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위로 앉은 위로 모해시선 1
윤미경 지음 / 모해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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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
입니다.>


오랜만에 읽게된 시집 <의자 위로 앉은 위로>는 그림책, 동화책, 동시집, 청소년소설 등 다양한 장르로 폭넓게 작품활동을 하는 '윤미경' 작가의 신작이다.

작가의 이력에서 느껴지듯이 동시나 동화처럼 시들이 너무나 말랑말랑하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것들에게도 영혼을 불어넣은 듯 생생하게 와닿았다.

감각적인 언어와 정제된 감성이 한몸의 조화를 이룬 것처럼 시가 사물과의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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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직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게으른 오늘은 바닥에 널부러진 중이고
내일은 떠날 예정이라 짐을 싸야 하지만
오늘이 협조해주지 않아 지지부진하다

어제가 발이 네 개인 채로 돌아왔다
오늘은 여전히 부지런해질 생각이 없고
내일의 가방은 아직 지퍼조차 열리지 않았다

어제는 간헐적 건망을 작심한다
오늘은 어제를 핑계 삼아 좀 더 게을러지기도 하고
내일의 예정을 작파하는 것으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마침내 평화롭다
(p24. 숙취)

'숙취' 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어떻게 이런 단어들로 풀어낼 수 있는지 정말 놀랍다. 숙취를 한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시를 읽는 즉시 그 감정과 상황이 와닿아 피식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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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고양이 옆에서 잠을 나누면
骨骨骨 骨骨骨
뼈마디 사이를 나긋나긋 공명하는 소리
행복이 낮잠자며 잠꼬대하는 소리
骨骨骨 骨骨骨
고양이가 코끝으로 차 끓이는 소리
모든 근심조차 향그러워지는 소리
骨骨骨 骨骨骨
발끝으로 꾹꾹꾹 엄마를 부르면
온몸으로 나 여기또, 대답하게 되는

천사들이 연주하는
위로의 멜로디
骨骨骨 骨骨骨
고양이 오르골
(p76. 고양이 오르골)

낮잠자는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유쾌하게 펼쳐낸 시인데, 너무 앙증맞고 기분좋은 골골골송이 흐르는 상황을 오르골에 비유한 것조차 너무 귀여워서 하루종일 우울하던 기분도 날려버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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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학교에 가지 못했어

재잘재잘 수다스러운 이야기가
다 자라지 않고 남아서
아직 그네를 타고 있거든
빗자루에서 떨어지지 않는 법을
민들레 더듬이로 속삭이는 법을
바람개비의 돌림노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

오십몇 살의 나는
고맙게도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입학통지서가 날아오지 않았어

나는 영영 철이 들지 않을 속셈이어서
학교는 가지 않을 거야
대신
볕 좋은 날 고양이와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야
고양이 앞을 느릿느릿 지나는 간 큰
생쥐의 이야기도 담는 중이야
그 이야기를 들어 줄 친구들을
두근두근 기다리는 중이야
(p93. 미취학 어른이)

양볼이 빨개진 수줍은 미소의 어느 중년 여인이 떠오른다. 여전히 미성숙한 어린애처럼 수다 삼매경에 빠진 어린 어른을 그린 작가의 표현력은 기분좋은 웃음을 머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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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위로 앉은 위로>는 우리의 삶을 찬찬히 바라본 보고서이자, 여전히 야생인 채 살아가는 우리 마음에게 건네는 무심한 듯 다정한 손길같다.

툭툭 부딪히고, 묵묵히 스며들다 끝내 체온을 나누는 윤미경 작가의 시편들은, 우리 각자의 그림자에게 '너를 사랑해' 라고 속삭여주는 것 같아서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낀다.

무더위에 지친 여름날 밤,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옆에 두고 조용히 이 시집을 펼쳐 보자. 천천히 읽어내려 가다보면 슬며시 다가온 토닥임의 위로를 건네받는 시간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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