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해바라기
오윤희 지음 / 북레시피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주인공이고 각자만의 서사가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결핍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매슬로우의 기본 욕구에 충족되지 못해 결핍되어 오는 현상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다르다. 밀양 집단 성폭행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 이후 20년 후 또다시 떠들썩하게 만드는 뉴스를 첫발단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면 충분히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형사 책임 무능력자인 범법 소년은 만 10세 미만이에요. 10~14세인 촉법소년 역시 형사 책임 무능력자라 형사 처벌은 불가능하지만, 소년법에 따라 소년 사건으로 보호 처분 가능하고요. 하지만 수완이는 14~19세인 범죄소년에 해당해 소년부 송치는 물론 형사재판까지도 가능한 나이입니다.

검은 해바라기 26p

게다가 몇 년 전부터 이슈가 된 촉법소년들이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사건 등을 떠오르게 만드는 문구. 인간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본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검은 해바라기의 내용에는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가장 위험한 곳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공감하는 바이다. 저자의 필력이 워낙 좋아서 웹 소설처럼 빠르게 훌훌 지나가는 인간들의 어두운 심리를 가장 정확하게 꿰뚫고 있어 소름 돋았다.

가족이란 틀 안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

수완이는 그렇게 내 마음을 어둠으로 물들어 있을 때 이 세상에 나왔다. 지완과 수완, 둘 다 내겐 소중한 아들이지만, 그들은 애초에 출발점부터가 달랐다. 사랑 속에서 잉태된 지완과 달리 수완은 폭력 속에서 씨앗을 맺었다. 지완을 임신했다는 사실이 나와 남편을 결혼으로 맺어줄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여겨졌던 반면, 수완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남편의 폭력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며 마음속에 어둡고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처음부터 두 아이는 내게 빛과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검은 해바라기 188p

읽으면서 공책에 떠오르는 단어나 생각들을 이나,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심리를 추론하며 적어나가며 읽었는데, 결국엔 작가의 기획의도나 이를 통해 알려주는 바가 무엇인지를 맞췄다는 생각에 ‘와, 역시나.’하고 기뻤다. 형이라는 그림자 속에 자라난 수완의 가정은 불완전함 그 자체이다.

읽으면서 처음에 정서적 학대를 의심했고, 두 번째는 완벽한 타이틀을 가진 형의 빛나는 존재감에 이어, 형을 편애하며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이를 다그치고, 자신의 욕심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어디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중산층 가정의 일상. 그런 비교와 편애에 위축이 되어 심리적 압박감을 가졌을 수완은 자신의 마음을 꼭꼭 숨기며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에 애잔했다.

부모의 눈에는 제 자식이 언제까지고 어린애로만 비친다.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돼도 늘 지켜주고 감싸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자식을 향한 부모의 과도한 애정과 삐뚤어진 이기심 때문에 이따금 놓치고 있을 뿐 사실은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자식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더 잘잘못을 잘 분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검은 해바라기 131~132p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로 사과를 하는 해준의 행동, 어른보다는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사건을 자식이 저질렀을 때, 내 아이를 감싸는 게 아니라 사리분별이 분명하게 하여 가르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합리화하며 사건을 덮으려고 나 책임 회피 및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등의 방어기제가 나온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을 수 있을까.

지완의 행동은 그야말로 ‘완벽한’ 타이틀 이면에 숨겨진 자아. 가면이 한 꺼풀 벗겨져도 타인 말하듯 하는 태도. 마치 거대한 바둑판에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장기짝처럼 이용하고 가볍게 버리는 듯한 모습, 엄마를 가스라이팅 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편견을 갖게 만들며 수완을 서서히 죽여간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타인의 눈치만을 살피고 정답만을 골라 얘기하는 등, 타인의 심리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는 치밀하고 계산적인 행동으로, 변수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눈에 거슬리는 것은 뭐든지 치워 모든 것을 통제하며, 열등한 사람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는 것등으로 나르시시즘 혹은 사이코패스의 행동이 한데 섞인 느낌으로 소름이 쫙쫙. 처음에 형이 변호사 만날 때 대화를 주고받을 때 이상한 느낌을 받은 건 나뿐인가. 했더니 역시나였다.

공허가 자리 잡아, 아무런 감정이 없는 빛, 빛에 가려 그림자로 살 수밖에 없는 어둠. 이 책이 내게 온건 행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읽으면 읽을수록 날카로운 칼날 위를 걷는 아슬아슬하고도 불안정한 가족 안에서 이루어진 삶이 한데 묶여 깊은 심연에 던져놓은 그저 침묵하고 싶은 나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였다.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