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를 사랑하지만 결국 전성기는 끝날 것이고, 야구는 천천히 내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야구는 놀랄 정도로 현대성에 영향을 받지 않고 유지됐지만, 다른 현대적 산업과마찬가지로 관계자들을 고도로 소외시키고 있다. 내가 시에 의지하는 건 시가 환경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이 야구를 다뤘다고 해서 특별히 감동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한 세계가 다른 세계의 사랑을 받게 하는 문제에 딱히 관심이 없다. 지금내게 두 세계는 분리돼 있을 필요가 있고, 지금 나는 치환을, 대조를 좇는다. 말하자면, 만년의 애쉬베리가 그린 초목이 무성한 황야가 치열한 경쟁을 돌볼 수 있는 셈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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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것 중에 뭐라도 소용이 있는 건 없어요?" 아들이 끈질기게 물었다. "있지." 대답이 무심코 튀어나왔다. "시." "어떤 시요?" 아들이 물었다. 나는 최근에 기억을 더듬어 찾아내고는 이상하게 격려를 받은 듯했던 진부한 시구 두 개를 인용했다. 스윈번‘의 <프로세르피나의 정원>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과 랜더‘의 〈그의일흔다섯 번째 생일에>에서 인용한 구절이었다.

어느 신이 됐든
우리는 조촐한 축제를 열어 감사했다
어떤 생명도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죽은자는 절대 다시 살아올 수 없다는 것을
가장 느리게 흐르는 강물도
구불구불 흘러 틀림없이 바다에 닿는다는 것을,
-스윈번, <프로세르피나의 정원>에서 - P76

그러고는 깨어나 일 년을 더 살았다.
그의 시집인 《닫힌 책>에 <사망 지침서〉라는 제목을 단 짧은 시가 있다. 당연히 그저 수사적인 제목은 아니다. 나이와 습관이 나와 같은 사람, 나는 그를 살리지 못했다. 나는 무용지물인가? 세상에 정의 같은 건 없나? 음, 아니다. 생물학의 많은 부분이 우연이고, 시공간을 초월한 어떤 무한한 힘이 작용한다고 인정하더라도그 우연을 바꾸거나 피할 수는 없다. 의학은 세상의 경로를 아주조금 변경할 뿐이다. 우리는 여러 암이나 유전병, 노화를 썩 잘 치료하지 못한다. 그리고 당연히 치료는 치유와 다르다. 최선의 치료라 해봐야 조언과 위로 정도밖에 없는 때도 가끔 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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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옵스큐라

나를 모르면서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그는 한 명이 아니고 그들은 집단이 아니고 나는 간혹 기억되는 듯하고 내가 안다는 걸,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걸모르는 체하곤 한다

화재 경보음을 들을 때, 교통사고 현장의 스키드마크,
영아의 손에 닿지 않도록 높이 달아둔 모빌의 무게, 그것부딪히는 소리, 자개장 경첩의 움직임, 접히고 펼쳐지는라텍스 매트리스, 엘리베이터의 정원 초과 안내 음성, 담장 너머 라일락 향기, 부드럽게 퍼져 넘치는 인조가죽 소파의 광택, 금세 연소하는

불꽃놀이의 빛.

날씨의 기록과 불쑥 자라나는 유령들

가뿐히 넘어설 때 그것 모두 이곳의 나를 뒤돌게 하는것들이었고 어디서 익숙한 이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면

그건 내 이름이 맞지만 이제 더는 내가 아니에요. - P16

사랑 없는 기쁨

우리는 개천을 따라 걸으며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새를보았다. 흰 새는 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날고 있지않았다. 이 겨울에는 모르는 사람과 손잡을 수도 있었다.계절이 바뀌어도 서로의 곁에 남아 좋아하는 음식을 번갈아 먹으며 세계에 없던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끝은 길이 없을 것처럼 이어져 있었고


우리는 길 위를 걷고 있었지만 그것은 물 위를 걷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나눠줄 손이 부족한 사람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집 같은 곳으로 돌아갔다. - P36

알 수 없는 순간, 작은 불을 켰다 그것은 멀리까지는 밝힐 수 없는데
진실은 어쩐지 언제나 여기보다 더 먼 곳에 있어
큰 소리로 흥얼거리는 노래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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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섬(閃閃)


천장에 매달린 프로젝터의 불빛은 흰 장막을 향한다 벽을 덮은 거대한 장막 위에서 미래가 산산조각 나고 있다 미래는 부서지고 무너지고 흩어지고 파편은 레코드 잡음처럼 번쩍 튀어 오르고 어긋난 문틈 사이로

조각은 조각 위에 비스듬하게 쌓이는 젠가 도막이 되어그것을 무한히 반복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지 않는것을 빼내어 다시 그것 위에 쌓고 그것을 엎어버리고 전시는 진행되고 폐막은 알 수 없고 미래는 지체되지 않고.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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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멈춰 섰을 때 그곳이 낯선 동네면
집으로 얌전히 돌아가는 방법에 관해

이제는 알고 싶어요.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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