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담배 말들의 흐름 1
정은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피와 담배를 읽었다. 처음 듣는 작가의 이름이었다. 나는 커피 마니아도 아니고 담배역시 마찬가지 이다. 그럼에도 커피와 담배는 영화 [커피와 담배]의 그 흑백 분위기 때문이랄까. 무언가 자욱한 느낌이 있다. 몇 해 전, 존 버거가 쓴 [스모크]에서 담배에 대해 깊게 다루었지만 기억에 남아있는 무언가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내가 담배에 대한 상념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첫 유럽배냥여행을 갔을 때, 40여일 즈음 지나 스페인 바르셀로나 숙소에 여자 네 명이 만났다. 그날 밤새 같이 이야기하는 동안 나머지 셋은 끽연가였고, 언니도 한번 해보라 나는 처음 그때 담배를 폈다. 의외로 처음 피면 기침도 하고 그럴 거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서 사실 그 당시엔 아.. 내가 어쩌면 담배를 필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

다들 담배를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의 시작은 그러했다. 그 친구들과 헤어지고 난 후 다시 독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20시간을 넘게 이동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기차역 매점에서 라이터와 담배를 샀다. 2005년에 구입했는데 그 성능은 아직도 유효하고 간직하고 있다. 기념으로. 딱히 담배를 피워보겠다 그건 아니었는데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긴 시간 역을 대기하는 동안 기차를 기다리면서 딱 한 대를 피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내 생애 그 전과 후로 그 때 만큼은 이 책의 정은작가님이 말한 대로 내가 나와 있는 느낌을 가졌던 거 같다. 그 느낌이 싫지 않았음에도 그 후로 15년간 난 어떠했을까? 가끔 동생집에 가서 사다놓은 담배를 한 갑씩 들고 오긴 했는데 일 년에 한 두 개 정도 필까 말까 했다. 간절했다거나 그런 기억이 사실은 없고, 사실 내 주변에 지인 중에 흡연가가 거의 없다.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할 만큼 그후로 아무런 기제가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커피와 담배를 펼치기 전에는 아마도 애호가로서의 그런 이야기가 가득 있을 줄 알았다. 처음 만난 작가의 글이었고 이전에 글로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떠한 선입견도 없었다. 그래서 어젯밤 책을 다 읽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그 글들은 긴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끌어 올린, 책이었거나 아님 예민한 감각을 소유한 작가에겐 익숙한 방식이었는지 모르겠다.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들조차 시간이 지나 표현된 글로 나타난 것이었으므로 시간이 들어간 생각 같았다. 작가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IMF 이후 대학을 다녔고 자신의 말에 의하면 IT업계의 취업전선의 막차를 놓친 사람이다. 그 이후 이 책에서만 작가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커피와 담배에 대한 개인의 담담한 이야기를 하였다면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의 경우 둘 다 매니아가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그것은 타인의 취향에 그쳤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반대의 경우에는 이 책에서 기대하는 바가 달라 어떨지는 모르겠다.

.

하지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와 담배에 관한 글을 막상 쓰고자 시작했을 때 느꼈던 솔직한 고백은 그녀의 고백이기도 하고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소설가는 소설을 쓰는 일에 너무도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쓰는 일이 자신을 견디게 해주는 일이라는 글을 어느 작가의 글에서 본 적이 있다. 개인적 에세이야 누구든 글을 쓰고 출판을 하는 시대가 되었으나 나는 솔직히 그런 글에 관심이 없다. 대개 사람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그것이 출판으로까지 연결될 때에는 타인과 연결되는 무엇인가를 찾지 않는다면 아마도 더더욱 그러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작가는 커피에 대해 담배에 대해 쓰는데 정직하게 대면하고 쓰기로 한다. 아마도 작가도 알았으리라.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에게 전해지지 못할 것임을. 앞서 개인적인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는 성격심리학에서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원형)에 관한 이론을 오래전에 매우 관심 있게 읽었다. 우리가 개인과 개인의 글을 만날 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그 원형에 가까운 이야기를 자기도 모르게 만날 때이다. 때문에 그것은 처음에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데 내가 한번 즈음 그러한 방식으로 나를 만나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때문에 오히려 막연히 애매하고 아리하고 모호한 감정이나 분투기를 쓴 글을 보면 전혀 감흥 되지 않는다.

.

차라리 이 이야기들이 소설이라면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소설이 허구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나 소설적 진실, 소설에서 전하는 진실에 관련된 이야기, 그것이 내 안에서 외면하는 진실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은 강력하다. 그것이 영원히 문학이 이 세계에서 자리를 잡은 방식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못난 부분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게 싫고 나약해 지는 것 같았다. 저자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수행자의 경우엔 그렇게 떠오르는 것이 참 나이겠지만 우리 같은 속인들의 경우 떠오르는 것은 마음 밑바닥에서 오랫동안 썩은 마음 뿐이다. 긴 시간을 두고 쌓아온 업보 같은 것. 누구나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어리석은 마음들까지도. 그래서 언지나 부끄러웠고, 언제나 모두가 안쓰러웠다.라고..

.

커피와 담배에는 총 12편의 짧은 글들이 적혀있다. 개인적으로는 커피주세요, 절에서 피우는 담배, 아메리카노와 여의도 비키니, 연애와 금연, 공항에서 보낸 하룻밤을 읽는 동안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는 것, 물거울을 보듯이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들, 거울은 그저 있는 그대로 반대로 보여줄 뿐인데 내면까지 보게 하는 그 무엇이 느껴진다. 말들의 흐름의 첫 시작이다. 나머지 열편까지 나는 좀 더 이 책들을 내방식대로 읽어보기로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