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외양을 면밀히 살피고 표시를 남기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든 화가들은 드로잉이, 다급한 작업일 경우에,
양방향의 과정임을 알고 있다. 그리는 행위는 측정하고 옮기는 과정일 뿐 아니라,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바라봄의 밀도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그리는 이는 자신이 뚫어지게 바라보는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대상의 외양으로부터 똑같이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자코메티는 그 점을 보여 주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 두 에너지의 마주침, 둘 사이의 대화는 질문과 대답의 형식을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맹렬하지만 소리내 말하지 않는 대화다.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하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굴을 파는 작업, 외양 아래로 굴을 파는 것과 비슷하다. 위대한 이미지는 두개의 터널이 만나서 완벽하게 맞아 들어갈 때 탄생한다. 종종 대화는아주 짧게, 거의 순식간에 일어난다. 마치 무언가를 던지고 받을 때처럼.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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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망각은 잠에서 빌려 오는 게 아니에요. 잠은 창조적인 활동이지만, 망각은 뼈까지 갈아 버리는 일, 관통하고, 보존하고, 다시 먼지로 돌려 버리는 일이에요.

어쩌면 망각이 지워 버리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인과관계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우리는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이유를 찾는 거고

우리는 우리 부모들이 잊어버릴 수 없었던 것들이 모인 침전물이에요. 남은 것들이죠. 세상은, 그리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하고 있는말들도 흩어져 사라진 모든 것들이 남긴 것이고요. 망각은 그렇게 남은 본질로 떠나는 여정이에요. 조약돌이요. - P58

발은, 인간과 지면을 이어 주죠, 천국과 지옥 사이의 경첩이고, 고정장치, 기둥받침, 균형점같은 것, 인체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동물적인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곳이에요.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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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체의 소리 나는 푸른 사인을 해볼까
어기적어기적 저 오랜만의 두꺼비 머루 같은 눈빛도만연체소설의 물꼬를 틀 때 써볼까

마음은, 점점 바닥난 잉크를 대신하겠다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변방의 숨은 오지랖들
그 변두리 진국들에 펜촉의 과정을 그윽이 박는 날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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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치 않는 몸으로 빛을 재우며 시간을 보내고 대놓고 사람을 본다 좋은 사람을 본다 좋은 사람이 보인다 좋은 사람의 마음을 보자 나는 마음이 궁금하여 마음에 대해 이런저런 물음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
내가 깨질 수도 있다 추측건대 마음은 사고와 다르지 않고 기호와 유사한 경우도 있고 변덕에 대한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보다 보니 모르는 것만 늘어보이는 것을 본다 귀퉁이부터 조금씩 마음을 반사한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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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자족적인 예술은 잔인하지만 감상자의 시선, 감정, 해석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의 어느 한 장소,
구멍 같은 절대적 비지와 무감각의 영역에 자신의 거처를 정하고,
우리는 그것에 맹안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비가시적이다. 노란 벽의 작은 면은 그러므로 노랗다기보다는 검다. 아니, 차라리 무색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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