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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평점 :

3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온 성실한 천재 베르베르의 첫 자전적 에세이.
읽는내내 유쾌했고 흥미로웠으며,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을 살고 있는 저자에게 더 흠뻑 빠지게 되었다.
이번 책의 원제는 <개미의 회고록>이라고 한다. 대중에게 소설 <개미>의 작가로 인식되는 베르베르가 개미처럼 차곡차곡 써온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뒤늦게 기록한 일기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한계를 모르는 상상력으로 방대한 작품 세계를 창조해 온 저자가 어떤 삶을 살며 어떻게 글을 써왔는지 '인간 베르베르'의 삶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가장 진솔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남들보다 모자란 기억력을 상상력으로 대체하여 웃기고 기상천외한 얘기를 만들어 내던 소년, 아버지와 잠자리 책읽기와 체스 게임을 사랑하던 소년은 8살이 되던 해에 <벼룩의 추억>이라는 작문 숙제를 시작으로 과감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벼룩이 인간의 발에서 시작해 머리 꼭대기에 도달하는 대장정을 벼룩의 일인칭 시점으로 쓴 이야기인데, 8살 꼬마 베르베르의 기발한 상상력의 시작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독창적인 이야기를 쓸 욕심에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중에서도 개미가 유독 좋았고, 유리병에 갇힌 주인공 개미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림으로 그렸다. 이때 데뷔작 <개미>의 첫 버젼이 쓰여진 셈이다.
잊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기록이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기록하는 게 방법이다.
p43
호기심 왕성한 저자에게 자극제, 촉매제가 된 여럿 사람들의 말에 그는 귀 기울이고 가르침을 익히고 기록해둔 것들은 나중에 여러 소설의 반영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일은 멈추지 않았고, 고등학생 땐 <오젠의 수프> 라는 학교 신문을 탄생 시키기에 이른다. 자신만의 새로운 체계를 세워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진취적인 사고를 해야한다고 깨닫는 시기가 이때라고 한다.
법대에 진학 후에는 지역 신문 인턴기자를 비롯해 소규모 잡지사에서 과학 기자로 일하는 등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소설가가 되는 비결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
p102
매일 아침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글을 쓰기로 정하고, 무조건 열장을 채우며 실행한 결과, 단편<개미 제국>이 100장, 500장, 1,000장 짜리 대작으로 변했다고 한다.
상상력은 마치 근육과 같아 쓰면 쓸수록 탄력이 붙고 강해진다.
p128
베르베르에게 영향을 준 작가로는 필립 K 딕, 쥘 베른, 아이작 아시모프, 프랭크 허버트 등이다.
특히 딕의 독창적이고 경이로운 플룻에 매료되어 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한다. 독자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보다 독자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해 써야 한다는 확신을 품게 해준 작가로 꼽는다.

1991년 2월 15일,
드디어 장장 12년 동안 잉태하고 있던 <개미>가 세상에 나왔다. 12년이라는 시간 속에는 개미집을 욕조에 두고 매일매일 관찰하기도 했고, 스물한 살에 아프리카 정글 속 탐사를 떠나기도 했으며, 그곳에서 '마냥 개미'를 심층 취재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많은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으며, 1500장을 350장으로 줄이는 힘든 과정이었지만 압축 훈련, 내려놓기를 배운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개미>라는 소설의 해외 진출이 1993년도에 한국이 첫 번째였고 상당히 성공적이었으며, 그 이후에도 꾸준히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인이 사랑하는 최고의 프랑스 작가로 자리 매김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 몸과 마음이 문제를 겪고 있다면 당장 글을 써보라. 글을 쓰는 순간 당신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p223
저가가 앓고 있던 강직 척추염이라는 질병은 <개미> 출간 이후에는 재발하지 않았다며, 이처럼 글쓰기 치료의 효과를 몸소 경험했다고 말한다.
요즘 다양한 방법으로 '글쓰기' 치료를 추천하는 이들이 많은데, 베르베르르 역시 추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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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여덟 살부터 예순 살 현재까지의 삶의 여정 속에서 그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 어떤 작품에 어떻게 영감을 줬고, 어떤 인물, 어떤 내용의 모티브가 됐는지 등을 유쾌하고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처럼,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오롯이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을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글을 쓸 힘이 있는 한, 내 책들 읽어 줄 독자가 존재하는 한 계속 쓸 생각' 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앞으로 그가 보여줄 무한한 상상력이과 독창적인 다음 소설을 기대하며 마무리한다.
베르베르의 소설을 한번도 접하지 않았거나, 관심을 있지만 부담스러웠던 분들이라면 이번 에세이 먼저 읽어보면 분명 그의 매력에 풍덩 빠지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