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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저주토끼'로 부커상,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선정되고, '너의 유토피아'로 필립 K.딕상 후보에 오르며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K-장르문학의 중심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정보라 작가의 신작 <<아이들의 집>>을 만나보았다.
그간 읽어본 작가의 전작들은 내게는 어쩐지 비현실적인 세계를 그려내는 듯하지만, 결국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더욱 세밀하게 꼬집어주는 그녀만의 깊은 고뇌와 재치 넘치는 상상력으로 매번 놀라며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P178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었다.
혈연이 있는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고 행운이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지만,
가족의 불운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지배할 필요는 없었다.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든 아이가 가진 고유의 권리였다.
아이들의 집에서 아이는
그런 사실을 이해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아이들의 집은 어른들의 집이기도 했다.
소설은 아이의 양육과 돌봄이라는 현실 문제를 묵직하면서 서늘하게 풀어낸 미스터리 스릴러다.
소설은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으로 시작해서, 주거환경관리과 조사관 '무정형'과 국립보육시설 '아이들의 집'의 양육교사 '정사각형'이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과, 해외 입양아인 '표'와 '관'의 이야기는 또 다른 축을 이루며, 개인의 삶이 어떻게 국가적 시스템과 결탁된 거대한 음모에 휘말릴 수 있는지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처럼 아이의 양육과 돌봄을 사이에 두고 가정과 국가, 그 책임의 경계에서 절묘하게 얽힌 인물들의 갈등과 해결 그리고 회복과 치유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양육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p225
아이의 장례식은 옳지 못하다.
아이의 죽음은 부당하다.
아이는 죽어서는 안 된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 살아야 한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오래 살아서 노인이 되어야 한다.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든 아이가 가진 고유의 권리임을 잊지 말자고 작가는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로 흥미롭게 시작하지만, 묵직하고 서늘한 분위기 안에서 날카로우면서도 깊이 있는 문제의식, 그리고 행복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함께 어우러져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상상하는 모든 아이에게 언제나 갈 곳이 있는 사회, 언제나 지낼 집이 있고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고 돌봐주는 존재들이 있는 사회, 그리고 어른도 불완전한 한 인간일 뿐인데, 그런 한 두명의 어른들이 가정이라는 폐쇄된 울타리 안에서 아이의 목숨과 미래를 온전히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를 그려보며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