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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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수평선 너머>는 노년의 로버트가 수줍고 엉성했던 자신의 열여섯 살 여름을 회상하며 쓴 한 계절에 대한 기록같다.

열린 창가에 앉아 있는 지금, 내 생애 마지막이 될 여름의 향기를 실어오는 가볍디가벼운 바람결에 새들의 노래가 글리산도를 이루고, 나는 삶을 붙들듯 시에 매달린다. p17

책은 단순히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 아니다. "삶은 이미 정해진 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며 만들어가는 것" 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조용하지만 깊이있게 건낸다.

결국 진정으로 싸울 가치가 있는 건 몇 개 안 돼. 자유, 그리고 자유가 가져다주는 모든 것. 시, 어쩌면 좋은 와인 한 잔, 맛난 식사, 자연, 운이 좋으면 사랑을 얻을 수도 있겠지. 그게 전부야. p61

​대를 이어 광부가 될 뻔한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던 열여섯 살 소년 로버트가 엉뚱하지만 지혜롭고 자유로운 노부인 덜시를 만나며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되는 과정은 누군가의 인생이 어떻게 한 계절과 한 사람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여행이란 자아를 찾는 여정이야. 믿어봐. 가끔음 그냥 찾으러 떠나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p84

특히 노부인 덜시라는 인물의 매력은 책을 덮은 지금까지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녀는 단순히 로버트를 도와주는 조력자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어주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권위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덜시의 모습은 로버트에게 새로운 세계의 문이 되어주고, 독자인 나에게도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따뜻하게 응원해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좋은 시는 마음속 조개껍데기를 벗겨내 그 안에 깃든 진주를 발견하게 한단다. 말로 도저히 표현해 낼 수 없는 감정에 언어를 부여하는 거야. (...) 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점을 일러주는 인류의 표현 방식이야. 캄캄한 밤을 홀로 항해하는 뱃고동에서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처럼, 시는 시대를 초월해 공명하는 위로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p138-139

이 소설은 극적인 사건보다도 여름의 공기, 바다의 냄새, 들판의 풍경, 맛있는 음식 등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에 저자의 시적이고 서정적인 묘사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문장마다 생명력이 가득해서 마치 한여름 해안가를 함께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쟁 이후의 상처와 불안 속에서도 자연은 여전히 아름답고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오래오래 남는다.

그해 여름까지 시는 상류층에게만 통용되는 비밀 암호였다. 그들이 그토록 즐겨 인용하는 라틴어만큼이나 불가해했다. 그건 노동하는 이들을 그 자리에 가둬놓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나 같은 사람들은 결코 살아낼 수 없는 삶들로 이루어진 닫힌 세계였다. (...) 그러나 이제는 그 비밀스러운 우주가 작업실에서 읽는 시들을 통해 매일 밤 내게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p252-253

소년는 매일 밤 램프 불빛에 기대어 덜시가 건넨 책들을 읽으며 언어의 힘을 깨닫고 점차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단순히 문학을 배우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와 세계를 갖게 된 것이다. 소설은 정해진 운명을 깨고 문학을 통해 삶의 외연을 넓혀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맹목적으로 앞으로 달려나가듯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물으며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한다.​

나는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내 안에서 잠식해 오는 시간이라는 질병에도 불구하고.
p332

<수평선 너머>는 결국 "진짜 나답게 살아가는 삶" 에 대한 이야기이며, 각자의 인생 속에도 한번쯤 찾아오는 찬란한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일상에 지쳐 자연의 아름다움과 마음 따뜻한 여유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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