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서제일 먼저 우리는 책상과 의자를 치워 공간을 비웠다. 그리고 거기 서서 우리가 속한 그곳을 바라보았다. 언제든 수업을 하러 강의실에 들어가면 먼저는 그 일을 하라고 위그가 말했다. 가만히 서서 공간을 감각하는 일. 이제 곧 이야기가 번질, 나의 목소리가 울려나올 그곳. 이때 공간을 감각한다는것은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나를 잊지 않는 일이다. ‘내가 여기 있어.‘ 그것을 느끼는 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모래사막 위 허공에 황금톱니바퀴로 이루어진 배가 떠 있었다. 배를 이루는 수천, 수만 개의 톱니바퀴가 째깍째깍 움직일 때마다 햇빛이 톱니 하나하나에 반사되어 황금 톱니바퀴 배는 태양 그 자체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위풍당당하게 번쩍이는 황금 톱니바퀴 배는 일렁이는 햇빛과 톱니바퀴에 반사된 금빛섬광의 파도에 둘러싸인 채 모래사막 위의 뜨거운허공을 가로질러 천천히 움직여 갔다.
나는 삶을 사랑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지만그래도 많은 것을 기대하지영화 속에서 강제 수용소에 끌려온 여주인공은 살기 위해나치 장교를 유혹하고, 살기 위해 나치 장교 앞에서 미소 지으며 반라로 노래했다. 내 삶이 망가졌을 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삶을 사랑한다는 가사를 들으며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를 생각했다.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좋은 에세이 한권 추천해달라는 말에 이 책을 건넨다면 괴기한 서점 주인으로 오해받을까. 누군가 연필로 빼곡히 칠한 듯한검희색 표지에 제목이 무려 《무정에세이》라면 딱 한번 그랬던적이 있다. 동그랗고 조그만 안경을 쓴 예술가 느낌의 남자분부탁이었다. 아내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고 싶다고 했는데 한가지고려할 점이 있었다. 아내가 직업상의 이유로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편히 휴식하듯 읽을 수 있는 ‘에세이‘로 골라달라고 했던것. 그러자 곧장 내 머릿속엔 ‘편히 휴식하듯‘이라는 말은 온데간데없고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라는 말만이 남았다. 무릇 다독가의 마음을 내려놓는 데엔 좋은 책을 만나는 것만한 특효가 없을 거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