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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맨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8
백민석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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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작가님은 그의 소설보다 클래식 클라우드 ‘헤밍웨이’편을 통해 먼저 만났다. 그의 소설로는 이번에 처음 만난게 된 것이다. 제목만 들었을 때에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보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형도 아닌 구지 생각을 했을 땐 마네킹이라고 해야할까.. 그런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작가님은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책을 집은 독자라면 한번 즘 궁금해 할 그 플라스틱맨에 대한 설명을 하고 본격적으로 소설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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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 따르면 플라스틱의 어원은 ‘플라스티코스plastikos, 틀에 넣어 만들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선 ‘틀’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질료가 달라도 같은 형상으로 보이는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질료가 다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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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2016년 말 대한민국 역사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했던 대통령 탄핵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벌써 횟수로는 5년이 넘게 지났고,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많은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지만 이 때만큼 삶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일에 모두가 나선일은 드문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의 시작이 이러하였기에 절반 정도 넘어가기까지 과연 우리가 아는 이 사건을 소설에 끌어드린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생각할 즈음 반전이 나온다(스포일러가 될수 있으므로..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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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다루어지는 자살, 살인, 사고, 테러 등은 내가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개인에게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뉴스기사로 전락한 ‘사고’로 만나게 되는 일이 흔하다. 그것은 결과론적으로 보자만 분류화되고 통계수치가 되어 하나의 현상, 하나의 데이터가 될 뿐이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도 협박범이 예고한 사건이 예고 후 일어난 사건과 구분하여 찾아내기가 쉽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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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면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화자가 있기는 하나 모든 것이 모호하다. 일어난 사건도 모호하고, 선과 악에 대한 구분도 모호하다. 소설에서는 한 사람이 신부님을 찾아가 ‘악이 그토록 선과 구분이 선명하게 가능했다면 사람들은 악을 덜 저지르지 않았을까요’하고 반문하는 부분이 있다. 악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과 선에 대하여 생각하는 일, 사람들은 어떤 부분을 더 깊이 생각할때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 하게 될까. 악을 깊이 생각함으로서 악에서 멀어지는 것인지. 선을 깊이 생각함으로서악에서 멀어지는 것인지, 둘다 맞는 말이겠지만 선과 악의 기준이 적용이 개개인의 삶의 배경과 연관되어 억울함, 원통함, 감사함, 분함, 나만 왜 라는 여러 상황 때문에 그렇게 모호해 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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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큰 일을 겪고 나면 사람들은 변한다고 한다. 삶이 소중한걸 알게 되고, 투표참여와 같은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를 하기도하고 좀더 민주적으로, 좀더 행복한 방향으로 삶이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혁명을 이루고도 삶이 얼마든지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플라스틱맨에 대한 사람들이 고발이 그러하다. 익명의 댓글이 그러하다. 사람들은 누군가 잘못하면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댓글을 익명이란 이름으로 단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우리의 삶의 기쁨과 애환을 이루고 있는 그 근본적인 틀이 인간모두에게 공통적인 모습이라 그런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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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기대치를 낯춤으로서 행복에 이를 수있다는 이 역설적인 진리만큼 지금까지 살면서 와닿은 적은 없다. 나에 대한 존재를 크게 하기 보다 낮추는 것이 오히려 더 상처를 덜 받는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에서 상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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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요 화자의 직업은 경찰이다. 같은 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자 때로는 시민의 집회에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역할을 하는 민간인이 아닌 경찰(?)의 신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가 나중에 경찰을 그만두어도 일상엔 큰변화가 없다. 혁명을 이루고 나서도 시간이 지나면 큰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모두가 분노하고 화를 안고 산다. 그것은 지속되는 화가 아니라 금방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과 같다. 삶이 행복할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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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물론 ‘행복’에 관한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맨과 더불어 플라스틱 세상,인생을 드러한 현상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마네킹 처럼 감정이 없어 보이는 것, 그것은 마네킹을 향해 우리가 아무리 소리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 어떤 세계와 같은 것이다. 소통이 불가능 할 것 같은. 그러다가 스스로 제갈길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언급한 시민사회의 일체감은 겪고도 우리는 여전히 당혹감, 불안감, 일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달리할 수 있는 변곡점, 그 아슬아슬한 꼭대기를 지나고 나서 완전히 달라질수 없는 일은 계속된다. 결국 우리의 삶이 그렇게 생겨먹었다면 삶에 대한 긴장감을 피할 수는 없고 다만 우리는 내공을 쌓아가며 견디고 살아갈 뿐이다. 이 책은 그렇게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일주일 내내 그런 내 삶을 돌아보게 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