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마지막 여친 -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의 이야기들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사이먼 리치는 최연소 Saturday Night Show (SNS) 작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촌철살인이 미학인 SNS의 작가가 온갖 '사랑의 형태'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펜을 잡았다고 하면 상당히 흥미가 자극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상의 마지막 여친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의 이야기들」은 남녀가 (동성 커플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연애하는 다양한 과정에서 생기는 복잡미묘한 상황을 절묘하게 잡아낸다. 연애하는 순간 누구라도 지나칠 수 없는 긴장감 팽팽한 파워 게임이라든지, 혹은 긴장감이 늘어진 권태기 상황이라든지. 흥미로운 건 이런 순간을 겪는 주인공들이 역사속 인물 또는 하나님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명인(?)이라는 점이다. 저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하다 말고 여자친구의 "자기는 너무 바쁜 거 같아!" 하는 핀잔에 못 이겨 쩔쩔매는 모습을 보라. 정녕 사랑이란 신 조차도 곤혹스럽게 만드는 과업이란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사랑은 힘들고 피곤해!' 라는 풍자적, 그야말로 SNS 같은 이미지를 드러내어준다.


그런데 사이먼이 남자이기 때문인가. 어째서 그는 '연인' 관계에 있어서 남자가 겪는 고충만을 그렇게 열심히 나열하고 있는 것일까. 여자들이 들으면 웃기고 빈정 상하는 일일지 모른다. 심지어 본문엔 "여자친구 수리점" 이라는 단편도 실려있다. '여자친구가 히스테리를 부리면 수리를 할 수 있다' 라는 스피디하고 심플한 사고를 실현시키고 싶은 것 처럼 보인다. 그런가 하면 맘에 드는 생일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화가 난 여자친구 때문에 타임머신을 타고 그녀를 처음 만날 날로 돌아가, 모르는 사람으로 스쳐지나가는 선택을 하는 천재 과학자의 이야기도 있다. 이런 편협한 사고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 책이 저 미국에서 쓰인 책이란 걸 생각해본다. 저자가 과연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이겨낼 자신이 있었을까. 이것은 오히려 페미니스트들마저 껄껄 웃으면서 넘길 수준의 유머이며 풍자다. "단순한 우리 남자들은 그저 스위치를 끄고 싶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단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가슴 속에 "정말 연애가 그렇게 힘든 거라고...? 좋은 것도 있을텐데." 라고 의심하는 독자들에게 사이먼이 보여주는 '환상'은 결국 '성적인 것'으로 연결된다. 처음 만남에서 미묘하게 설레고, 그것이 성적인 욕구에 이르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달성되는 것. 모든 환상적인 순간에 거기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는 새로운 사랑이 싹틀 것 같은 찰나에, 다른 여자에 대한 성적 호기심으로 인해 지금 손에 잡은 인연 마저 놓치는 남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관계의 지속은 결국 '감옥살이'로 묘사된다. 연애의 '다양한 과정'을 절묘하게 캐치했다고 했지만 실은 그 정도의 수준이다. 대체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커플들은 왜 하나 같이 그냥 그렇고 허무하거나 혹은 험악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인가. 그게 '연애의 종착점'이라는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어쩌면 '사랑은 이런 거야!' 라고 전달하는 부분은 없는지도 모른다. 사이먼은 그저 남녀의 미묘한 관계에 있어서 남자의 심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코믹하게 그려내고 싶었던 것일테다. 히스테리에 미쳐가는 여자의 모습을 안절부절 못해 하다가 눈길 돌리고 마는 남자의 무기력함을. 그들의 모습에서 남성독자들은 "맞아, 맞아." 할지도 모르고. 여성독자들은 자길 감당해내기엔 남자가 너무 성숙치 못하다고 불평할런지 모른다. 그런 것 조차 웃어 넘기면서 같이 얘기해볼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좋지 않을까. 의외로. 단순 재미만 보기에 그치지 않고, 커플들에게 '토론'의 가능성을 제시한 책이 아닌가 하고 괄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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