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마지막 여친 -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의 이야기들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사이먼 리치는 최연소 Saturday Night Show (SNS) 작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촌철살인이 미학인 SNS의 작가가 온갖 '사랑의 형태'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펜을 잡았다고 하면 상당히 흥미가 자극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상의 마지막 여친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의 이야기들」은 남녀가 (동성 커플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연애하는 다양한 과정에서 생기는 복잡미묘한 상황을 절묘하게 잡아낸다. 연애하는 순간 누구라도 지나칠 수 없는 긴장감 팽팽한 파워 게임이라든지, 혹은 긴장감이 늘어진 권태기 상황이라든지. 흥미로운 건 이런 순간을 겪는 주인공들이 역사속 인물 또는 하나님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명인(?)이라는 점이다. 저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하다 말고 여자친구의 "자기는 너무 바쁜 거 같아!" 하는 핀잔에 못 이겨 쩔쩔매는 모습을 보라. 정녕 사랑이란 신 조차도 곤혹스럽게 만드는 과업이란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사랑은 힘들고 피곤해!' 라는 풍자적, 그야말로 SNS 같은 이미지를 드러내어준다.


그런데 사이먼이 남자이기 때문인가. 어째서 그는 '연인' 관계에 있어서 남자가 겪는 고충만을 그렇게 열심히 나열하고 있는 것일까. 여자들이 들으면 웃기고 빈정 상하는 일일지 모른다. 심지어 본문엔 "여자친구 수리점" 이라는 단편도 실려있다. '여자친구가 히스테리를 부리면 수리를 할 수 있다' 라는 스피디하고 심플한 사고를 실현시키고 싶은 것 처럼 보인다. 그런가 하면 맘에 드는 생일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화가 난 여자친구 때문에 타임머신을 타고 그녀를 처음 만날 날로 돌아가, 모르는 사람으로 스쳐지나가는 선택을 하는 천재 과학자의 이야기도 있다. 이런 편협한 사고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 책이 저 미국에서 쓰인 책이란 걸 생각해본다. 저자가 과연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이겨낼 자신이 있었을까. 이것은 오히려 페미니스트들마저 껄껄 웃으면서 넘길 수준의 유머이며 풍자다. "단순한 우리 남자들은 그저 스위치를 끄고 싶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단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가슴 속에 "정말 연애가 그렇게 힘든 거라고...? 좋은 것도 있을텐데." 라고 의심하는 독자들에게 사이먼이 보여주는 '환상'은 결국 '성적인 것'으로 연결된다. 처음 만남에서 미묘하게 설레고, 그것이 성적인 욕구에 이르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달성되는 것. 모든 환상적인 순간에 거기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는 새로운 사랑이 싹틀 것 같은 찰나에, 다른 여자에 대한 성적 호기심으로 인해 지금 손에 잡은 인연 마저 놓치는 남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관계의 지속은 결국 '감옥살이'로 묘사된다. 연애의 '다양한 과정'을 절묘하게 캐치했다고 했지만 실은 그 정도의 수준이다. 대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커플들은 왜 하나 같이 그냥 그렇고 허무하거나 혹은 험악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인가. 그게 '연애의 종착점'이라는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어쩌면 '사랑은 이런 거야!' 라고 전달하는 부분은 없는지도 모른다. 사이먼은 그저 남녀의 미묘한 관계에 있어서 남자의 심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코믹하게 그려내고 싶었던 것일테다. 히스테리에 미쳐가는 여자의 모습을 안절부절 못해 하다가 눈길 돌리고 마는 남자의 무기력함을. 그들의 모습에서 남성독자들은 "맞아, 맞아." 할지도 모르고. 여성독자들은 자길 감당해내기엔 남자가 너무 성숙치 못하다고 불평할런지 모른다. 그런 것 조차 웃어 넘기면서 같이 얘기해볼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좋지 않을까. 의외로. 단순 재미만 보기에 그치지 않고, 커플들에게 '토론'의 가능성을 제시한 책이 아닌가 하고 괄목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실한다는 것
Steven K. Lee 지음 / 지식과감성#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소설은 주인공 시점에서 쓴 일기 형식의 글로 전개된다. 남자는 미국 월스트릿에서 경력을 쌓고 한국에 돌아와 논문을 쓸 정도로 스펙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가슴 속에 세상에 대한 증오와 허무함을 담고 있는 그. 논문을 쓰는 것도 언젠가 거만한 모두를 자기 아래 두기 위함이다. 인간 관계에 대한 갈증이란 없는 폐쇄적인 인간이다. 그런 주인공이 지율이란 여성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세상은 바뀐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그는 지율과의 미래를 위해 미국행을 관두고 한국에서 직업을 갖는 것 까지 열정적으로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지율이 그에게 이별을 선고하고, 이 세상이 모두 무의미하고 증오스러운 것이 된다.


주인공과 그의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에서 주인공이 삶을 살아온 방식이 드러난다. 


“그래, 너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것 때문에 망가지는 거야.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잃어버린 한 가지 때문에, 네가 가졌던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버리거나 포기하는 게 쉽지. 너는 항상 그래왔어. 그게 내가 너에게 해주는 충고야.”


예언이라도 한 듯 지율과 헤어진 시점부터 주인공이 망가지는 과정이 그려진다. 지율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고 전심을 다해 미래를 그렸으나 실연을 당한 뒤 그는 '이제까지의 모든 삶'까지 부정한다. 그는 자기파괴적이 되어서 자기 앞에 놓여있던 두 개 갈래의 길을 모두 부정하고 낯선 땅에 가 공장 알바를 하며 자기를 혹사한다.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지율을 추억하고, 아픔을 후벼파며, 그 아픔을 오히려 즐기듯 그 안에서 헤어나오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것도 지쳐버린 그는, 모든 걸 정리하고 이젠 미국으로 건너가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지율을 잃은 아픔은 조금 무뎌지는 것 같았지만 역시 불쑥 불쑥 그 아픔이 튀어나와 그를 괴롭힌다. 


자. 이제 주인공은 "그 잃어버린 한가지" 때문에 그는 자기가 이 세상에 처음으로 가지고 왔던 그것 조차 포기하기로 할 것이다. 고작 사랑을 하나 잃은 것 갖고 무모한 선택을 한다고 생각할 부분이다. 그러나 저자는 주인공 독백을 통해 그를 그의 아버지가 말했던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 에서 "사랑을 간직하고 추억한 남자"로 승화시킨다. 


"그리고 이 더러운 세상에, 이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진심이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려는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그러나 그는 정말 승화 되었는가. 이 지고지순한 성격의 남자가 그런 특정한 결말에 도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한번도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었던 인간이라 지율에게 무한정 모든 걸 쏟아버린 게 실수일지도 모른다. 그가 아버지의 말대로 심신이 강인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지율이 그렇게나 아쉬움이 들게 할 정도로 완벽한 여신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 표지에서 던지는 표제 "영원성과, 그 부재에 관한 고찰. 그리고 변해가는 사람들" 이라는 것은 주인공 개인에 한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런 한 남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를 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이 주는 '부재에 관한 고찰'은 결국 영원할 것 같았던 것(사랑)이 상실됨으로 인해 자기파괴적 인간이 그 파괴의 끝에도 도달할 수 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과연 주인공이 변했는가. 변하는 것은 그의 '감정'뿐이다. 그라는 사람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자기파괴적 성향을 간직한 그의 캐릭터는 변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한정적인 고찰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표제는 이 책에 부여되기엔 좀 과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주인공은 본문에서 이별로 인해 겪는 감정이 여타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었던 것과 같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별하고 꿈이 좌절된 사람이 보이는 감정의 변화를 그 주인공에게만 맞춰서 고스란히 잘 써내려 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율이 대체 왜 주인공에게 이별을 고했는지 알 수도 없다. 주인공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실은 철저하게 막혀 있다. 개인 고찰에 집중 조명하고 있는 구조 때문에 감정 이입의 가능성이 증폭된다.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은 주인공이 보여주는 심리 변화 과정과 자신의 것을 비교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나아갈 길을 생각해볼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애초에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본질적인 성향 덕분에 나에게 배신감을 안겨준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은 더욱 커져가고 있을 뿐이다.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


  

  “그래, 너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것 때문에 망가지는 거야.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잃어버린 한 가지 때문에, 네가 가졌던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버리거나 포기하는 게 쉽지. 너는 항상 그래왔어. 그게 내가 너에게 해주는 충고야.”

  

  “슬픔은 나누라는 말이 있다. 단지 자신만의 특정적인 기분을 위하여, 남에게 짐을 주는 행위, 그리고 받는 행위. 이런 멍청하기 짝이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앞으로 내 감정에 관하여 솔직하게 표현하기로 마음 먹었다. 더 이상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았다. 나는 논리적인 사람이 되기를 점점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이런 감정들이 어색하지만 좋았다. 너무 행복하고, 이 세상이, 내 삶이 너무 좋다.”

  

  “서로가 서로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또는 그 사람과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사랑의 기술>에서 보면, 연애 초반의 강한 애정은, 그동안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독했는가를 나타낸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연애다. 나는 상대방과 깊은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녀와의 만남으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다. 그녀와 관련된 생각이 대부분이지만, 현실적인 생각과 계획도 미루지 않기로 했다. 그것조차도 우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미국에서 생활을 시도하는 생각도 했고, 내가 이곳에서 직업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이러한 느낌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반대로 그녀의 좋은 점을 찾기 어려웠다. 온전히 상대방 자체를 좋아했다.”

  

  “만약, 아주 만약 그녀가 없는 삶으로 돌아간다고 한다면, 더 이상 내 삶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혹은 내가 돌아갈 곳이 남아있기는 할까? 하는 두려움에 가슴 한구석이 석연치는 않다. 다만, 두렵지는 않다.”

  

  “각자의 삶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서로가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런 부분을 그녀와 늘 이야기 했다. 요즘 대화를 할 때면 그녀는 내 눈을 피한다. 서운하지만 애써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다.”

  

  “그녀가 나에게서 멀어지려 함을 느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제기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신 같은 존재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대로 끝임을 느낀다. 더 이상 이 삶에 미련이 없다.”

  

  “다만 이곳에서 느껴지는 슬픔은, 그녀와 함께 했을 때 세상 모든 것에 자신 있었던 나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것이다. 나는 세상과 소통하길 거부할 것이다.”

  

  “다시 우리가 했었던 약속들,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들 전부 하나씩 꺼내어 상기해보면, 또 다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지속적으로 이 고통을 유지할 것이다.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생각하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그녀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들을 다시 되돌려 상상을 하면, 필름에 물이 묻어, 흐리게 나오는 사진처럼 상대의 모습이 생각났다.”

  

  “혹시라도 그녀가 자기가 했던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며, 우리가 다시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메시지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던 속마음도 있었다. 그녀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내가 저질렀던 잘못된 말투나 행동들에 관하여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을 지속하다가도, 대부분은 더 이상 소용없는 일이라며, 혼자서 하던 상념을 끝내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들을 지속하기로 매번 다짐한다.”

  

  “이제는 제법 멀어진 것 같았는데, 이렇게 안심하고 지낼 때 마다, 익숙한 그 통증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외로운 감정과 이별의 고통은 내 신체 일부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타의적인 것들로 내 삶을 바꾸려 해도, 그녀 없이는, 더 이상 나 자신만의 온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슬퍼지지 않을 때, 그것은 내 상황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 잠시 통증이 사라졌을 뿐, 그것은 좋아지는 상황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하여금 그 통증을 잠시 잊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더욱 나를 안 좋은 상태로 만들거나, 다른 것들로 하여금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들과 함께 나를 찾아오는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며, 거짓을 이야기하고, 그 거짓에 위안하며 살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한 때 내 거짓 삶의 일부로 남을 것이다. 아니 잊히는 것이었다. 거짓이기 때문에 간지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어떠한 형태로라도, 이런 방식의 삶을 정리하고 싶었다.” 


  “상대방을 그리워 하는 대신, 집중할 것들이 필요했었다. 잠시나마 상대방을 잊고 살아가게 도와줄 어떤 계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당시 많은 약속을 했다.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서로가 어떤 상황에서든 용기 내어 행동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다짐한, 내 모든 언어에 의미를 부여했고 심지어는 그러한 삶의 방식에 충분히 자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만이 내 삶을 윤택하고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였다는 것을 장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전의 무의미한 삶보다는, 그녀를 알게 되었던 이 현실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았던 상대방과 멀어진 후, 이제는 나 혼자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직면하고 있다. 그렇게 이제는 1년에 가까운 모든 계절을 혼자 느끼게 되었다.”

  

  “여러 가지 형태로 상대방을 그리워하면서, 내가 알고 있던 대상은 나만의 몽상으로 조금씩 입장이 변할 때도 있었던 것 같았다. 지독히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겪는 심리적 변화도, 내가 다른 문학 작품들을 통하여 보았을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많이 두렵다.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에서 두려움이 찾아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내 삶을 바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내 삶에 돌아온다면 어떨까. 이제라도 마음을 바로잡아볼 수 있을까. 아니 아마도 이제는 불가능에 가까울 거라 생각한다. 모든 절망들을 바라본 상태로 이 삶을 지속하게 된다.”

  

  “이제는 정말 두렵다. 곧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지금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더욱 깊어지는 상대방에 대한 마음과 절망. 그리고 그 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나 자신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를 점점 더 괴롭게 해. 하지만 아프지 않은 척 행동해야 해. 혹시라도 나로 인해 그녀가 아파하면 안 되거든.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프지 않은 척 연극 하는 거야.”

  

  “그리고 이 더러운 세상에, 이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진심이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려는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 사람이 잠시 이 세상에 다녀갔다고. 넌 내 삶에 있어 최고의 친구였어. 최고의 존재로 남아주어 고마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운명과 분노(Fates & Furies)>. 로런 그로프가 2015년에 쓴 장편소설(608p)이다. 이 이야기는 두 남녀의 결혼생활을 그들의 농밀한 관계와, 주변사람들이 일으키는 사건들을 조합하여 연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햇살처럼 아름답고 눈부시지만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수수께끼와 음울한 분노는 두 커플 사이에 메꿀 수 없는 간극을 만들고, 이윽고는 균열을 만들어낸다. 소설의 전반부 '운명'은 남편 로토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후반부 '분노'는 아내 마틸드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소설은 부유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 로토의 방황하는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고독감 탓에 문란하면서도 순수하여 위태로운 청년기를 보낸 로토. 그렇게 자란 로토는 부서질 것 처럼 순수한 영혼이어서 주변 사람들을 악(Evil)으로 만들어 버리는 어른이 된다. 그런 로토는 대학 졸업할 때쯤 광란의 파티에서 만난 마틸드에게 반해 몇 주 안에 결혼을 하고 만다. 로토에게 마틸드는 성녀였고, 열정적이었던 두 사람 사이에 빈틈은 없는 것 처럼 그에게 느껴졌다. 


로토가 46세에 죽고, 이제 혼자 남은 마틸드가 삶을 돌아본다. 어쩌면 로토는 마틸드가 살아온 과거의 무게를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녀를 멋대로 '성녀'로 만들고 있었을지 모른다. 사랑 받지 못하고, 터뜨리지 못할 분노를 키우고 자라 온 마틸드. 마틸드에게 로토는 자신의 억제된 분노와 우울을 투영시킬 수 없는 존재였다. 마틸다는 로토를 끌어안고 있을 때 떠오르는 무표정도 로토에겐 들킬 수 없는 것이었다. 마틸드는 자신이 원하는 길로 로토를 걸어가게 하는 것에서 자신의 가치를 오롯이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천재성을 드러낸 로토의 성공과 열정은 그녀에게 비참함을 안겼다. 마틸드는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것을 자학하듯 지켜보며 자신의 하찮음을 느낀다. 그리고 로토는 죽는 순간에도 마틸드를 비참하게 했다. 너무 급작스러운 죽음은 로토가 마틸드에게 어떠한 '마지막 메세지'도 전하지 못하게 했다! 혼자 남은 마틸드는 "이제 어떻게 하지" 하는 끝없는 물음을 던지고 그녀의 분노를 터뜨리기 시작한다. 그 분노는 자기파괴적이어서 그녀로 하여금 엉뚱한 사람에게서 애정을 원하게 하거나 혹은 친하게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배신하고 복수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전반부 '운명'이 시간 순서를 따라 진행되었다면 후반부 '분노'에서는 시간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마치 혼자 남은 마틸드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반영하듯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결혼생할까지 다양한 부분들이 잘린 필름 처럼 뒤섞여 있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마틸드의 과거(매춘), 마틸드가 로토에겐 숨겨왔던 고부갈등, 로토의 단짝 친구 콜리가 캐낸 마틸드의 매춘 과거, 그리고 마틸드가 없는 장소에서 그 비밀이 로토에게 폭로되었다는 사실, 의도적으로 마틸드가 불임수술을 했던 것들 까지. 이런 것들은 로토의 시선에선 가려져 있던 것들이었지만 서서히 둘의 결혼 생활에 침투해왔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했다. 마틸드의 분노는 콜리를 향한다. 그를 정상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마틸드의 작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복수를 위한 자료를 불태워 버리는 장면에서 그녀의 분노가 갈 길을 잃고 만다. 마틸드가 특유의 우울감 때문에 로토에게 주지 못했던 것, '아기'. 바로 그것이 인생이란 막에 갑자기 존재를 드러낸 것이었다.


로토가 찬란하게 마틸드를 묘사하고 성스러운 것을 바라보는 듯 애정을 쏟는 전반부와, 냉소적이 된 마틸드가 보이는 후반부의 대치는 상당히 흥미롭다. 과연 마틸드가 인생에서 누굴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가 된다. 그들은 끔찍하게도 사랑하여서 가난한 삶도 이겨내왔지만, 사실은 언제나 고독했는지 모른다. 상대방을 '온전히 알고 전부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걸까. 마틸드가 간직하고 있던 퇴폐한 과거를 로토가 알았다면 그들에게는 어떠한 '간극'도 없는 결혼생활이 가능했었을까. 인생의 순간 순간 다른 선택들을 내렸다면 사람들은 다른 인생의 길을 걸었을테지.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마틸드는 육십세가 넘어 죽는 마지막 순간에 로토와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해변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청혼했던 순간을 추억한다. 그러곤 단 한가지 후회를 느낀다. 로토가 무모하게도 파티에서 그녀에게 청혼했던 날 그녀는 '아니'라고 말했다. 로토는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그녀가 '기꺼이'라고 말했다고 믿고 살았다. 마틸드는 마지막으로 소망했다. 그 때 자신이 '기꺼이'라고 말했었기를. 로토에게 그녀가 선한 마틸드로 기억되었기를. 우리는 살면서 "그 때 그렇게 했었다면" 하고 자문하지 않는가. 그리고 선택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닫고선 그저 추억하고 희망한다. "그래도 좋았지" 하고.  역자는 사랑만이 다가 아닌 마틸드였다고 말하지만. 마지막에 난 로토를 향한 그리운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가는 '관점의 문제'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시선으로만 보면 인생은 단조롭다. 시선을 돌리고, 다른 맥락을 돌아보면 Comedy도 Tragedy고 Tragedy도 Comedy다. 마틸드가 복수를 포기한 것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이 부부의 삶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평범한 사람의 인생은 단순하지만 <운명과 분노>는 그 어떤 인생보다 처절하고 습하고 답답하지만 불꽃 같은... 소중하고 찬란했던 인생의 순간순간을 농축하여 보여준다. 우리네 평범한 인생에 얼마나 불꽃이 약하게 붙어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여운을 남기면서. 





“안경을 쓴데다 운동복 차림에 머리도 감지 않은 아내는 얼마나 추레해 보이는가. 결혼하자고 매달리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걱정스러웠다. 몇 주 동안 그녀는 말이 없었고 어디 먼 곳에 가있는 듯 했다.”


“두려움이 커졌다. 그녀가 그를 떠나려는 거면 어쩌지? 이 어둠의 기간이 그녀 때문이 아니라 그 때문이면 어쩌지? 그는 자신이 그녀를 실망시켰음을 알았다. 그녀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어쩌지? 그는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벌렸지만 그건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로토는 결혼생활을 시작할테고, 보수는 좋지만 시시한 일을 하는 직장에 다닐 테고, 자식을 낳을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카드, 비치하우스, 중년의 군살, 손주, 넘치는 돈, 권태, 죽음이 이어진다. 샐리는 마틸드가 로토를 그만의 나태함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해가 지나 이곳에 함께 모인 지금도 그는 여전히 평범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생각했다. 그는 술에 취했고, 외로웠고, 좌절감에 속을 끓였다. 애초에 성공은 보장되어 있었다. 어쩌다보니 그의 잠재력을 중요하지 않은 일에 허비하며 살았다. 이건 죄였다. 서른 살인데 아직 이룬 것이 없었다.”


“그들이 결혼한 지 십칠 년째였다. 그녀는 그의 가슴속 가장 깊숙한 방에서 살았다.”


“로토가 아내를 잊을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한결같고 변하지 않는 차원에 존재하고 있었고, 그녀의 리듬은 그의 뼈에 새겨져 있었다.”


“비몽사몽간의 그녀는 불지옥 같은 악몽을 꾸었고, 꿈속에서 로토는 더 이상 그녀가 필요없다며 그녀를 떠나겠다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너무 외로웠고, 외로움에 목이 멨다.” 


“두 사람이 마흔여섯 살이 되었을 때, 마틸드의 남편이자 유명 극작가인 랜슬럿 새터화이트가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몸에서 분리되어, 벗은 자기 몸을 아주 멀리에서 바라보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틸드는 마흔여섯살이었다. 사랑을 영원히 끝내기에는 너무 젊었다. 지금도 전성기였다. 예뻐 보였다. 그러나 지금 짝이 없었고, 영원히 그럴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어쩌지’라는 거대한 물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의 삶의 합은 그 사랑의 합보다 훨씬 더 컸음을 그녀는 깨닫는다.”


“마틸드는 반짝반짝 되살아났던 남편이 다시 위축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모습은 서서히 일어나는 조직의 괴사, 끊임없이 조금씩 흐르는 피처럼 느껴졌다.” 


“’그녀에 대한 기억을 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거트루그가 죽은 뒤 앨리스가 한 말이다.” 


“마틸드의 뇌에 인 마지막 불꽃은 그녀를 바다로, 거친 해변으로 데려간다. 저 아래 해안선에 한밤의 횃불처럼 불타오르는 사랑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념일이나 파티, 연극이 초연되는 밤, 다른 행사가 아니라 , 이런 말없는 친밀함이 그들의 결혼생활을 이루었다. 어쨌거나 그 부분은 끝났다. 안타까운 일이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며 육신은 서서히 뒤틀리다가 한 번의 거대한 경련을 맞았다.”


“그녀는 자신이 다정한 마틸드, 선한 마틸드였기를 바랐다. 그가 믿었던 마틸드였기를. 그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기를. ‘결혼해줘’ 그녀는 웃었을 것이고,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만졌을 것이다. 그래, 그녀는 말했을 것이다. ‘기꺼이.’” (Fi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첫장에서 지위불안이라는 단어를 사전적으로 정의하면서 앞으로 책에서 어떤 부분을 논의해  것인지 제시하고 있다 제목 『불안』은 지위(사회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신분) 관점에서 사회가 제시한 일정 수준에 부응하지 못하여 존엄성을 잃을  같다는 심리적 상태를 제한적으로 지시하고 있다알랭  보통은  한정적 개념에서의 '불안'이라는 감정이 촉발되는 원인을 심리학역사사회과학인문학, 경제학 등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짚어내려 하고 있다. ( 표지에서 '심리철학서'라고 하고 있는 것도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인 듯하다.) 알랭은 인간이 성공과 지위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게  것은지위가 결국 인간의 도덕성과도 연관이 있다고 하는 이데올로기가 만연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세속주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경제성장과 글로벌화로 인해 물질주의적 사고가 급진적으로 퍼져나가게 되면서 "=성실", "가난=태만" 등식이 성립되어 버렸다는 주장이다. 

알랭은 <해법장에서 이러한 사고방식또는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해 행해져  저항 활동을 다섯 가지 영역으로 정리한다철학예술정치기독교보헤미아. 철학은 인간이 추구해야  진정한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고예술은 소박하고 하찮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표현해내고자 했다정치는 팽배해진 물질주의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기독교는 신의 이름 아래에선 모든 인간이 평등하여 우열이 없다는 말씀을 설파했고보헤미안들은 부르주아 층을 조롱하며 가난하고 소박한 삶의 멋스러움을 예술활동과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감 있게 드러내고자 했다. 

처음  제목을 보고 "불안"이라는 감정에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하지만 "불안"이라는 개념이 "지위 상실에 대한 불안"이라는 것에 한정되고그에 대한 해법으로 매우 구체적인 다섯 가지 요인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 기대와는 다른 전개였다인문학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인류 전체가 현재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불안한 감정을 이론화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독자 개개인이 불안감 해소를 위해 취해야  태도를 생각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요컨대 계속해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내적 갈등을 겪고가끔은 예술에 심취하여 심신을 안정시키는 등의 행동으로 소박한 행복을 누려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었다또한 알랭이 제시한 다섯 가지 해법 이외에  어떤 다른 해법들이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고덕분에 책을 읽고 나니졸린 뺨을 때려가며 공부라도  기분이 든다뜬구름 잡는 자기계발서에서 제시하는 정신 치유법을 읽을 때와 같은 허탈한 기분도 들지 않았다. '쉬운 말도 어렵게 하는 서술법' '쓸모 없는 말을 되풀이 하는 서술법 사이에서 확연히 우월함을 드러내는 도서란 생각이 든다.   
 
------ 내용  

 
<원인>

「가문의 연조와 명성에 기초하여 지위가 주어지던 세습 귀족 계급 사회는  세대의 성취(주로 경제적 성취) 따라 지위가 부여되는 역동적인 경제 중심 사회로 이동했다.
「생계를 유지하고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면 적어도 다섯 가지 예측 불가능한 요인이 뜻대로 따라주어야 하는데이것은 사회적 위계 내에서 자신이 바라는 자리를 얻거나 유지할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다섯 가지 이유가 되기도 한다.
(1) 변덕스러운 재능지위가 성취에 의존한다면 성공에 일반적으로 필요한 것은 재능과  재능을 믿을 만하게 통제할  있는 능력이다그러나 대부분의 활동에서 재능은 우리 마음대로 부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2) 우리가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기술을 갖추고 적당한 일자리에서 일하게 되는 것은  때문일  있다
(3) 고용주. “우리는 언젠가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적과 함께 살아야 하고언제 원수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친구와 함께 살아야 한다.” (라브뤼예르)
(4) 고용주의 이익
(5) 세계 경제회사와 종업원들의 생존은 경제 전체의 성적 때문에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상업조직은 원료노동기계를 가장  값에 모은 다음 그것을 결합하여 제품을 만들어 가능한 가장 높은 값으로 팔려고 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위가 자신의 성과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는 따라서 자신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감정적인 수준에서 변함없이 갈망하는 바와는 달리 결코  자체로 목적일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따라서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해법>

「우리는 철학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라는 후광 없이도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있다는 신념을 고수할  있다.
「마찬가지로 철학은 불안도 종류에 따라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불안 때문에   이루며 성공을 거둔 불면증 환자들이 오래 전부터 강조해왔듯이 생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불안에 떠는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는 철학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라는 후광 없이도 사랑 받을 만한 존재가   있다는 신념을 고수할  있다.
「정말로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할까?
「철학적인 접근방법의 장점은 심리적인 면에서 드러난다누가 우리에게 반대하거나 우리를 무시할 때마다 상처를 입는 대신 먼저  사람의 그런 행동이 정당한지 검토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세상을  진실하게 현명하게 똑똑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준다.
「평범한 삶에서 누리는 기쁨에 만족하는 질서 잡힌 공동체의 이미지다. (중략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지배적인 물질적 관념에 도전하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일상생활을 묘사한 위대한 화가들은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처럼 세상에서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속물적 관념을 교정하는  도움을 준다.
「예술은 인간의 동기와 행동을 깊이 탐사하는 영역이고 영역에서는 어떤 사람을 성자나 죄인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조롱했다.
「우리가 비극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실패에 평소보다 훨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그것은  작품을 통해 실패의 유래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많이 아는 것은   많이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따라서 웃음은 최고의 익살꾼의 손에 쥐어지면 도덕적 목적을 획득하며농담은 다른 사람들이 성격과 습관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수단이 된다.
「유머는 높은 지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유용한 도구일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지위에 대한 불안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어떤 집단은 선한 태도신체적 재능예술적 솜씨지혜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어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도 있다기독교 유럽의 성자나 현대 유럽의 축구선수가 그런 경우다.
「높은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계속 바뀌면서자연스럽게 지위에 대한 불안을 촉발하는 요인들도 바뀌어간다.
「부를 축적한 사람은 일단 주요한 미덕이 적어도  가지는 있다고 칭송을 받는다  가지란 창의성용기지능체력이다다른 미덕예컨대 겸손이나 경건은 이제 눈길을 끌지 못한다.
「돈을 버는 것은 실제로 종종 인격적인 미덕을 요구한다어떤 일자리든 그것을 유지하려면 지능선견지명남들과 협동하는 능력이 요구된다사실 소득이 많은 일자리일수록 요구되는 능력도 커진다.
「근대의 물질주의적 사회에는 육체적 생존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필요한 것들이 헤아릴  없이 많지만동시에 과거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필수품으로 꼽히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소유자에게 존경심을 일으키는 비싼 물건이 지위의 상징이라는 관념은 널리 퍼진 그럴듯한 생각 가장 비싼 물건은 불가피하게 가장 훌륭한 인격적 자질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의존하고 있다.
「부자가 되는 사람이나 빈자가 되는 사람이나 딱히 범주를 정할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으로 정리했고 19세기와 20세기에 정치적 사상가들이 세속적 언어로 되풀이했던 메시지를 따르는 것이다 소득과 명예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다.
「우리의 자아상을 진실되고 폭넓게 규정한다면물질적 축적은 우리 삶의 방향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근대의 이상에 대한 공격의 핵심은 이것이 우선순위를 엄청나게 왜곡하여물질적 축적 과정을 가장 높은 수준의 성취로 치켜세웠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직업에 포함된 많은 것이 편집되고 오직 가만하지 않을  없는 부분만 강조되기 때문이다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정치적 관점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다분석을 통하여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밝혀  뇌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강하고 존경받는 존재라 하더라도우리는 모두가 결국은 가장 민주적인 물질 먼지가  것이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얻을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죽음특히 우리가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게 되는 업적을 쌓은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지위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도움을   있다.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은 우리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극복할  있다.
「철학예술정치기독교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그들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다섯 집단은 성공과 실패선과 수치와 명예의 구분 자체는 유지하면서무엇이  항목에 속해야 하는지를 재규정하려 했다.
「지위에 대한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좋은 인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염마 이야기
나카무라 후미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젊음을 유지한 채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세상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고, 지식을 쌓고,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탐닉할 수 있는 그런 영겁의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런 영겁의 삶 속에서 짊어져야 할 괴로운 고통이란 건 어떤 것일까. 그걸 상상해볼 수 있는 소설이 『염마이야기』이다.
 
이치노세 아마네는 신센구미에 잠입한 밀정 사무라이였는데, 우연히 부상을 입은 그를 문신사인 호쇼가 데려다 고쳐 주고 손바닥에 염마란 글씨를 새긴 것이 계기가 되어 불사의 몸이 되고 만다. 호쇼 노인은 죽기 전에 불로불사의 염마 신귀를 새기고 싶은 강한 욕구를 실현시키고 싶어했던 것이다. 호쇼의 문신은 신귀를 몸에 새기는 것으로, 숙주는 신귀의 지배를 받으며 그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아가게 된다. 이치노세가 호쇼에 의해 불로불사가 되는 대목은 그 유명한 판타지 소설 『트와일라잇』에서 주인공 뱀파이어가 불사의 몸이 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제 불사의 몸이 되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된 이치노세, 즉 염마는 호쇼가 과거에 파문한 '야차'라는 문신사를 찾아 죽이기 위한 사명을 갖고 살아간다.
 
불로불사의 몸으로 이곳저곳 떠돌며 문신사로 활동하는 염마에게도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생겨난다. 신센구미 자객 시절에 자신이 배신하고 말았던 오카자키의 딸인 나쓰. 그리고 염마가 술독을 멀리하게 되는 신귀를 새겨 준 무타 노부마사. 호쇼가 키우던 불사의 요괴 고양이. 노부마사는 염마의 비밀을 눈치채고 그를 조용히 후원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으나, 염마는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느라 늘 비뚤어진 태도를 보이곤 한다. 여성이 된 나쓰와 연애 감정을 느끼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시계가 다르게 흐른다는 사실 때문에 둘은 솔직해지지 못하고 '가족'의 형태로서 곁에 있고자 한다.
 
상처가 나도 순식간에 재생되는 능력을 가진 신비한 염마. 끔찍한 잔혹 동화 같은 분위기에 제대로 박차를 가하는 것이 살인사건의 역할이다. 염마가 쫓는 야차는 여자의 심장을 도려내는 욕구를 행하는 신귀를 새긴 자다. 염마의 누나 사와도 어린 시절 그 야차에게 살해 당한 것이다. 염마가 머무르던 요코하마에서 매춘부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염마는 그 배후에 있는 자가 야차라는 걸 운명적으로 느낀다. 드디어 염마와 야차가 만나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엔 나쓰가 있었고, 염마는 나쓰를 구하기 위해 야차 사냥을 중단해야 했다. 그야말로 연극 같이 극적인 플롯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몇 번인가 염마와 야차는 마주할 일이 있었다. 야차는 악귀가 된 것을 후회하며, 염마에게 죽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있었다. 염마는 그런 야차를 순순히 죽여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윽고 100년의 시간이 흘러 1940년. 염마는 일본의 전시 상황을 보며 의리 있는 사무라이들의 시대가 더 나았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마지막. 이제 염마는 불로불사의 몸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괴물 고양이의 자연사를 통해 깨닫게 된다. 나쓰도 무타도 이제 노인이 되어 자신의 곁을 떠나가려 한다. 혼자 남는 것의 두려움을 실감하게 된 염마가 전쟁 폐허 속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에게 '불사의 신귀'를 새겨준 것에서 그의 외로움이 절절히 드러난다. 나가사키 폭격 소식을 듣고 염마는 청년의 생사가 걱정되어 나가사키까지 떠난다. 거기서 문신이라는 숙명으로 얽힌 평생의 숙적 야차까지 만난다. 야차와 마지막으로 칼부림을 하고도, 서로를 죽이지 못했는데. 염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쓰는 염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쓸쓸히 죽으려는 준비를 하려는 것이다. 염마는 마지막까지 솔직해지지 못했던 자신의 대답을 전하기 위해 나쓰를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나카무리 후미는 염마와 야차,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불로불사의 삶 속에서 느껴질 수 있는 애잔함과 비통함을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한다. 사랑, 분노, 체념, 안타까움 등등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연약한 염마를 통해서 새어 나온다. 스무살 아름다운 미청년의 모습을 간직한채로 100살의 노인의 가진 그윽한 지성을 드러내는 염마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어지간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이 전해주는 시각적인 매력은 상당하다. 신귀를 새길 때는 이매망량이 등장하는가 하면. 외국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메이지 시기의 요코하마 풍경에 대한 묘사도 매우 활기차다. 그 덕분에 전쟁폐허와 환자가 넘치는 병원이 주는 차가운 인상이 더욱 강렬하게 전달되어 오는 것만 같다. 핵폭탄이 떨어져 부상을 입자 야차의 몸도 완벽한 재생을 이루지는 못했다. "신귀보다 더 무서운 게 인간이야." 이제껏 사람을 수없이 죽인 야차의 말이다. 불로불사의 몸을 얻은 한 사람의 인생에 조명하고 있던 이야기가, 갑자기 더 큰 무언가가 되는 기분이 드는 대목이었다. 다 읽고나자 무겁고 안타까운 마음이 잔잔히 깔리게 되는 이야기였다. 길었던 이야기의 분량과 비슷한 문장이 반복되는 것들이 지루할 때도 있었지만 이런 무거운 엔딩을 돕기 위한 것이었는가 하고 반대로 생각해본다.
 
염마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나쓰를 찾아가기로 맘 먹은 순간,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다. 제목이 참 그럴싸하다. 『이야기』. 이 단어만 들어도 왠지 책쟁이는 설레고 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