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기독교를 다녔지만, 기독교를 다닌 신자들 중에 친구 여럿이 몰려다니면서 자기보다 나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악랄하게 구는 걸 보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한 모습들이 보기 질려서 교회를 안 나가게 되었다. 엄마 말로는 우리가 4대째 기독교 집안이고, 내 남동생이 목사이기 때문에 교회를 가야 한다느니 강요를 끊임없이 해와서 더욱더 내 마음은 거절과 불신, 불만으로 가득 차 믿음이 사라졌었다.
잘 못을 한 사람은 회계를 하면 하느님이 용서해 주신다는 말에, 나는 그럼 범죄자들도 살인 지르면서 기도하면 용서해 주겠네? 또 범죄 일으키고. 무한 반복이라고 엄마한테 비아냥 거리기까지 했다. 어릴 때부터 폭력으로 맞고 자라서, 아빠와 엄마가 이혼해달라고, 고통 좀 끝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빌며 울었으나 몇 년이 지나도 그 문제는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나 엄마와의 관계에 있어 꼬인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남은 건 언제나 상처뿐이었다.
그런데 엄마도 회개의 뜻을 잘 못 알고 있던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나. 성경 책을 그리 열심히 들여다보고 하시는 분이 그 참된 뜻을 모른다는 것이다.
엄마는 내가 애를 낳고 성인이 되었는데도 교회 가라고 질리도록 말하고, 기독교 여한 다고 다른 종교는 안돼라는 무조건적 강요에 내가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기독교는 나에게 그런 불편함의 대상이 되었다. 저 말에 반박할 말은 반박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성경 책을 과학으로 풀어서 신랄하게 비판해 줘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가서 기도하라는 말에, 예를 들어서 청소년기의 나의 답변은 이러했다.
“엄마가 하는 건 강요야. 누굴 위해서 자꾸 강요하는 거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 욕심 채우고자 강요하는 거잖아. 강요에 의해 교회 가서 기도하면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어. 교회는 자꾸 강요하고 불필요하게 간섭하는데 누가 가고 싶겠어? 엄마나 많이 가세요.”
최근 들어서는 엄마한테 하나하나 따져댔다.
“지금 엄마가 하는 건 바리새인들이나 하는 거야. 자기 욕심 채우고자. 예수님이 그러는데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다고 했어. 성경 책 읽으라 할 때 제대로 안 읽었지? 불필요하게 감정 낭비하고 싶지 않아. 엄마가 자꾸 그러면 난 절에 갈 거야. 아니면 귀신을 믿던 할 거라고.”
난 하면 한다는 성격이라서 그런가, 최근 들어 기독교 이야기는 잘 안 하신다. 내가 교회에 ‘교’ 짜만 들어도 발작 증세까지 왔으니까 더는 날 건드리지 않는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그저 어느 순간에 눈에 가고, 가고 싶고 그럴듯한 마음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기도는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다고. 꼭 교회 안이 아니어도 된다고.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