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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자의 하인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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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쇼핑목록>, <살인자의 쇼핑몰>, <심여사는 킬러> 등으로 독보적인 스토리텔링을 선보인 강지영 작가가 자음과 모음을 통해 10여년 만에 개정한 <엘자의 하인>을 만나보게 되었다.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살인자의 쇼핑목록>과 <살인자의 쇼핑몰>을 워낙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나서, 이번에 개정된 <엘자의 하인> 역시 너무 흥미롭게 읽었다.
<엘자의 하인>은 스릴러, 오컬트, 액션 등으로 입지를 다진 강지영 작가의 초기작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첫사랑의 달콤쌉쌀한 맛이 여전히 유효함을 작가가 가진 깊은 내공을 통해 느끼게 해준다.
첫사랑의 환상 속에서 펼쳐지는
소년과 소녀의 아릿한 성장담
주인공 양하인은 열두살 소년이고 도시 개발 이전의 파주에 산다. 하인의 가족은 무지 독특하다. 상남자같은 엄마가 보일러 수리 일을 하며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호리호리한 아빠는 살림과 뜨개질을 한다. 함께 사는 외할머니는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해 싫었다가 좋았다를 반복한다.
하인은 종선이라는 동네 슈퍼집 아이와 친하게 지내며, 아옹다옹한 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인이네 집 바깥채에 묘한 모녀가 세를 들어오며 마을에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바깥채 모녀는 시내 술집에 출근하는 혼혈 여성 스텔라와 그녀의 딸 엘자다. 하인과 동갑이라는 엘자는 검은 머리에 하얀 피부에 새파란 눈을 가졌다. 엘자에게는 작년에 죽은 하인이의 개 컴온과 똑같이 생긴 개가 있는데, 그 개의 이름은 하필 또 하인이다.
소녀는 엄마인 외국 여자를 그대로 줄여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꼭 하나 전혀 닮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그건 그 애의 눈동자였다. 엘자는 양배추 인형처럼 크고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색깔의 눈동자로 남들처럼 보고 읽을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p27
어느 말 하인의 외할머니가 온데간데없이 증발하고, 하인은 마치 어른처럼 외할머니의 방을 차지해 혼자 생활하게 된다. 할머니를 돌보던 시간이 사라지면서, 하인은 엘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엘자의 비밀을 알게 된다.
하인은 엘자를 바라볼 때마다 “어째서 몸이 주인을 배신하고 제멋대로 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따끔따끔한 마음이, 그 애의 얼굴이 빛나는 것이, “가슴이 짜르르하고 온몸의 관절이 삐걱대는 동시에 소름이 빽빽이 돋아”나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엘자가 내게 몸을 기대고 걷는 지금 이 순간, 어째서 그때 마셨던 코코아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지 알 수 없었다. 함께 걸을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마디게 쓰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엘자는 너무나 지쳐 보였다. 그 애의 옆얼굴이 눈이 부실 지경으로 빛났다. 그 빛이 너무나 찬란해, 나는 차마 그 애를 바로 보지 못했다.
p108
하인은 “혹시 엘자가 내게 마법이라도 건 걸까. 삼장법사가 오공이 머리에 금고아를 씌워 꼼짝 못하게 했던 것처럼, 엘자 역시 제멋대로 나를 부리기 위해 맘속으로 주문이라도 외웠는지 모른다”라고 생각하지만, 그저 소년은 삶에 등장한 소녀 엘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첫사랑과 격동하는 집안 사정 사이에서 하인의 단순한 소년 시절이 끝나고, 아름답지만 잔인한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러던 겨울, 사라진 외할머니가 돌아오고, 이제 엘자는 이 마을과 하인에게 안녕을 고한다.
순진한 열두 살 소년이 아름답고 이상한 소녀 엘자를 만나면서 사춘기를 맞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이 성장소설은 우습고도 사랑스러운 시골 마을 인물들의 은근한 따스함과 유머가 가득하고 우리가 겪어온 각자의 성장기를 다시금 기억하게 한다.
또한 개발 직전 시골 마을의 풍경을 저자는 보다 생동감 있고 섬세하게 묘사해,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근과거의 다채로운 맛을 더해준다.
우리들이 모두 겪었음직한 사춘기의 사랑과 안타까움을 그리고 있어서 우선 달콤하다. 진정한 마음의 안쪽에 숨어 있는 부끄러움은 우리를 계속 서투른 행동의 연쇄 속에 밀어넣고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청춘에 대한 익살맞은 조롱은 우리로 하여금 진짜배기 사랑의 향기가 무엇인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