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마음 정비소
권종렬 지음 / 한국NCD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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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마음 정비소]는 마음의 견고한 진(절망감, 열등감, 불안감, 죄책감, 우울감, 거절감,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영혼의 쓴 뿌리(불신, 교만, 거짓, 실족, 음란, 분노, 우상 숭배)를 다룰 수 있는 책이다. 14가지 마음에 대해 정의가 어렵거나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명확한 개념과 말씀을 통해 삶을 비춰볼 수 있어서 도전이 되는 독서의 시간이었다. 또한 개념 뿐만 아니라 적용점이 제시되어 있기에 현실의 삶에서 신앙을 지키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생각을 가두는 박스처럼 우리의 마음을 묶는 견고한 진(stronghold)이 있습니다. 견고한 진은 우리를 꽉 붙들어(strong hold) 강한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배하기 위해 사탄이 쌓아놓은 견고한 진은 ‘모든 이론’과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는 모든 생각’입니다. 우리의 삶이 진정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펼쳐지려면 반드시 견고한 진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뜨려야 합니다.
권종렬, [고장난 마음 정비소] 중 발췌, P.14

개인의 삶에서 내면의 씨름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여진다. 내면의 씨름과 고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 자신의 생각을 지배하는 무형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마음을 지키는 것에 힘써야 한다. 예를 들어, 죄책감의 챕터에서 나온 이야기로 죄책감과 죄의식의 구분을 했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죄책감이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유죄 판결을 내리고, 스스로를 심판하는 자기 정죄의 감정입니다.
같은 책, P.82
죄의식은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을 통해 죄를 죄로 인식하는 것입니다…죄의식은 돌이킴을 위한 은혜입니다.
같은 책, P.84

죄책감과 죄의식에 대해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죄의식은 죄로부터 돌이킬 수 있게 하는 죄에 대한 팩트임에 반해, 죄책감은 죄가 아님에도 자기 자신을 정죄하고 갉아먹는 마음의 견고한 진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나친 자기 정죄와 죄책감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지 않고 갉아먹게 됨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죄책감과 죄의식을 혼동했기에 죄책감으로 모든 것을 동일시하지 않았나 싶다. 다시 한 번 개념을 이해하고 그 분 앞에 은혜를 구하게 되었다. 자신을 갉아먹지 않고 은혜를 구하는 삶 말이다. 하나님은 죄로부터 돌이키는 삶을 원하시지만 자신을 갉아먹고 정죄하며 빠져나올 수 없는 정죄감을 갖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 분은 여전히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계신다.

#북스타그램 #고장난마음정비소 #마음의견고한진 #영혼의쓴뿌리 #권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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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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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있는 피로, 사람을 만나면서 피로할 수도 있고, 직장을 다니면서 피로할 수도 있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인해 분주하여 피로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병철 교수님이 말하는 피로사회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과거에는 “~하지 마라“, “~해야 한다”였다면 지금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규율이 강했던 사회에서 성과를 지향하는 사회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 “예스 위 캔”이라는 복수형 긍정은 이러한 사회의 긍정적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내준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 규율사회에서는 여전히 ‘노No’가 지배적이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한병철, [피로사회], P.24

제한이 없다. 제한이 없기에 자신의 몸을 더 착취해서 일하면 성과가 있을거라고 자신을 속이게 된다. 끝없는 압박을 느끼고 결국 우울증과 번아웃 등의 신경성 폭력을 당하게 된다. 과거에는 부정적인 명령이 어려움을 주었다면, 피로사회에 의하면 긍정적인 명령이 어려움을 주고 있다. 무엇이든지 과잉되어 병리적인 진단을 받게 하며 멈출 수 없는 러너가 되게도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주목할 수 있는 SNS도 더 깊어지고 가까워졌다. 사색과 점점 멀어지는,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말도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는 피로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존재론적인 고민 앞에서 어떻게 서 있어야 할까? 자유롭지만 삶에 대한 착취가 계속된다면…자신도 모르게 나를 멈출 수 없게 만들지 않을까? 우리 자신의 존재를 찾고 사색해야 한다. 긍정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삶을 잠식시키는 피로, 그 피로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는 날까지 말이다.

#북스타그램 #피로사회 #한병철 #존재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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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의 재발견 - 교회사 속 평신도교회의 발자취
로버트 뱅크스 지음, 송인수 옮김 / IVP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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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널리 알려진다면 우리는 흔히 ‘위인’, ‘영웅’이라고 말한다. 남들이 상상하지 못한 일을 해내기도 하고, 나라를 구하는 용기있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의도치 않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며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곤 한다. 그러나 꾸준히 그 자리를 지키며 세상을 변혁해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더라도 이들의 모임에 힘이 있고,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살아갈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로버트 뱅크스의 [평신도의 재발견]을 읽으며 하나님은 사제나 제사장이 아닌 평신도를 통해서도 역사를 이루어 가셨구나 라고 배울 수 있었다.

비록 성경에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신실했던 평범한 남녀들의 역할 역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들은 목자, 씨족의 지도자, 대가족을 돌보던 그의 아내, 대규모 조직의 수석 청지기, 남편을 잃은 여인들, 두 명의 뛰어난 건축가, 군인들, 젊은 이민자, 왕후가 된 젊은 여성, 네 명의 공무원, 기생, 그리고 한 도시의 총독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사람과 직업을 아우릅니다. 이들 모두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평신도 였으며’…
로버트 뱅크스, [평신도의 재발견] 중 발췌, P.37-38

저자는 초대교회의 모습들로 시작해서 종교개혁 이전과 이후의 평신도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평범한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복음이 확장되고 넓은 범위로 퍼져 나갔다.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순회했던 핵심인물들의 편지나 방문들이 도움이 되었지만, 실제적인 운동의 원동력은 평신도들을 통하여서였다.

이러한 수 세기 동안 평신도들은 궁핍한 자들을 돌보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며 동료 신자들과 지역사회의 유익을 위해 영적 은사를 사용해 왔으며 일상적 직무와 사회적 책임을 통해 더 나은 실천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시 평신도들이 끈질기게 감당했던 역할이었습니다.
같은 책, P.85

한국의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도 19세기 말에 서상륜이라는 사람이 회심을 하고 황해도에 있는 소래라는 마을에 교회를 세웠다. 거창하게 건물을 세워 모이지 않고 초가집을 마련해서 모였다. 위대한 누군가가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지고 신앙공동체는 점점 단단해져 갔다.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무언가를 개척할 때, 무언가 특별한 힘과 능력으로 세워간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창조적이고 상상하지 못했던 관점이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이 통할 때가 있다. 그러나 초심을 잃지 않으며 루틴하게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교회는 특별한 누군가에 의해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니다. 함께 떡과 사랑을 나누며, 한 분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믿음을 잃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 다름이 있을지라도 누가 우월하고 누가 뛰어난 것이 아니다. 교회의 몸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이고 한 자매일 뿐이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북스타그램 #평신도의재발견 #ivp #ivp독서단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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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윤홍균 지음 / 심플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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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영적전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선과 악의 싸움으로 들리고 흑과 백의 싸움, 사단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대항하고, 이겨내고, 승리하는 것으로만 아주 단순하게 생각을 했었다. 물론, 현재에도 우리의 마음을 낙심시키는 영적인 전쟁이 존재하며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함은 맞다. 그런데 심리학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영적전쟁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싸움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마다 마음의 연약함이 다를텐데, 그 연약함을 아주 치밀하게 무너뜨리는 것이 영적전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고, 자신을 알고 자신의 자존감의 위치, 자존감을 이루고 있는 많은 감정들, 나아가서는 뇌과학의 이해가 있다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더라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은 대개 상처와 연관이 있다. 혼자 남겨진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인데 특히 일곱 살에서 열 살 무렵에 혼자 집에 남겨진 경험을 한 경우가 많다. 이때 뭔가 무섭거나 불쾌한 일을 겪으면 ‘혼자 있음’은 곧 불쾌한 경험으로 각인되기 쉽다. 또 혼자 있는 것이 대한 두려움이 부모를 향한 원망과 이어지곤 한다. “그때 왜 나를 혼자 뒀어?” 하는 원망. 방치되고 보호받지 못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또다시 그런 연약한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
윤홍균, [자존감 수업] 중 발췌, P.59

혼자 남겨지지 않았음에도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방치되어 있는 듯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혼자 남겨진 것이 아니지만, 기억이 기억을 낳고, 자신도 모르게 안좋은 기억에 잠식될 수 있다. 이성과 감정을 사용해서 그 기억에서 나오려고 해도 쉽게 나와지지 않는다. 불쾌한 경험들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영적전쟁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실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우리 감정의 실체를 조금씩 이해해가면서 실제적인 영적전쟁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상담도 받고 병리적인 차원에서 정신의학과의 처방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마음이 약하고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기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영적전쟁을 위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 솔직히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본질적인 연약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인정하지 못함과 빠져나올 수 없다는 내면을 향한 공격이 끊임없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저자도 이야기했지만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고민을 자기 자신만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인정하고, 또 인정해보자. 나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들의 싸움이기에…

#북스타그램 #자존감수업 #윤홍균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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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수업 -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윤홍균 지음 / 심플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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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영적전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선과 악의 싸움으로 들리고 흑과 백의 싸움, 사단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대항하고, 이겨내고, 승리하는 것으로만 아주 단순하게 생각을 했었다. 물론, 현재에도 우리의 마음을 낙심시키는 영적인 전쟁이 존재하며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함은 맞다. 그런데 심리학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영적전쟁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싸움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마다 마음의 연약함이 다를텐데, 그 연약함을 아주 치밀하게 무너뜨리는 것이 영적전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고, 자신을 알고 자신의 자존감의 위치, 자존감을 이루고 있는 많은 감정들, 나아가서는 뇌과학의 이해가 있다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더라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은 대개 상처와 연관이 있다. 혼자 남겨진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인데 특히 일곱 살에서 열 살 무렵에 혼자 집에 남겨진 경험을 한 경우가 많다. 이때 뭔가 무섭거나 불쾌한 일을 겪으면 ‘혼자 있음’은 곧 불쾌한 경험으로 각인되기 쉽다. 또 혼자 있는 것이 대한 두려움이 부모를 향한 원망과 이어지곤 한다. “그때 왜 나를 혼자 뒀어?” 하는 원망. 방치되고 보호받지 못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또다시 그런 연약한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
윤홍균, [자존감 수업] 중 발췌, P.59

혼자 남겨지지 않았음에도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방치되어 있는 듯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혼자 남겨진 것이 아니지만, 기억이 기억을 낳고, 자신도 모르게 안좋은 기억에 잠식될 수 있다. 이성과 감정을 사용해서 그 기억에서 나오려고 해도 쉽게 나와지지 않는다. 불쾌한 경험들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영적전쟁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실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우리 감정의 실체를 조금씩 이해해가면서 실제적인 영적전쟁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상담도 받고 병리적인 차원에서 정신의학과의 처방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마음이 약하고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기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영적전쟁을 위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 솔직히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본질적인 연약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인정하지 못함과 빠져나올 수 없다는 내면을 향한 공격이 끊임없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저자도 이야기했지만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고민을 자기 자신만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인정하고, 또 인정해보자. 나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들의 싸움이기에…

#북스타그램 #자존감수업 #윤홍균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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