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는 소아신경외과 의사입니다 - 생사의 경계에 있는 아이들을 살리는 세계 최고 소아신경외과 의사 이야기
제이 웰론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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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HAT MOVES US. 

이 책의 원제는 '우리를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다.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 책을 다 읽고나니 딱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체의 가장 중요한 장기 중 하나인 뇌가 우리의 삶 전반을 관장하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도 있지만, 이 책에 담긴 삶과 죽음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아픔과 슬픔, 기쁨, 기적, 희망 등 독자들이 마주할 다양한 감정들에 잔잔하게 일렁일 파동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세계 최고 소아신경외과 의사 제이 웰론스가 삶과 죽음의 최전선인 소아신경외과 병동에서 25년간 일해 오며 수술실 안팎에서 경험한 실제 사건들을 솔직하게 풀어낸 의학 드라마같은 에세이다. 


또한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인간으로의 마음 사이에서 균형과 관점을 찾아나간 한 의료인의 치열한 자기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영문학도가 되어 글쓰는 것이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인 의사의 길을 걷게되면서 자신이 구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이 길을 쭉 이어왔으며, 그들에게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배우게 되었다고 전한다. 


모든 인간이 연약한 존재라는 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존재가 가장 연약하다. 어둠과 미지의 세계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점점 더 연약해진다. 그러나 삶은 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 인간의 회복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걸 배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존재가 가장 회복력이 뛰어나다.

p38 프롤로그 중



이 책에서는 다양한 아이들의 수술 경험을 이야기한다.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기 직전에 병원에 도착한 세 살배기 남자 아이의 이야기, 머리카락처럼 가는 봉합사로 잘린 신경을 복구한 8세 어린이, 뇌수술 후 봉합할 때 고무줄 2개를 빼지 못한 이야기, 태아 척수 수술을 받는 미숙아와 산모의 이야기까지, 저자는 소아병동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생명의 경이를 경험하고,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그 귀중한 체험에 대해 솔직하면서도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특히나 마음을 적시는 이야기는 전혀 가망이 없어 보였던 작고 연약한 존재인 아이들이 다시금 삶을 이어나가는 과정이었다. 어린 나이에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뇌에 치명적인 손상이나 결함이 생긴 소아신경외과 환아들에게 수차례에 걸친 수술과 병실 생활은 갑자기 들이닥친 사고라기보다 아주 평범한 일상에 가깝다. 이들은 의료진과 보호자의 지극한 헌신 속에서 끝내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병마와 그 후유증들을 이겨낸다.


책 속에서 환자와 병원과 수술 이야기 다음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에피소드는 아버지에 대한 단상들이다. 저자가 의대생으로 마지막 해를 보낼 무렵, 그의 아버지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가다, 저자가 레지던트 2년 차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와중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제는 아득해져버린 아버지와의 추억이다. 그토록 애틋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저자는 가족을 잃은 보호자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자신이 겪었던 슬픔을 다시금 마주한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 상실과 애도가 반복되는 현장에 몸담으며 깊은 슬픔은 결국 숭고한 사랑과 연결되어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를 깨우친다.



병실을 나선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빈 회의실로 재빨리 들어가서 문을 닫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주저앉았다. 아이를 잃는다는 깊은 아픔을 내가 온전하게 이해해본 적이 없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또 앞으로도 그럴 일이 결코 없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외과 의사로 사는 동안 나는 이 깊은 아픔의 옆자리에 앉아 그들의 손을 잡은 채 수도 없이 고개를 돌려가며 눈물을 흘린다.

p63 2장 '실밥' 중

어떤 수술이든 들어가기 직전에 기다리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견디기 힘든 것 같다. 수술 단계를 하나하나 여러 차례 점검하고 나면, 수술을 시작하는 것 말고는 더는 할 일도 없다. 이 정도로 초집중하여 준비된 상태가 되면, 마치 벼랑 위를 맴돌면서 심연으로 뛰어들 용기를 짜내는 사람처럼 불안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런데 그 상태로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수술이 시작되면, 마침내 시작되면 그 순간, 불안은 그저…… 사라져버린다.

p171 10장 '관찰하고, 집도하고, 가르치라' 중

보호자가 알고 있는 사실 또는 의심하는 사실, 그러니까 당신들의 아이가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확인시켜줘야 하는 순간이 되면 나는 잠시 말을 멈춘다. 입술 사이로 말이 나오기 몇 초 전, 이들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놓을 말을 내 입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상대방이 받게 될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면서 그런 말을 전달할 방법 같은 건 없다. 이들이 이 아이의 부모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린다. 딸을 사랑으로 돌본 이들은 지금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이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누가 내게 이런 소식을 전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도저히 견디지 못할 거라고, 내가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알아야 한다. 그게 내 일이다.

p196 11장 '대화' 중

당직을 딱 한 시간만 서고 있어도 그 사이 신경외과 레지던트는 면도 중에 뇌출혈을 일으킨 남편을 데리고 응급실에 내원한 할머니에게 50년을 해로한 남편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그건 어떤 수술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고서 바로 직후에, 소아중환자실의 호출을 받고 달려가 두개 내압 상승으로 죽어가는 네 살 소녀의 뇌에 배액관을 삽관하고, 몇 분 뒤 눈을 뜨고 부모의 손가락을 꼭 쥐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본다. 딱 한 시간. 한 시간이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한 시간은 일주일 내내, 한 달 내내, 그렇게 정규 수련 과정 7년 내내 반복된다. 이런 교육은 끝이 없다. 적어도 우리가 탐색해 들어가는 그 조용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치열하고 소중한 인간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끝이란 게 없다.

p237 14장 '버킷 라인' 중

내가 치료하던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생길 때면, 그들의 부모와 가족의 얼굴에서 똑같은 슬픔을 읽었다. 그러나 이건 내가 처음으로 겪어본 진정한 상실이었고, 슬픔이었다. 이후로 한동안은 의료진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망하는 환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감정이 되살아났다. (…) 신경외과에서 상실의 슬픔은 풍토병과 같은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피해갈 길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반복되는 슬픔을 지켜보면서 결국 나는 슬픔이 기쁨만큼이나 우리 삶의 일부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로, 상실의 슬픔이 고조되는 건 결국 사랑이 가져다주는 강렬한 기쁨 때문이다.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존재감을 잃는다. 상실과 사랑은 틀림없이 공존한다.

p277 16장 '아버지가 떠나시던 날' 중



의학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극적인 이야기. 병원을 충분히 오래 다니다 보면, 이런 이야기들에 굳이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신경외과에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훨씬 더 극적인 경향이 있다. 삶과 죽음, 고통과 기쁨, 심오한 영적 위기와 응답받은 기도의 교차점에 있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무엇보다 삶이 값지고 의미 있는 것이라는 느낌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산다는 것 자체가 주변의 모든 것을 고조시킨다. 사랑하는 이들과 포옹을 나누는 시간이 이전보다 조금 더 길어진다. 자연 속에서 하이킹하며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이 조금 더 깊어진다. 안전과 건강에 대한 감사가 이제 더 가까이 다가온다.

p392 에필로그 중

신경외과에서 우리는 환자들과 함께 걸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심오한 교훈들을 얻는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한 존재라는 깨달음, 우리 인생이 한순간에 바뀔 수도 있다는 깨달음은 어떤 길을 걷고 있든 간에 우리 모두에게 변함없는 사실이다. 지구상에서 우리가 맺은 단 하나의 계약이 있다면, 그건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과 고난에 면역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닌 회복력과 은혜와 치유에 대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러한 두려움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다. 

p405 에필로그 중




저자의 진심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문장에, 책을 읽을수록 벅찬 감동에 눈시울이 여러번 뜨거워지는 시간을 보냈다. 


고귀한 생명을 진정으로 대하는 저자의 모습에 감히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함께하는 동료들에 대한 존중과 환자와 보호자를 마주하는 따스함이 정말 진심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라 책을 읽는내내 존경심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책 제목처럼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진심이며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마무리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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