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에서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이층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네
봄이면 조팝꽃제비꽃 자목련이 피고
겨울에는 뒷산에 눈이 내리는 곳이면 어디든 좋겠네
고니가 떠다니는 호수는 바라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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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자들은 인도에 끌렸으나 감히 서역으로 위험하고 금지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장은 그들 모두를 대신해서 다녀왔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가 성지를 방문하는경험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점이다.
현장이 가지고 돌아온 경전과 물건, 관찰과 경험 덕분에 중국불교는 부처의 고향인 인도의 불교에 열등감을 느낄 필요 없이번성할 수 있었다. 현장은 중국 불자들에게 집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다는 확신을 준 순례자였다._〈5. 고대의 흔적을 찾는불교순례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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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프레스코화, 아트리움 건물, 극장을 갖춘 폼페이는 로마의 문화적 접목의 결과를 보며 감탄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폼페이 광장 옆 커다란 건물에 새겨진 베르길리우스의 명문은로마의 신화적 기원이 트로이의 아이네이아스라고 설명한다.
프레스코화부터 극장에 이르기까지 폼페이 전체가 이러한 문화실험의 증거다.
<4. 폼페이의 남아시아 여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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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페르티티와 아케나톤을 지운 것이 일신교 실험 때문이었다면 이제 그들을 기억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는 일신교가 만든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이집트 역사 속 이 짧은 시기를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세상 사람들이 계속 다신교 안에서 살았다면 아톤 실험은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나 역사의 각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가치관과 경험에따라 과거를 본다. <1.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왕비와 얼굴 없는 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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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는 이주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 위해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대홍수 이후 인구 재건에 나서고, 홍해를 건너 도피하는 등 성경 어디에나 이주민들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이주 지침서로 읽어도 될 정도다. 게다가 대부분의 이주 관련 기록들과는 달리 성경은 이주민들에 의해 이주민들을 위해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많은 이야기들이 실제 역사와 관계가 없기는 
하지만, 약 2,500년 전 구약이 처음 쓰여질 당시 사람들이 이주를 보는 태도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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