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처럼 ‘아는 것‘이 정보의 생명이라면 ‘모르는 것‘은이야기의 생명이에요. ‘모르는 것‘이 남아 있어 ‘아는 것‘을 부추기기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어요.반지름과 원의 넓이처럼,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것‘은 제곱으로 많아진다잖아요.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해요. "아는 것을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어떻게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가령 통증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명치끝을 맞았을 때의느낌이 그러하다고 할까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이 말은도무지 번역하거나 대체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시가 지향하고 조명하는 것은 이 말이 가리키는 어떤 지점이 아닐까합니다. 오직 이 지점에서 씌어진 것만이 시이고, 이 지점을 벗어나면 사이비가 됩니다. 만약 어떤 시가 이 지점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책임 회피와 방관에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애초에 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표현하려다가 실패하는 것일 테지요.
이 책의어떤 내용도 진실이 아니다. 그대를 용감하고 친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포마에 따라 살지어다.
다"라고 적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라는 어정쩡한 포현에는 아직 인생을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다는 겸손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는 시를 쉽게 쓴 것이 아니라 인생을 어렵게 살았다. 자신을 넘어서려는 노력, 결국 ‘최후의 나‘에 도달하려는 노력, 그것이그를 죽게 했고 영원히 살게 했다.이제 나는 그의 문장을 반대로뒤집어 나에게 읽어준다. 시는 쓰기 어렵다는데 인생이 이렇게쉽게 살아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