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고 나서부터 황인찬 시인의 시를 정말 많이 읽었다. 초보 습작생들이 어려워하는 것들, 예를들면 시의 정황 구축과 구체적 진술과 묘사 등을 가장 잘하는 시인 중 하나가 바로 황인찬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집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고, 택배를 받자마자 바로 꺼내어 읽어 보았다. 그리고 역시 나는 이 시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2019년의 끝무렵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 시집을 읽으며 사랑을 되풀이하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꽤나 성공적인 연말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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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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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의 소설은 읽을 때마다 어딘가 고통스럽고, 어딘가 외로워진다. 그의 소설은 눈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나는 그의 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울면서도 놓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고통을 말하는 소설을 사랑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최진영은 그걸 가능하게 한다. <해가 지는 곳으로>, <구의 증명> 같은 소설들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랑하기에 충분한 소설들이었다.



그래서 최진영의 소설을 기다렸고, 신작 <이제야 언니에게>가 최근 출간되었다. 읽으면서 일기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 자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 어린 여성의 고통을 다뤘다는 점에서 권여선 작가의 <레몬>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소설의 소재는 영화나 다른 소설에서도 꾸준히 다뤄지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혹은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과 같은 목소리를 더 내어야 한다.

이번 소설에서 도드라지는 최진영 작가만의 문체, 그리고 고통을 다루는 방식은 이번에도 역시 나를 사로잡았다. 최진영의 소설을 읽을 때면 주인공과 내가 아주 친한 누군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의 고통을 아주 세심하게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기분을 들게 한다.



주인공 제야, 그의 쌍둥이 여동생 제니, 사촌 동생 승호, 이모, 그리고 당숙.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이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 너무나 비현실적이지만 정말로 사실적인 이야기들. 제야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의 태도와 제야를 바라보는 제니와 승호, 제야의 미래와 속내까지. 나는 온전히 제야의 편이 되어 이 소설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방관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많은 제야가 내 곁에 있을 것만 같다.

황현진 작가는 발문에서 “소설가 최진영은 ‘우리’라는 단어를 ‘불행의 연대로 이루어진 무리’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작가다.”라고 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최진영 작가의 손에서 재해석 되는 모든 불행과 고통을, 슬픔과 분노를 함께할 것이다. 우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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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의 여름
이윤희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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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세 살 여름에 나는 뭘 하고 있었더라. 우습게도 짝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애는 태권도를 했고, 공부를 못 했고, 반에서 인기가 많았던 애였다. 그에 반해 나는 조용한 아이였다.

 말을 걸 용기조차 없어서 쳐다만 보다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그 애를 좋아한다고 말해서 혼자 슬퍼도 하다가, 가끔 대화하면 그날 밤은 대화를 곱씹느라 평소보다 늦게 잠을 자곤 했다. 

 졸업식 날이 아직도 생각난다. 쪽지를 줄까 말까, 실내화 주머니에 몰래 넣을까 고민하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기억. 그날 먹은 짜장면은 유독 맛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 만화는 십 년이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게 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열세 살을 지나온 누군가라면 마음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책.

 그 애는 쭉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그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 책의 주인공 해원 역시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산호를 만난 적 없다. 만날 수 없어서 완벽해진 우리들의 첫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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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 시대를 부유하는 현대인을 위한 사람 공부
장석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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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장석주의 인문학 에세이. 에세이는 시와 다른 매력이 있지만 시인들의 산문은 시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시같은 문장들에 매료되어 읽다보면 꽤 시간이 지나있기도 하다.

글을 쓰는 일은 곧 인간에 대해 쓰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 그리고 삶을 섬세하고 조밀하게 관찰하는 것이 글쓰기의 첫번째다. 이러한 생각 때문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재밌었다. 이런 류의 책(사람들의 보편적인 습성을 관찰하고 네이밍해 분류해놓은 책)은 처음이라 신선했고, 곤충학자가 곤충을 관찰하듯이 나를 몰래 지켜본 느낌이 들어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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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열전 - 인생 고수들이 들려주는 지혜의 말들
김영철 엮음,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기획 / 창비교육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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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공부 열전>이다 보니, 단순한 공부법에 대한 책인 줄 알았는데 그런 책은 아니다. 인생 이야기, 사회 이야기 혹은 직업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단순히 성공만 한 사람들이 아니라, 끝없이 연구하고 발전하는 분들의 이야기라 읽으면서 더 자극이 되고,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책을 딱 펼쳤을 땐 김용택 시인과 소설가 조정래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제일 관심이 갔다. 김용택 시인은 시 이야기 보다는 일상 이야기 위주로 인터뷰를 진행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조정래 선생님은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이루고, 마지막에 '크게 되려면 오래 노력해야 한다', '재능보다 노력을 믿는다' 라는 좋은 말을 해주셨다. 하지만 사회가 이렇게 된 건('헬조선'으로 불리게 된 건) 기성세대만의 책임이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와닿지 않았다. 기성세대는 하루 14시간씩 열심히 노동해서 경제 성장을 이뤘다고. 하지만 그건 70-80년대 때 일이고, 지금의 40-50대는 그 때 학생이거나 막 취업하기 시작했을 때다. 조정래 선생님은 40년대 생이시니 본인 입장에선 타당한 말이었겠지만, 요즘 취업이 어렵고 살기 힘든 게 어째서 젊은이들 탓도 된다는 걸까? 나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제일 좋았던 인터뷰는 서재경 선생님과 이수정 교수님의 인터뷰다. 서재경 선생님은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 분인데, 내가 다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멋진 분이시다. 이수정 교수님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지금은 그 분야의 일인자가 된, 인간적으로 닮고 싶은 분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희망이 어쩌고 하면 불안해. 뭔가 이뤄야 되잖아요. 이루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바라는 게 없으니가 편하지. 살다 보면 별일들이 있지만 그런 별일들도 다 지나가지요. 늘 지금이 좋다, 생각하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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