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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배리 로페즈의 <호라이즌>은 평생을 걸쳐 세계 곳곳을 누비며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미래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수영을 하면서 바다 너머까지 가고 싶었던 꼬마는 살아생전 70여 개 나라를 여행하고 일부 지역을 몇 차례에 걸쳐 다시 찾는다.
마냥 떠나고만 싶었던 유년기의 동경에서 시작한 여정은 어느덧 생애의 끝자락에서 화두를 던진다.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호라이즌>에서 저자는 끊임없이 묻는다.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 너머의 미래는 무엇인가?
<호라이즌>은 지질학, 생태학, 인류학, 역사, 윤리학과 과학 등 다양한 학문적 지식이 로페즈의 꼼꼼한 기록의 도움으로 넘쳐흐른다. 학술의 지루한 느낌은 없다. "삐끗하면 죽는" 활주로에 착륙했을 때, 어마 무시한 안도감을 느끼고, 새벽 3시 모기떼의 습격으로 60군데를 물렸다고 하소연하며, 학살범과의 우연한 만남까지 여행지에서 있을 법한 소소한 경험들이 지식의 파도 속에 깨알같이 숨어있다.
그의 인간적인 매력은 모나지 않게 스며드는 점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라는 말처럼, 아문센이 라이벌 스콧보다 먼저 남극점에 도착한 이유를 스스로 실천한다. 평등에 대한 고집으로 남극 기지에서 연을 날리는 귀여운 돌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는 언제나 공감과 청취로 자연과 인간을 상대한다.
배리 로페즈는 인간의 우월성을 비판한다. 문화, 특정 인종, 성별의 우월성은 인간관계의 독이라는 지적이다. 인간 역시 생물학적 존재인 까닭에 멸종을 피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종의 진화는 "향상"이 아니라, "적응"의 일환이다. 인간은 결코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생명을 위한 필수 조건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생명에 활력과 지속 가능성을 부여하는 생물학적 긴장을 조성한다. 영속성을 보장하는 것이 바로 다양성이며, 변화 또한 다양성처럼 생명을 영속시키는 토대의 일부이다.
작가를 기억의 하인이라 여겼던 로페즈는 <호라이즌>에서 권력과 야만의 시대에 희생당한 인간과 자연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성찰한다. 그의 연민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다. 지구에 살아가는 하나의 종으로서 다른 종을 대하며 공감하고 존중한다.
야만과 폭력에 희생당한 인간과 자연의 흔적은 로페즈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위안과 위로를 건네는 이들도 그들이다. <호라이즌>은 아름다운 풍경을 읊는 로페즈의 시적 언어도 압권이다.
확실히 인류는 더 깊은 지식을 쌓고 있다. 그러나 지혜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보장할 수 없다. 로페즈는 인류가 지배가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라이즌>을 읽으면서 수능 시험 출제 노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학, 지질학, 생태학, 윤리학, 과학 등 어느 분야에서 출제 가능하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다양한 지식을 가장 많이 섭취하는 이들이 고등학생이다.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그들이 읽기에 손색없는 <호라이즌>이다. 로페즈는 글을 통해 독자를 미지의 세계를 안내하고 탐험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인류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성찰하며 미래를 꿈꾸게 한다. 상상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