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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만두 ㅣ 열림원어린이 동시집 시리즈
김유석 지음 / 열림원어린이 / 2023년 11월
평점 :

나는 왕만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른 봄에 새하얗게 피어나는 목련 꽃이 생각난다. 동글동글한 모양이 꼭 닮은 듯해서 오래된 기억이지만 그 이미지는 금새 사라지지 않고 자꾸 되새김질하듯 봄만되면 그려내곤 했다.
오늘 만난 김유석 시인의 <왕만두>라는 시는 맛있고 뜨거운 왕만두가 화가 나서 곧 터질 것 같은 엄마의 얼굴이 되었다. 화난 엄마의 눈치를 보는 아이의 안쓰러운 모습이 그려져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났다.
흙내음 가득한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김유석 시인의 동시에는 가족, 음식, 자연, 동물 등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것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형이 사라졌다
엄마 아빤 안 닮고
나랑은 좀 닮은 녀석
축구도 잘하지만
음, 축구만 참 잘하는
맨날 게임하자 꼬시던 형 대신
코밑이 시컴시컴
샤프심 자국 같은 게 난 수상한 녀석이
어느 날 집에 들어왔다
나를 쫓아내고
방을 혼자 쓰려 하질 않나
거울 속으로 들어가
똥폼을 잡질 않나
게임하자 조르면
쬐끄만 게 까불어!
뻑 하면 이런 말이나 하는
기분 나쁜 저 녀석
중학생이면 다냐?
어쩜 이리도 포인트만 콕콕 찝어 사춘기 형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는지 시를 읽으며 감탄을 자아냈다. 조만간 찾아올 아들의 사춘기 모습을 미리 보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또 미소짓다가 했다. 동생이 보는 형은 그저 낯선 외계인같은 실체가 현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아 공감하는 마음이 더 크게 와닿는 시였다.
공책 한 권 달랑 들고
들판학교 다니는 우리 아빠
빽빽이 썼다가 지우고
이듬해 봄부터 다시 쓰는
그래도 너덜거리지 않는
울 아빠 파란 공책에는
찰랑찰랑 벼들이 넘실거려요
맞춤법이 조금씩 틀린 벌레소리 들리고
할아버지 닮은
염소도 한 마리 묶여 있어요.
똑 똑 똑
땀방울 말줄임표를 따라가면
하늘이 내려와 밑줄을 긋는 지평선 위에
따뜻한 내 옷이랑 새 운동화가 놓여 있지요.
흰 눈 지우개로 말끔히 지워내서
아무도 모르는 줄 알지만
너무 꾹꾹 눌러 써서
뒷장에 남은 자국을
겨울이면
기러기들과 함께 나는 읽지요.
농사짓는 아빠의 일년을 이렇게나 계절감 있게 은유적으로 표현한 동시를 읽으니, 농부의 사계절을 졸졸졸 따라다니며 지켜보듯 마음이 설레임부터 고단함, 풍요로움, 안쓰러움까지 느껴졌다. 한 해동안 부지런히 움직여 맞이한 농사의 결과물이 아빠가 열심히 공부한 흔적처럼 느껴져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 담겨있어 마음이 따뜻한 시간을 선물해주는 기분이었다.
가슴에도
등에도
저렇게나 많은
아기옥수수들
무슨 노래를 들려주길래
뜨거운 햇볕 아래
새근새근
모두 잠들었을까
살짜기 앉아 엿듣던
잠자리 한 마리
저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어
아줌마 예쁜 머리핀 되었네
한여름 찰지게 잘 익은 옥수수는 건강한 간식으로도 참 유용한 먹거리인데, 알알이 잘 영글은 옥수수의 모습을 참으로 어여쁘게 표현한 시였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쑥쑥 잘 자라는 아기옥수수에게 얼마나 달콤한 자장가를 불러주길래, 엿듣던 잠자리까지 곤히 잠들게 만드는지 그 사랑스럽고 달콤한 모습이 상상이 되어 웃을 짓게 만든다. 길쭉한 옥수수 머리에 잠자리가 살포시 내려앉아 조심스레 날개짓 하는 그림은 한여름 초록빛 가득한 들판의 모습같아 더 아름답고 여유롭게 느껴져 실로 함께 그 자리에서 꾸벅 졸것만 같은 기분좋은 풍경이 떠오르게 했다.
김유석 시인의 동시에는 따스한 시골의 풍경과 감성이 나즈막히 전해지고, 자연과 식물, 동물 등을 마주하는 어린 아이들의 호기심과 동심을 편안하게 펼쳐준다. 어른들에게도 새삼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바쁜 일상에 지친 피로감을 쉬이 풀어주는 초록빛 위안이 담겨있다.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며 지루해질때 쯤, 좀 더 새로운 시각의 감동과 공감을 경험하게 해주는 <왕만두> 동시집을 읽으며,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 넉넉하고 스트레스까지 해소해 줄 유쾌한 힐링 타임을 챙겨보시길 바란다.
<미자모 서평단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