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라도 미술관에는 마드리드를 점령한 나폴레옹군의 시민학살을 고발한 고야(Francisco Jose de Goya)의 1808년 5월 3일, 쁘린시뻬 삐오 언덕의 총살」이 있다. 삐까쏘는 이 그림의 구도(構를 빌려, 조선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곧 내가 태어나던 그해에 조선에서의 학살을 그렸다. 그것은 지금 빠리의 삐까쏘 미술관에 있다.
멀리 마드리드에까지 달려와서 게르니까」를 마주하고 선 그때나의 가슴에 되살아나는 것은 아직도 생생한 ‘광주 사건‘의 기억이었다. 이때로부터 불과 3년 전, 1980년 5월 한국 광주시에서는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다수의 학생과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학살되었던 것이다.
굴욕을 당하고, 수탈을 당하고, 살육을 당해온 우리 민족은 과연 우리들 자신의 게르니까」를 산출해냈는가, 군국 스페인 5백년의 공포와 중압이 삐까쏘를 낳았다고 할 때, 우리 민족에게 가해지고 있는 고통은 아직 가볍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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