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 열림원어린이 동시집 시리즈
이창숙 지음 / 열림원어린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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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노랑 표지에 개구진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시가 주는 묘미는 역시나 엉뚱하면서도 아무리 모나고 미운 표현을 써도, 어린이 시선으로 마주한 순수하고 맑은 모습으로 인해 읽는 누구에게나 잔잔한 감동과 뜻밖의 울림을 선물해 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2023년 우수 출판 콘텐츠 선정작인 <쥐구멍>의 저자 이창숙 시인은 격월간 동시 잡지 <동시마중>으로 등단하였으며, 2009년 우리교육 어린이책 작가상 창작 부문 대상을 받았고, 지금도 북한산 아래서 동화, 동시, 청소년 소설 등 다양한 소재의 글을 쓰고 있다.



다른 학교 다니는 학원 친구가

김민호 아느냐고 물어보기에

우리 반 애라고 말했다

공부도 못하고,

행동도 느리고,

존재감 없는 애라고,

그런데 학원 친구가 말했다

걔가 너 진짜 좋은 친구라고 하더라!

p16 쥐구멍

반전의 감동으로 마음 한 켠이 쿵하고 떨어졌다.

민호라는 친구에게 의도치 않게 뒷담화를 한 것 같아 괜히 미안하고 얼굴 빨개져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교실에서 만나면 더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줘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잔칫집에서 돌아가는 할머니 앞에 호랑이가 나타났어

할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옜다, 개떡

한 고개 넘어가자 호랑이가 할머니를 따라왔어

할멈, 떡 하나 더 주면 안 잡아먹지

옜다, 백설기

다시 한 고개 넘어가자 호랑이가 또 나타났어

할멈, 할멈

옜다, 인절미

호랑이는 계속 할머니만 따라왔어

할멈, 할멈

왜, 떡 더 주랴?

그게 아니구 할멈 잘못했어요 제발 물 좀 주세요!

p46 떡보 호랑이

크하하하하.

시를 읽고나면 크게 함박웃음 터트리는 재미를 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내용을 그려가며 시를 읽다보면, 또 한번 유쾌하게 반전을 내밀며 끝맺는 시인의 엉뚱함에, 아이도 나도 함께 활짝 눈웃음꽃 피우는 장면을 연출하는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준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잠시 세 들어 사는 너희가

집을 이렇게 망가뜨리다니

파헤치고 더럽히고 무너뜨리고

아무리 봐주려 해도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불볕더위다, 받아랏!

홍수다, 각오해랏!

지진이다, 다다다닷!

코로나다, 굴복하랏!

지구에서 나가, 인간들아!

지구가 정말 화났나 봐요

p94 경고장

정말 우리 지구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라며 반성하게 되는 시를 만났다. 세상은 나날이 발전하고 놀라운 기술을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만큼, 소중하고 하나뿐인 우리 지구를 숨 멎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현재를 꼬집는 시였다. 시인의 지구를 대변하는 표현은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노력을 기울여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는 기후 환경의 심각성을 되돌아보고 지구의 건강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게 만든다. 아이와 함께 지구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에도 좋은 시였다.

어려서 엄마는 매일

오 분만 오 분만 오 분만 더!

깨울 때마다 이랬대요

어려서 아빠는 매일

백 원만 백 원만 백 원만 줘!

군것질 하려고 이랬대요

오 분만 공주와 백 원만 왕자가 만나서

한 판만 한 판만 딱 한 판만!

축구왕 딸을 낳은 거죠

p110 오 분만 공주와 백 원만 왕자의 딸

엄마, 아빠의 어릴적 깜찍한 일화를 재미나게 풀어낸 시인의 기발함에 또 한번 감탄하는 대목이었다. 매일 아침 오 분만 더 자고팠던 잠꾸러기 엄마, 백 원만 있음 학교 앞 문구점에서 즐거운 군것질 거리를 살 수 있었던 아빠의 추억담이 담긴 이야기는 그 시절을 알지 못하는 딸에겐 유치발랄한 상상의 시간을 선물해준다. 또 엄마, 아빠에겐 그 시절을 회상하는 추억을 오롯이 떠올리게 하는 빛바랜 사진첩을 펼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젠 매번 딱 한 판만을 외치는 축구왕 딸과의 실랑이를 매치해 서로를 공감하는 시간도 내어준다.



동시는 누구에게라도 잊고 있던 어린이의 시선과 목소리로 돌아가 그 순간을 다시금 살게 해주는 것 같다. 이번 이창숙 동시집 <쥐구멍>도 아이와 함께 읽으며 아이보다 더 공감하고 위로받고 울림을 고스란히 느끼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다소 엉뚱하고 기막힌 상상력으로 펼쳐낸 시의 제목과 문장들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호기심이 마구마구 피어올라 유쾌함과 즐거움을 더해준다.

또한 사람, 동물, 자연 등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의 소중함과 중요함을 한번 더 되새기는 진중한 시간도 선물해준다.


동시가 주는 달콤한 재미와 기분좋은 의미도 챙길 수 있는 이창숙 시인의 시집을 꼭 한번 펼쳐보길 추천하며 마무리한다.




<미자모 서평단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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