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취향 채석장 시리즈
아를레트 파르주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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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의미화되는 아카이브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미완의 대화에 무한히 다른 무한히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기


이성적인 동시에 감성적인 작업인 아카이브, 객관적일 수 없고 언제나 소외를 발생시키는 아카이브. 진실의 증거로 작용하는 증거로서의 아카이브가 아니라 문화공동체의 기억으로서 아카이브를 말한다.
















ISBN 978-89-320-3604-5  0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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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대학
자크 데리다 지음, 조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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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자신만의 권력을 가질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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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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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동수용소의 특징은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에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 본문 중

우리 사회는 고통과 억압에 대해 너무 무감하다. ‘기왕이면 대감집 노예’ 같은 표현을 스스럼없이 쓸 수 있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단지 자조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비판보다 수용과 적응이 우선이라고 배우며 자란 우리는 스스로 노예 감독관임을 알지 못한다. 자기 착취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나를 노예로 만들고, 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지, 나는 어떤 것을 욕망하고 그 욕망은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차근차근 생각하고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거의 경험하지 못하고 태어날 때부터 신자유주의 아래 살아온 우리 또래는 노예 상태이면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여기는 착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자기 착취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으로부터 빠져나오기다.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을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 사유는 불가능하다. 탈학습(unlearing)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상식과 지배적 지식이 누구를 지배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게 한다. 자본주의가 주입한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신념이 아니다. ‘대감집 노예’가 되고 싶거나 ‘갓생’을 살고 싶은 것은 개인의 가치가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저항해야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모양틀 속에 몸 구기며 살아가는 우리는 자기 착취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주위를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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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은 비교적 쉽고 간결한 문장을 사용해서 원서 읽기 초보자에게 자주 권하는 책이에요. 저도 영문과 교수님께 추천받았고 어렵지 않게 읽었습니다. (쉽다곤 안 함)

『더블린 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20세기 초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 소설입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같은 도시에 살면서 다른 상황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과장 없이 담아냈어요.

『더블린 사람들은 ‘죽은 자/죽은 사람들(The Death)’을 제외하고는 대개 열 쪽 안으로 끝나는 짧은 단편 모음집인데, 각각의 소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한국 소설 중에서는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백민석의 16 믿거나말거나박물지』, 배수아의 『뱀과 물도 유사한 형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중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이블린(Eveline)이 등장하는 단편의 한 단락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어떤 용어를 사용했는지 어떻게 표현을 만들어냈는지 잘 드러나는 부분인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원서 pdf는 구글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어요. 애플 유저는 애플북스에서 읽으면 편하답니다.


He rushed beyond the barrier and called to her to follow. He was shouted at to go on but he still called to her. She set her white face to him, passive, like a helpless animal. Her eyes gave him no sign of love or farewell or recognition.


01 문예출판사 문예 세계문학선, 김병철, 1999

프랭크는 난간 저쪽으로 달려가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라고 고함을 쳐도, 그는 여전히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가엾은 짐승처럼 힘없이 창백한 얼굴로 프랭크를 쳐다보았다. 그 눈은 그에게 사랑한다거나, 잘 가라거나, 사람을 알아본다거나 하는 것 같은 표정도 보이고 있지 않았다.

0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이종일, 2012

청년은 철책 너머로 뛰쳐나가 처녀에게 따라오라고 소리쳤다. 계속 가라고 퍼붓는 고함 소리를 들으면서도 청년은 여전히 처녀에게 소리 질렀다. 처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청년 쪽으로 향한 채, 수동적이 되어 어찌할 바 모르는 짐승처럼 맥이 풀려 있었다. 청년을 향한 시선에는 상대에 대한 사랑의 표정이나 작별을 고하는 표정도, 심지어 누구인지 알아보는 표정조차 어려 있지 않았다.

03 열린책들 세계문학, 이강훈, 2013

그는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어 그녀에게 뒤따라오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이 빨리 가라고 그에게 소리를 질러 댔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불렀다. 마치 미약한 한 마리 짐승처럼, 수동적으로, 그녀는 하얀 얼굴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사랑도 이별도 그 어떤 인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04 펭귄북스 마카롱 에디션, 한일동, 2015

프랭크는 난간 너머로 달려와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소리쳤다. 빨리 앞으로 가라고 사람들이 고함을 질러댔으나, 그는 여전히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무기력한 짐승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사랑이나 작별 또는 인식의 아무런 표시도 그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05 창비 시티 픽션: 더블린, 성은애, 2023

그는 서둘러 개찰구를 지나서 그녀에게 따라오라고 외쳤다. 길을 막지 말라고 사람들이 그에게 소리쳤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묶인 짐승처럼 맥없이, 창백한 얼굴을 그에게로 돌렸다. 그를 향한 그녀의 눈빛엔 사랑이나 이별 혹은 그를 알아보는 아무런 기미도 없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이란

1. 문자 그대로 단어 그대로 옮기지 않고 맥락을 잘 살린 번역

2. 한국말로 자연스럽게 읽히는 문장과 표현을 만들어낸 번역

3. 영어 자체를 잘하기보다 내용을 잘 파악한 사람의 번역

이 기준을 가지고 잘 읽히는 판본 추천해 볼게요.

1. 젊고 세련된 느낌의 창비 성은애 옮긴이

찰스 디킨스 전공자라고 합니다.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세대 영국 작가로 같이 배우기도 합니다. 제임스 조이스 책을 다수 번역했고, 영국 문학사에 대한 책도 있네요. 창비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더블린 사람들』도 2019년 출간으로 다섯 권 중에서는 가장 최근 출간 도서입니다.

2. 부드럽게 흘러가는 펭귄북스 한일동 옮긴이

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살림지식총서에 ‘영국 문화’와 ‘아일랜드’에 대해 쓴 도서가 있어요. 역시 교수는 다른 말로 잘 풀린 덕후라고 하더니…. 오랜 덕질의 세월이 부럽(?)습니다. 문장은 부드럽게 잘 읽히고, 아일랜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고 옮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 원문에 충실한 문예출판사 김병철 옮긴이

이중 가장 오래된 번역인데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자 그대로 옮기지 않으면서 순서나 느낌을 잘 살린 번역. 하지만 영국이나 아일랜드 전공은 아닌 듯하고, 미국 소설을 많이 번역했네요.

뒤에 해제가 있는데 그건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영문학의 이해 중간고사는 아니니까요…. 신중하게 고르셔서 즐거운 독서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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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랜드 SF... F.. C.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권진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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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해서

페미니즘 SF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언제나 그 시작엔 샬롯 퍼킨스 길먼의 책이 있었다. 『허랜드』는 무려 1915년에 ≪포러너≫라는 잡지를 창간해 그곳에 연재한 100년도 더 된 작품이다. 잡지 발간이 얼마나 빡세고 힘든데 잡지를 만들면서 연재까지…. 『허랜드』 이전에는 『내가 깨어났을 때』라는 작품을 연재했고 『허랜드』 이후의 이어지는 내용으로는 『그녀와 함께 내 나라로』가 있다. 보통 길먼의 페미니즘 유토피아 3부작이라고 불리는데 따로 읽어도 무방하다.


샬롯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 1860년생으로 미국 동부 출신. 어렸을 때부터 가부장적 여성관의 멍청함을 알고 스스로 공부하고 저항했다. 십대 시절부터 코르셋을 입지 않으려고 스스로 옷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유방암을 알고 ‘휴식 치료법’이라는 여성의 육체와 정신을 억압하는 처방을 받고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스스로를 휴머니스트라고 칭한 길먼은 여성의 억압과 종속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의식 또한 왜곡시킴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심각하게 가로막고 있다고 보았고, 여성이 인간으로서 평등한 지위를 획득할 때 인류 전체가 함께 진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옮긴이의 말


내용에 대해서

이 책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보다 체제에 대한 이야기다.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와 지도자가 없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상상의 나라를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서 민주적 가치와 평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한다. 그 가치 속에 여성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세 남자는 미국 사회 안에서도 엄청나게 보수적인, 보수적인 남자들 사이에서도 보수적인 테리의 행동을 보면 그들은 보수적이라기보다는 무례하고 건방지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지 않고 가르치려고 든다. 반면에 허랜드의 여자들은 일관된 태도로 그들을 대하는데,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멋있어 보이면서도 극악무도한 자본주의 여성혐오 사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다. (아니안웃겨) 세 남자는 놀라지만 허랜드에서는 당연한 일들에 대해 질문할 때 허랜드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네, 왜요?" 하는 하니 짤이 떠올라서 혼자 킬킬거렸다....


“네.” 우리는 인정했다. “문명국 대부분이 다 그래요.” “대부분의 문명국에서는 더 이상 별 쓸모없는 동물을 키우는데···.” “개들은 집을 지켜 줍니다.” 테리가 주장했다. “강도가 들어오려 하면 개가 짖거든요.” 그러자 그녀는 ‘강도’라고 적고는 계속해서 읽었다.


하나의 편견이겠지만 여성들만 사는 사회를 그리는 소설이라고 해서 그동안 봐 온 것처럼 여성 화자가 등장하거나 3인칭 시점으로 그 사회를 하나씩 훑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1장 내내 모험을 떠나는 ‘백인 남성’의 입장에서 전개되었다. 더없이 완벽한 이상적인 사회를 보여 주기에 적합한 화자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동력을 위해서 결핍이나 갈등이 있어야 하는데 허랜드에는 결핍도 갈등도 없다. 허랜드 사람들의 입장에서 낱낱이 알려졌다면 모순이 생기거나 이상화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 영원한 주일 학교 같은 걸 원한다면야 물론 좋겠지. 하지만 난 뭔가 일이 돌아가고 있는 게 좋다고. 여기는 모든 게 이미 다 이루어져 있어.” 그것은 뭔가 일리가 있는 비판이었다. 개척 시대는 진작 오래전에 끝났다. 이 문명이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은 이미 극복된 지 오래였다. 고요한 평화, 넘치는 풍요, 한결같은 건강, 넉넉한 호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매끄러운 운영 덕분에 이제 더 이상 극복할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완벽하게 관리되는 유서 깊은 시골 저택에 사는 행복한 가족 같았다.


하지만 한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은, 혹은 불만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여자들끼리 살 수 있는 상상의 세계를 구축해 놓고 굳이 남자들이 살던 나라의 ‘결혼’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온 것인가. ‘공정하고, 침착하고, 건강하고, 활력 넘치고,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불행도 범죄도 수치심도 모르는’ 여자들이 왜 결혼을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 단지 호기심에서 출발한 사회 실험인가? 자기네들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허랜드 사람들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것이 결국은 이들을 바꿀 수 있는 오만함을 끝까지 가졌던 것 같다. 허랜드에 잘 동화되어 사는 인물이나, 이곳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인물 모두 자기가 가진 젠더 개념을 버린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모성이라는 본질적 특성이 문화 전체의 주조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이 여자들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성’이 현저히 부족했다. 이에 나는 우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여성적 매력들’이 사실은 전혀 여성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성이 반영된 것뿐이라는 확신을 즉각 얻었다. 남자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목적으로 발달되었을 뿐, 발달 과정에서의 진정한 성취에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특징들인 것이다.


문명과 비문명 혹은 야만, 형제애와 자매애, 과학기술과 원시적인 것처럼 대비되는 개념을 보여주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경계와 대비는 모호해지고 오히려 전복된다. 그럼에도 이들은 끝까지 원래 가진 언어 습관, 즉 여성적이라는 말로 너무 쉽게 여성을 폄하하고 깔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적이라고 폄하하는 그 행동을 본인이 하고 있음에도. 언어습관이 사고를 지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고가 언어 습관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것이 먼저이든 언어가 사고에 분명한 영향을 준다는 것 같은 게 후반부로 갈수록 이들이 점점 폭력적이거나 공격적인 단어를 덜 사용한다는 것이다.


테리가 생각하는 어머니다움이란 아기를 품에 안거나 ‘슬하에 아이들을 거느린’ 채 온통 그 아기나 아이 생각만 하고 있는, 그런 통상적인 개념이었다. 사회를 지배하고 모든 기술과 산업에 영향을 미치며 모든 아이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가장 완벽하게 보살피고 교육하는 개념으로서의 모성은 테리에게 어머니답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끝으로 아쉬운 점은, 책 자체에 아쉽다기보다는 번역의 한계를 느낀 것이 women, female, lady, girl 등으로 다르게 쓰이는 단어를 모두 여성이나 여자로 번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어 표현에는 사회적 성인지, 생물학적 성인지 드러나게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하지만 한국어는 성별 표현에 위계가 없다. 그래서 번역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알고 싶다고! 원서를 옆에 두고 읽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빌어먹을 할망구들 사고방식!” 테리는 말했다. “저러니 남자들 세계를 이해 못 하지! 저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야. 그저 한 무리의 여, 여, 여성들*에 불과해!” 테리가 그들의 처녀 생식을 인정한 뒤에 한 말이었다.

          * 원문에서 테리가 쓴 단어는 부정적 의미의 ‘females’이다.


처녀생식을 제외하고 나면 이 소설은 현실 고증 다큐멘터리 추적 60분이다. 82년생 김지영 책과 영화를 지루하게 본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일상에 너무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들과 말들이 재현되어 있어서 대단히 흥미롭지는 않았다. 100년도 더 뒤에 읽는 건데 여전히 상황이 비슷하다는 건 좀 안타깝긴 하지만. 21세기 여성, 제4물결이 밀려오는 이 시점에서 허랜드가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절대 이 소설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유토피아에 대한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는 뛰어난 상상력 하나만으로 이 소설은 훌륭하다.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학교 커리큘럼에 포함시켜서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

여성이고 청년인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감상이 비슷했다. 비슷하게 분노하고 비슷하게 웃었다. 감상이 비슷해서 점점 대화에 활기를 잃을 때쯤 멤버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내가 만약 허랜드에 사는 청년이라면 제프, 테리, 밴 세 남자 중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고 대단한 야유와 비난을 받았다. 한 사람은 정말로 고통스러워하며 대답하기 싫어했다. 어떤 사람은 편하게 휘두를 수 있는 ‘제프’를 골랐고, 어떤 사람은 그나마 상식적으로 말이 통하는 ‘밴’을 골랐다. 나는 가장 새롭고 신기한 인간 테리를 고르겠다고 했다.


혼자서 읽기보다 함께 읽을 때 더 즐거운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야기할 것들이 많다. 혼자 읽었다면 42%쯤에 하차했을 것 같다…. 독서모임 중이라면 함께 읽자고 제안해 보시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분량이 짧고 세계관이 복잡하지 않아서 술술 읽히는 책이기 때문에 읽어 볼 것을 추천합니다. 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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