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기회가 줄어든 만큼 현대인은 고통을 상상할능력을 잃고 있다. 이는 사람을 정신적으로 가난하게만들고 비인간적이게 한다. 인간의 고통이 가진 그 엄청난 의미와 가치를 생생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많은 현대인을 피상적으로 만들고 비인간적으로 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의롭게 살려는 사람이 더 많은 고통을 당하는 현실은성경 속에서도 외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독교는그 고통을 죄의 대가로만 보지 않는다. 많은 경우 고통은 타인의 죄로 인해 발생한 피해이며, 바로 그런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관심이 기독교 윤리의 핵심을 이룬다.
기독교의 고통관이 불교와 가장 다른 점은, 고통이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죄의 결과라는 데 있다. 인간의 죄로 인해 고통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인간은 고통 앞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물론 성경은 이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부조리를 인정한다.
아무리 실용적인 내용이라도 편지에는 얼마간 시간과 정성이 들기 마련이고 그게 발신인과 수신인 사이에 늘 실용 예상의 무언가를 남겼다.
어디 얼마나 머물든 주변을 잘 정돈하는 건 내 오랜 습관이자 자부였다. 어릴 땐 안 그랬는데 독립 후 자취하며 생긴 버릇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 나는 좀더 잘 살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아직 무언가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았단 실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