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 -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을 위한 고대의 지혜 아날로그 아르고스 2
에픽테토스 지음, A. A. 롱 엮음, 안규남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대철학을 배울 당시 교과서에는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를 나눠서 가르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스토아 하파는 욕구의 억제와 절제를 강조하며, 에피쿠로스 학파는 정신적인 쾌락을 갈망하며 두 학파는 대립이 뚜렸했기 때문에 주로 도덕과 철학시험의 암기로 활용되었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고정관념은 고등학교때 철학에세이관련 수많은 글들을 저술한 윤리 선생님으로부터 감사하게도 깨질수 있었습니다. 특히 스토아학파의 주장은 일반적인 억제와 절제가  아닌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고 정신적인 자유를 추구하기 위함이고, 정신적인 성숙함이 결여될 경우 극한의 탐욕과 나태에 빠지게 되면 철학이 정립될 수 없다는 것이 그동안 잘 알지 못해던 스토아 학파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아날로그 출판사에서 출간한 아르고스 시리즈의 두번째인 <어떻게 자유로워질것인가?>는 노예출신의 스토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자유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떠나는 저서입니다. 


에픽테토스를 포함한 스토아 철학자들은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 자체를 억누르거나 억제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하고 싶고 사유재산을 늘리고 싶고 아프고 가난한 것을 피하는 것을 당연한 본성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 행위로 보았습니다. 단, 에픽테토스의 본서에도 나와있듯이 그들은 조절과 통제의 여부에 따라 보다 이상향적인 인간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평정심이 필요하며, 인간이 물질적 자유를 실현할 수 없더라도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조절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에 평점심으로 대체하며 욕구를 절제할 때 진정한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두려움 슬픔 혼란스러움은 자유의 산물이 아닌 방종과 지나친 극단의 결과물로 이뤄진것이며 이것인 결국 정신적 자유가 아닌 노예의 길로 접어든다고 본 것입니다. 일한 자유와 반대되는 노예의 길은 본서의 [대화록]에서 아주 잘 살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에픽테토스는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원칙의 적용이고 둘째는 원칙에 대한 근거, 그리고 세번째는 증거를 확인하고 분석하고 토론하는 것에 두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스토아학파 철학의 기본적인 정수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을 싫고 있고 기나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인간이 사고하는 체계의 본질, 진리탐구와 현실적용을 위해 나아가는 방법들은 이미 스토아 학파의 철학적인 관점에서 잡혀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를 읽으면서 저는 고대 스토아철학자들과 함께 현대인들이 끝없이 고민하고 있는 공통점은 결국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정신적)노예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한 것은 결국 자신의 철학의 원칙과 근거를 세우고 그에 대해 탐욕을 억제하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안의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상대방과 비교를 하지 않고 자기주도적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면서 결국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인생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 철학자들과 현대인들이 경험하고 만나는 삶의 편린들이 다를지언정, 결국 불안과 혼란으로 인한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유의지야 말로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정의해주는 것일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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