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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로 산다는 것 - 융 심리학으로 보는 남성의 삶과 그림자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1992년 4월 필라델피아 융 심리학 센터에서 강연한 내용을 토대로 집필되었고 작가 제임스 홀리스는 스위스 취리히의 융 연구소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했으며, 미국 워싱턴에서 융 학파 정신분석가로 활동중이다. 정말 남자에 대해 이해도가 낮을 나는 남성이 태어나면서부터 겪게 되는 상처와 억압에 대해 전혀 알지못하고 있고, 첫 심근경색이 크리스마스처럼 다가오는 사내들, 헌신과 의무, 지켜야 하는 규칙에 무력하게 얽매여, 한때 삶을 달콤하게 해줬던 모든것 으로 부터 버림받은 채 어둠이 내리는 늙음과 무능력의 거리로 흘러들어가는 사내들이라는 카피가 이 책 내용을 더욱 궁금해 하도록 만들었다.
원제'새턴의 그림자 아래서'의 새턴은 음울하다 라는 뜻과 토성의 라는 뜻도 있다. 새턴은 로마 신화에서 사투르누스,즉, 농업의 신이다. 생식을 담당하는 신으로서 초기 로마 문명을 건설하는데 도움을 준 반면, 어둡고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에도 자주 등장한다. 로마보다 앞서 그리스 신화에서 새턴은 크로노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하늘의 남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우라노스는 자식들의 능력을 두려워하다 못해 혐오하기에 이르렀고, 전설에 따르면 가이아는 커다란 낫을 만들어 크로노스를 꼬드겨 아버지 우라노스를 공격하고 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을 잘라버렸으며 그 상처에서 지구로 떨어진 핏방울에게서 무시무시한 거인들이 태어났고 우라노스의 정액이 떨어져 얼룩진 바다에서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는데 원래 거품에서 태어나다라는 뜻이다.
융이 지적한대로 권력이 있는 곳에 사랑이 없으며 세익스피어의 말을 빌리면 왕관을 쓴 머리에는 불안이 깃드나니.. 저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렇게 대부분 새턴의 그림자속에서 자라난 남성과 그 어두운 신화가 어떻게 그들의 영혼을 잠식했는지를 풀어가는건이 이 책의 목적이라 한다.
이 책의 큰 바탕이 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개념은 무의식의 구조를 구성하는 심상을 일컫는 말로, 사회적 관계속에서 보여주는 가면같은 자아와 달리 진정한 자아를 지칭하며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의 심상을 구성하는 여성적 심상이며, 아니무스는 반대로 여성의 무의식의 심상을 구성하는 남성적 심상이다. 남성들에게 있는 이러한 심상은 섹스가 소통과 친밀함의 경험이 아니라 위안이자 세계와 이어지는 느낌을 준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영혼에 생긴 상처의 고통을 잠깐 막아주는 진통제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을 억압하고 성인이 되어서 까지도 연결되어 있는 어머니를 갈망하는 퇴행적 정신의 위력에 조금 움찔하게 된다. 내가 아는 남성은 여성인 내 입장에서 밖에 볼수없던,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수없던 상황들에 대해 그 실체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거같다.
무의식의 근친상간을 저지른 오이디푸스, 심신의 평화를 갈망하는 필록테테스,'어머니'의 땅에 강하게 매혹되는 파우스트 등이 유혹에 빠진것을, 그 유혹의 진정한 근원은 남성이 지닌 삶의 고통에 대한 공포와 소멸에 대한 매혹에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남성과 여성 사이 관계의 역사는, 자신 안에 있는 여성성을 두려워한 나머지 언제나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남성들의 슬프고도 장황한 이야기로 전락한다. 언제든 어디서든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사실 공포와 분노로 인해 저지르는 추태다. 이제부터는 사실 측은해지기까지 한다..그동안 강하고 무심하고 고집스럽고 남탓하고 이해할수없던 많은 부분들이 실은 그들이 갖고 있는 공포와 분노를 눈치채지못하게 하기위해서 였다니 말이다.
내면의 의심으로 고통받으며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의식이 깨어있지 않은 남성들이 만들어낸 것이 가부장제다. 가부장제는 다른 남성들까지 억압하고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며 개인의 본성을 망가뜨린다. 서구사회를 거의 3천년간 지배한 가부장제는 남성들이 자기 내면의 나약함을 보상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는 거다.
처음과 끝에 다시한번 나오는 남성의 여덟가지 비밀을 읽어보아도 결국은 남성은 남성적 역할의 부담과 거대한 경제적 부담도 짊어지고 있지만 스스로 행복하지 않고 외롭고 소외되고 자책감에 휩싸여도 마음한곳에 그 감정을 가두어 두는것이다. 그러한 정서적 진실을 억압한 채 침묵과 결탁한 상태라는것이다.
결국 남성 혹은 여성은 어머니 콤플렉스와 아버지 콤플렉스를 분리를 통해 극복하고 안락함으로부터의 독립.그리고 좌절과 상처를 극복하며 통과의례를 거쳐 자신의 삶을 스스로 들여다보며 분노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한다.
그들의 치유를 위해서 권하는 7가지중 비밀을 털어놓고, 자신의 멘토를 찾는 동시에 타인의 멘토가 돼라.그리고 자신을 치유하고 영혼의 여정을 다시 시작하라고 권하고 있다.
내가 어렴풋이 짐작한 그 공포나 우울의 그림자의 크기는 상상이상였다. 내 아버지,그리고 나의 아이들의 아버지, 형제인 남성을 나는 많이 이해하지 못했다는것을, 그들의 우울과 고통을 깊게 이해하지 못했다는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음을 고백한다. 융 심리학으로 조금은 지루할수도 있는 내용들이 많은 상담 케이스, 신화,시,소설등을 인용하며 납득하기 쉽게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상처 속에 신음하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도록 허락받지도 못하고 달리 대안도 없이 말 못할 외로움에 시달리는 아버지,남성들의 모습은 부끄럼없이 슬퍼해줄수 있어야한다.
로버트 헤이든의 그 겨울의 일요일들에서의 인용글을 옮기며 마무리 하고 싶다.
아버지에게 난 건성으로 말을 건넸다,
추위를 몰아내주고 내 좋은 구두까지 닦아놓으신 아버지에게.
그때 내가 어찌,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엄숙하고도 외로운 사랑의 사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