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문을 지나 창덕궁으로 넘어왔고금천 옆 회화나무까지 다다랐다.1762년 영조가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살해했을 당시에도 자리를 지킨 나무였다.나무는 높이뛰기 가로대를 넘는 사람처럼낮게 뒤틀려 자라고 있었는데, 사도세자의비명을 들은 나무가 고통으로 비틀리고 속이 텅 비어버렸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었다.「대온실 수리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