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아름다운 나태주의 동시수업 작고 아름다운 수업
나태주.나민애 엮음 / 열림원어린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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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동시 83편이 담긴

<작고 아름다운 나태주의 동시수업>은 나태주 시인과 그의 딸인 나민애 서울대 교수가 함께 엮어낸 동시집이다.

어릴적에는 순수한 마음 그대로를 연필로 꼭꼭 눌러 쓰던 동시가, 어느날부터는 그 은유에 담긴 뜻이 어렵게만 다가와 한동안 시집은 내게 펼치기 힘든 장르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커가는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마주한 어여쁜 동시를 어른의 눈으로 다시 만났을 때는, 세상 무엇이 이보다 솔직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래 이런게 행복이고 사랑이지, 라는 다정하고 아름다운 것이 가슴에 와닿는게 다시 느껴기지 시작했던 것 같다.

책을 펼치니 <과수원길> <구슬비> <엄마야 누나야> <꽃밭에서> <반달> <퐁당퐁당> <섬집아기> 등등 나의 어린 시절 애창 동요였던 아름다운 노랫말들이 수두룩 담겨있어, 책을 읽는내내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흥얼흥얼 절로 따라 불러져 잊고있던 동심의 시간을 선물받은 따뜻한 시간이었다.









아이와 함께 읽으며 오래오래 기억에 머문 몇 편의 시와 단상들을 짧게 기록해 본다.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튀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의 '콩, 너는 죽었다'

크하하하, 시를 읽으며 너무 귀여운 상황이 그려져서 아이와 함께 콩콩콩 튀어 달아나는 모습을 흉내내며 콩과 한판 대결이라도 하듯 즐겁게 웃은 기억이 난다.

김용택 시인은 어쩜 이리 실감나게 표현을 하셨는지 정말 콩을 쫓아 쥐구멍까지 달려가 구멍 속을 빼꼼 쳐다볼 것 같은 상상이 그려진 시였다. 눈과 귀를 자극하는 단어들이 동시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만화영화 톰과 제리를 연상케 하는 코믹하고 유쾌한 순간이 떠올라 더 오래도록 기억될 시인 것 같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소오올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을 마주 보며 생끗

아카시아꽃 하이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박화목의 '과수원 길'

나의 최애 동요였다. 어린시절 줄곧 불러내던 노래중 단연 으뜸이었다. 5~6월 언제쯤인가 아빠와 산길 어딘가를 거닐며 딴 아카시아 잎으로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잎을 하나씩 떼어내고, 먼저 다 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했던 순간들이 아직 기억 속에 오래 머물러 있다. 이제는 아빠가 아닌 내 아이와 캠핑을 가거나 등산을 할 때면 종종 하는 게임이 되어버렸네. 이 멋진 시를 읊을 때면 항상 먼저 떠오를 즐거운 추억을 아이와 공유할 수 있어 참 좋다.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에서 울던 새소리를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

사과를 연구한 식물학자의 지식을 먹는다

사과나무집 딸이 바라보던 하늘을 먹는다

사과에 수액을 공급하던 사과나무 가지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세월, 사과나무 나이테를 먹는다

사과를 지탱해온 사과나무 뿌리를 먹는다

사과의 씨앗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자양분 흙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흙을 붙잡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먹는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함민복의 '사과를 먹으며'

와아. 작은 사과 하나에 온 우주, 온 세계가 다 들어 있었네. 우리가 무심코 먹는 사과 하나로 시인은 자연의 이치, 생성과 소멸의 우주 원리를 깨닫게 해준다. 사과를 존재하게 한 자연, 사과를 키우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역사 등으로 점점 확장되고, 이를 통해 모든 존재가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사과와 인간은 모두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하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며, 사과를 먹는 행위 속에 얼마나 많은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는지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어린 아이가 쓰는 동시에는 그 시기에만 표현할 수 있는 순수함과 발랄함이 담겼다면, 오늘 이렇게 마주한 83편의 아름다운 동시를 쓰신 시인들에게는 세상이 정해준 나이가 아닌, 과거 어린이였던 그 마음 속에 해맑고 장난기 가득한 사랑스러움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생의 쓰고 깊은 맛까지 가득 담겨있다.

'딱 동시처럼만 살고 싶다'는 저자의 말처럼, 마음이 울적하거나 사는 일에 지쳤을 때 한편의 따스한 동시를 읽으며, 어린이의 맑은 영혼으로 돌아가 힐링하는 마음으로 다시 웃으며 행복감을 찾는 내일을 맞이하길 감히 바란다.

<작고 아름다운 나태주의 동시수업>은 곁에 두고 자주 펼치며 아이와 작은 추억을 하나씩 쌓아가듯 수다 시간으로 활용해도 좋을 듯 하고, 한편 한편 필사하며 힐링 시간을 가져도 좋을 편안하고 다정한 책이니 꼭 한번 챙겨보시길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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