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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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에는 제목에 의아함을 가지고 있었다. 밀항선에서 무언가를 두고 두 명의 사냥꾼들이 인간을 사냥하는 내용으로 흘러갈 줄 알았지만, 절대 아니었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내용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아, 그래서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이구나… 하는 것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보는 듯한 전개, 술술 읽히는 글들로 인해 장면 하나하나가 묘사되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작가의 전 작품인 악플러 수용소도 읽어본 적이 있어서, 나날이 늘어나는 필력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잘 짜인 계책이랄까. 각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영혼을 불어넣은 듯, 숨을 쉬는 듯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책 덮을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책의 시작점이 되는 의문의 여인, 진가림.

그녀는 만난 이래 이렇듯 독특한 수사법을 구사했다. 극단적인 선택이지만 제공함으로써 상대를 자신의 통제권 아래 두는 것. 처음 본 순간부터 느낀 사실이지만, 영춘의 눈빛은 사람을 ‘본다’기보다 ‘투시’하는 것에 가까웠다. 단숨에 엑스선으로 사람을 훑어 내리고 속으로 어떤 결론을 내린 것 같은 눈빛.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117p

시치미를 떼고 되물을 줄 알았는데 영춘이 의외로 술술 대답했다. 더 이상 상대에게 그 어떤 수사권이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오는 뻔뻔함이었고.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82p

그녀는 사람을 요리해 먹을 줄 안다. 급박한 상황에서 저런 임기응변은 산전수전 다 겪은 데서 얻은 관록이라고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그냥 타고난 것이다. 타고난 것.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125p

시골로 좌천되어 온 태열이 만난 진가림이라는 여자에 대한 평가가 이 정도라면 남들은 말도 할 것도 없었다. 있는데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일까. 모든 게 한 사람의 뇌에서 나온 잘 짜인 시나리오처럼 완벽하고 철저한 계략.. 정말로 신기했다. 잘 짜인 스토리에 반해 몇 번이고 재탕할 것 같다.

스파이크 피트라고도 하죠. 구덩이를 판 다음 날카로운 창을 박아 놓고 적이 떨어지기를 유도하는 장치. 일종의 덫이죠.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당신들도… 당한 것 같네요. 명심하세요. 그 여잔 자기에게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그런 식으로 제거한답니다. 제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166p

권력자를 이용하는 법은 간단하다. 그들로 하여금 빚을 지게 하면 된다. 그럼 그 빚은 현물로 돌려받는 대신, 그들의 지위를 이용해 아주 손쉽게 해낼 수 있는 행동을 이끌어 내면 충분하다. 그렇다고 둘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채무 관계는 끝났어도 또 다른 유대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정경유착의 운행 원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167p

태열이 이런 계책에 당해버린 것이다. 처음에 자동차 사고부터 시작해서, 밀항선까지 모든 것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획에 의한 것. 그래서일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계획에 말려든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친 듯이 읽었는데, 벌써 끝이라니. 아쉬움도 남는, 그런 여운이 담긴 책이다.

기세 좋게 단언하는 그 모습에서 치밀함이 엿보였다. 작은 것에도, 기습적인 것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교활한 사기꾼과 다시 손을 잡는 것만큼 세상에 위험한 일은 없다.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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