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선여정(不宣餘情)

쓸 말은 많으나 다 쓰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편지 말미에 덧붙이는 다 오르지 못한 계단이라 하였습니다 꿈에 돋는 소름 같고 입에 돋는 혓바늘 같고 물낯에 돋는 눈빛같이 미처 다스리지 못한 파문이라 하였습니다 나비의 두 날개를 하나로 접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이 마음을 안아 겹이라든가 그늘을 새기고 아침마다 다른 빛깔을 펼쳐내던 두 날개, 다 펄럭였다면 눈멀고 숨 멎어 돌이되었을 거라 하였습니다 샛길 들목에서 점방(店房)처럼 저무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봉인된 후에도 노을을 노을이게 하고 어둠을 어둠이게하는 하염총총 하염총총, 수북한 바람을 때늦은 바람이게 하는 지평선의 목메임이라 하였습니다 때가 깊고 숨이 깊고 정이 깊습니다 밤새 낙엽이 받아낸아침 서리가 소금처럼 피었습니다 갈바람도 주저앉아 불선여정 불선여정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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