해
초들이 물결에 흔들리며 내게 손짓을 하겠죠. 그리
고 돌아가신 할머니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평생 물 
질을 하시고도 바다로 돌아가겠다고 말씀하셨던 걸
나는 들었어요. 할머니가 바닷속 집에서 나를 반겨
줄 거예요. 엄마, 난 커서 해녀가 될 거예요

ㅡ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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