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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탐정소설 ㅣ 일본 미스터리 총서 1
이토 히데오 지음, 유재진 외 옮김 / 문 / 2011년 2월
평점 :
무언가에 애정을 갖는다는 것은 곧 '의문을 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이 반드시 '말로써' 설명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것을 '연구'라고 생각한다. 그런 뜻에서 나는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하나의 논문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그것에 파고들어 '의미'는 찾아내어야 그 실용성이 있다고 말해왔다. 에반게리온이니 건담 등에서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찾아내고 논문으로 완성해내는 사람들이 '훌륭한 오타쿠'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 <일본의 탐정소설>의 역자는 머리글에서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 국내에 번역되어 활발히 소비되고 있으나 탐정소설 장르가 일본에서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그 저변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일본의 근대초기 시절에 일본추리소설의 작품전개양상을 파악할 수 있어 일본추리소설 애호가들의 지적 열망을 해소시켜 줄 것으로 기대한다." 라고 전한다. 그 저변과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역자가 '지적 열망'이라고 표현한 그것이 나는 깊은 애정의 연장선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토 히데오는 메이지 시대(1868-1912), 다이쇼 시대(1912-1926), 쇼와 시대(1926-1945)의 탐정소설의 번영 배경과 당대 주요 문인들의 약력 등을 간단히 소개한다. 책의 절반 이상은 소개하고 있는 문인들의 주요작품들 중 일부의 줄거리를 요약 부분이 차지한다. 일본 출판계에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작품들의 줄거리를 소개하고자 한 것인데, 마침 이것들이 각 작가들의 초기 데뷔작인 경우가 많다.
메이지 시대는 막부 체제가 천황 통치 체제로 변화하고, 제국주의를 내세워 외세에 항쟁하는 등 어지러운 시대였는데, 이러한 시대상이 탐정 소설 문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탐정소설은 번안 소설에서 시작한다. 곧, 서양문물이 개방되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외국 탐정소설들을 일본의 실정에 맞게 재간하여 발행하였단 이야기다. 메이지 초기에는 에드가 앨런 포, 에밀 가보리오 등의 서양 탐정 소설이 일본에 소개되었다. 탐정소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정통문학파는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 기를 쓴다. 이후엔 청일 전쟁 등의 영향으로 탐정 소설에도 모험과 무협이라는 요소가 가미되어, 모험소설 시대가 도래하기도 한다. 쇼와 시대로 넘어와서는 전쟁, 도쿄대지진 등으로 인한 불황을 타계하기 위해 대량 출판업이라는 시스템이 사회에 도입되는데, 자동차, 라디오, 카페 등 신문화가 사회에 퍼짐과 동시에 대중의 수요도 다양해져 탐정소설도 질적으로 큰 발전을 이룬다. 이러한 전체적인 흐름을 아래에 보다 자세히 정리하였다.
탐정소설의 시초를 연 인물은 에도 말기와 메이지 초기의 라쿠고가 산유테이 엔초(三遊亭円朝, 1839-1900)이다. 그가 에드가 앨런 포 등의 작품을 일본에 소개한 것이 시초인데, 이것이 이후 일본의 번안 탐정소설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구로이와 루이코(黒岩涙香, 1862-1920)에게 영향을 큰 영향을 준다. 구로이와 루이코는 대중을 대상으로 다양한 작품을 신문에 실어 흥행시대를 열었다. 이 뒤를 이은 문인에 마루테이 소진(丸亭素人, 1864-1913), 기쿠테이 쇼요(菊亭笑庸), 난요 가이시(南陽外史) 등이 있다. 쓰보우치 쇼요(坪内逍遥) 등도 있었으나, 인기가 없었던 것으로 평한다.
미야코 신문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파격적인 시도를 하는데, 전직 형사의 실제 형사수첩 기록 내용을 소설 형식으로 신문에 실은 것이다. 이것이 탐정실화소설의 기원이 되어 큰 인기를 얻고, 강단, 연극 상연 등으로 이어져 문화적 발전에 기여했다.
한편 루이코 등의 탐정소설은 정통문학파가 보기엔 저속한 것으로 여겨졌나 보다. 겐로쿠 시대(1688-1704)의 이하라 사이카쿠 풍을 따르던 문학파 겐유샤 파가 루이코 파와 대립구도를 이룬다. 루이코 파 등은 당시에 신문을 통한 발표 활동이 많았는데, 이 때 슌요도(출판사)의 주인이 탐정소설을 책으로 내어 싼 값에 많이 팔아 그 격을 떨어뜨리고자 하여 문인들을 모은다. 그 필두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이고, 이시바시 시안(石橋思案, 1867-1927), 나카무라 가소(中村花痩), 에미 스이인(江見水蔭, 1869-1934), 이즈미 교카(泉鏡花, 1873-1839), 가와카미 비잔(川上眉山, 1869-1908) 등이 여기에 참가한다. 그렇게 슌요도는는 【탐정총서】 총 26집을 출간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탐정소설의 융흥을 돕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구로이와 루이코의 번안소설이 식상해질 즈음, 작가들은 모험소설 번역으로 전향한다. 기쿠테이 쇼요가 「해적선」, 오시카와 슌로(押川春浪, 1876-1914)가 「해도모험기담 해저군함」을 출판한다. 특히 오시카와 슌로의 「해도모험기담 해저군함」은 아동문학의 창시자 이와야 사자나미(巌谷小波, 1870-1933)가 훑어보고 추천한 작품이라 한다. 슌로는 탐정소설에 모험, 무협 소설 형식을 가미하여 자신만의 문체를 확립했다. 당시 청소년이던 에도가와 란포도 오시카와 슌요의 작품을 애독했다고 전하고 있다.
메이지 말기와 다이쇼 초기에는 러일전쟁의 영향으로 자연주의 소설이 대두됐기에 탐정 소설의 인기가 시들해진다. 탐정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지마고」 등이 인기를 얻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탐정소설계는 침체기였다. 다이쇼 중반으로 가면서 관동대지진 이후 도쿄 경제 부흥화 물결을 타고 근대문물들이 들어오면서 탐정소설 외의 다양한 장르에 대한 대중의 수요도 증가하였기 때문에 문학계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서양 탐정소설과 자연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이 때의 활약가가 천재 문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 다니자키 쥰이치로(谷崎潤一郎, 1886-1965) 등이다. 당시의 주요 발표 매체는 【신청년】이라고 하는 잡지였다. 이 시기에 탐정소설은 기존의 신문 발표 기반 단편소설의 형식을 벗어나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 때도 루이코의 영향력은 미치고 있었기에, 그의 소설을 개간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루이코의 스타일을 발전시켜 대중문학 개척시대를 연 작가가 마에다 쇼잔(前田曙山, 1872-1941)으로, 1891년 겐유샤에서 데뷔했다. 주요작에는 루이코의 작품을 번안한 「뒤쫓는 그림자」, 「복수」 등이 있다.
쇼와시대(1926-1945)년은 전쟁으로 인해 침체된 시기로, 출판 기업은 대량 출판을 통해 경제불황을 타계하고자 했는데 이것이 효과를 거두었다. 대량출판 시대의 시작으로, 매스 미디어가 발전하고 문인들의 활동 무대도 넓어졌다. 시라이 교지(白井喬二, 1889-1980)가 창설한 '21회'라는 문인단체에 에도가와 란포 등이 소속되었다. 탐정소설의 발표 무대가 【신청년】 뿐만 아니라 잡지, 신문 등으로 폭이 넓어졌고, 전쟁의 영향이 생기기 전 1938년까지 활발하게 대중문학이 보급되었다. 이 때의 문호에는 「에도 삼국지」, 「미야모토 무사시」로 유명한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1892-1962)가 있는데, 저자는 주요작품은 소개하나 그의 활약이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은 자세히 소개되지 않는다. 단 그는 독자에게 친근한 창작 태도를 지닌 작가였다고 전한다. 또한 신문 등에 인기작을 발표한 작가에는 와타나베 모쿠젠(渡辺黙禅, 1870-1945), 오시타 우다루(大下宇陀児, 1896-1966) 등이 있다. 오시타는 화학과 출신이나 친우의 영향으로 1925년에 소설가로 데뷔하는데,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의 등단이 당시에도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시타의 작품 「금색조」에서는 의학자나 미스테리한 단체가 등장하는 등, 마치 서양 고전 「프랑켄슈타인」 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참고로 오시타 우다루는 에도가와 란포, 고가 사부로와 함께 일본 추리소설계의 3대 거성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제 대개의 일본 탐정소설 팬들이 잘 알고 있을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 1894-1965)가 등장한다. 1894년 출생의 에도가와는 청소년 시절 구로이와 루이코, 오시카와 슌로를 탐독하였다고 전한다. 1923년에 데뷔한 그는 장편 분야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1937년이 되면 그는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다. 번안활동도 했으나 본인 스타일을 확립하면서 창작활동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탐정소설>은 이 에도가와 란포의 등장을 마지막으로 하여 일본 탐정소설의 역사에 관한 서술을 마무리 짓는다.
여기까지가 책의 내용인데,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들이 있다. 구로이와 루이코를 필두로 한 탐정소설 장르와 정통 문학파를 계승하는 겐유샤 파가 경쟁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탐정소설이 더욱 융흥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탐정소설가라고는 할 수 없을 이즈미 교카 등이 잠시 탐정소설을 쓴 약력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청일 전쟁 이후 무협 모험소설이 흥행할 때 이즈미 교카는 관념소설, 심각소설 쪽으로 전향한다). 또한 겐유샤의 대표 오자키 고요는 속으로는 구로이와 루이코의 탐정소설을 좋아했으나, 표면적으로는 루이코 파와 대항하는 무리의 필두가 되었던 것도 생각해보면 웃지 못할 일이다. 또한 탐정소설이 무협 및 모험소설 성격과 서로 융합된 것에 따라, 이 책 안에서도 이와야 사자나미, 오시카와 슌로 등의 소년소설 문인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 또한 재미있는 점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의 천재 문인의 작품활동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자세히 다루지 않고 있으나, 아쿠타가와 등의 문파가 탐정소설의 흥행과 자연주의 문학에 반대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점 등을 지적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이 폭 넓은 시야를 갖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본의 탐정소설>은 이렇듯 탐정소설이 걸어온 횡보를 일본 내외부 상황과 대중의 수요, 문학 장르 사이에서의 갈등 등 사회적 흐름과 더불어 함께 설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저자 스스로가 후기에서 "최근에는 논리일변도의 작품보다는 아직 별로 복잡하지 않은 전전의 작품에 향수를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어, 탐정소설에 대한 저자의 애정 도한 엿보이기 까지 한다. 하지만 책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러 작품들의 줄거리 요약 부분이 너무 조악하고 앞뒤 맥락이 어지럽게 서술되어 있어 흡입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비유할 수 있겠다. 만약 우리가 어떤 탐정소설을 읽었다. 어떤 줄거리였는지, 결정적으로 어떤 트릭이 있었고, 누가 범인이었는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만다. 그럴 때 읽어 보고 중요사실을 기억해내기 위해 개인적으로 요약본을 적어놓았다고 해보자. 이 요약본은 어차피 읽을 사람이 '본인' 이기 때문에 어떤 격식도 갖출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다수의 사람에게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본의 탐정소설>에 실린 '줄거리 요약본'이 마치 그러한 느낌을 준다. 편집 과정을 면밀하게 거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많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이 책이 각 작가의 문체나, 참신한 트릭 차용, 플롯의 구성 등에 대해선 자세히 서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줄거리 요약 각 끝 부분에서 작품의 특성에 대해 일부 평가하고 있긴 하나, 그것도 책 후반부로 가면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된다. 결국 어디까지나 줄거리 요악에 큰 의미가 있을 뿐으로, 탐정소설을 쓰고자 하여 과거 작품들을 공부하고자 한 사람들에겐 이 점이 가장 아쉬울 수 있겠다.
한편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일본 탐정소설계도 전쟁이라고 하는 당시 사회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특히 모험소설 등에서도 그러한 색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제국주의, 한반도 점령을 둘러싼 청 및 러시아와의 대립 등이 있던 시기였다. 요시카와 슌로의 작품에서는 러시아군을 비하하고 일본군의 용기를 미화시키는 등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토 히데오는 이런 부분까지는 지적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역사의식은 배제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점에 대해선 깊은 사색이 필요할 듯 싶다. 당시 일본 탐정소설이나 모험소설 등이 전쟁시대에 미친 영향 등을 연구하는 작업도 문학계의 과제로 남아, 많은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추측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