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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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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가 타버렸다는 말은 온라인상에서 비난, 비판 등이 거세게 일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팬을 때린 아이돌을 아주 깊게 덕질한다. 돌판 은어로 ‘한 쳐먹은 팬’의 전형이다. 작가는 최애를 사랑하는 마음에 홀려 반쯤 나가버린 주인공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웠던 건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는 거다. 다수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놓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



세상에는 친구나 연인이나 지인이나 가족 같은 관계가 가득하고, 서로 작용하며 매일 미세하게 움직인다. 항상 상호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균형이 무너진 일방적인 관계를 건강하지 않다고 한다. 희망도 없는데 계속 매달려봤자 무의미하다느니, 그런 친구를 뭐하러 계속 돌보느냐느니 한다.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데 멋대로 불쌍하다고 하니까 지겹다. 나는 최애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 자체로 행복하고, 이것만으로 행복이 성립하니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중략)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에는 혹은 무대와 객석에는 그 간격만큼의 다정함이 있다. 상대와 대화하느라 거리가 가까워지지도 않고 내가 뭔가 저질러서 관계가 무너지지도 않는, 일정한 간격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끝없이 느끼는 것이 평온함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최애를 응원할 때, 나라는 모든 것을 걸고서 빠져들 때, 일방적이라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충족된다.



최애는 결국 은퇴를 했고, 충격받은 ‘나’는 살아 있었더니 노폐물처럼 고였다. 살아 있었더니 내 집이 무너졌다. 라며 큰 충격을 받는다. 불안정한 삶을 사는 주인공에게 최애는 하나뿐인 사랑이었으며 집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저렇게까지 마음을 붙일 수 있을까. 이런 형태와 깊이를 가진 사랑은 덕질이 유일한 것만 같다. (유일해야 한다고 믿는다)



주인공과 같은 사람을 인터넷에서 마주했다면 ‘쟤를 왜 아직도 좋아하지? 역시 아이돌에 빠지면 답이 없구나…’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넘겼겠지만 130페이지 남짓의 책으로 만나니 그 마음을 조금 옹호하고 싶어진다. 이게 문장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다소 라노벨같은 제목과 달리 문장이 상당히 유려하다. 번역도 어색함이 전혀 없다. 아이돌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분이 하신 것 같다.



“그게 되나 적당히 맘을 주는 게/그게 되나 적당히 빠져있는 게” 하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한 번 깊어진 마음은 좀처럼 주체할 수 없다. 그래도,,, 최대한 뇌에 힘을 줘서 참아야 한다,,, 남자 아이돌에게 빠지면 진짜,,, 답이없다,,, 주인공이 좌절감을 이겨냈으면 좋겠다. 걔에 대한 사랑 없이도 너는 살 수 있고 세상엔 네가 가질 수 있는 사랑의 종류가 많다는 걸 느끼는 날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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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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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이공계는 어떤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과 출신인 사람을 만나면 반짝이는 눈빛을 보냈고, 수학과 과학도 좋아했다. 점수가 안 좋았을 뿐,,, 지구과학은 물화생지 중 그나마 문과생들이 접근하기 쉬울 것이라 판단했는지 고등학교 2학년 때도 내신으로 지구과학을 배웠다. 여러 공식을 배우고 외우는 건 박대가리인 나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었지만 천체의 삶과 죽음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게 멋져보였다. 대학에 와서도 종종 유튜브에 우주를 검색해서 보곤 했다. 천체의 크기를 비교해주는 영상을 보고 나면 어쩐지 안심이 됐다. 내 슬픔은 우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주는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을 줬다.


 이 책은 천문학자 심채경의 첫 에세이다. 심채경은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얻었다. 60개가 넘는 토성의 위성 중 하나를 연구해서 학위를 받다니. 학문의 다양성과 깊이에 놀랐다. 세상엔 공부할 수 있는 게 정말 많구나. 학자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심채경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지금은 달을 연구하고 계신다고 한다.


 안 그래도 작가님이 이과라서 글을 읽기도 전에 호감도가 잔뜩 올라가있는 상태였는데 글까지 잘쓰시니 팬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이 책에는 과학자의 시선을 비롯해 여성의 시선, 엄마의 시선, 교수자의 시선으로 쓴 다양한 꼭지들이 있다. 그 시선들이 퍽 세심하고 다정해서 ‘과학자들은 빅뱅이론의 쉘던같을 거야’ 하는 나의 편견 아닌 편견이 무색했다. 심채경은 다정하고 낭만적인 관찰자같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시선에선 달이 어떤 모습일지, 그의 문법으로 달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나는 평생 논문 못 읽을 거야... 에세이로 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과 “덕후 중에 최고는 교수님이다” 하는 말을 했었다. 교수님들은 전공 과목의 덕후라서 석박사를 따고 교수까지 되었다는 게 우리의 가설이었다. 이 책에서 심채경은 큰 포부는 없었고, 다들 그렇듯 흐르듯이 살다 보니 천문학자가 되었다고 밝혔다. 흐르듯이 살았던 그 일상 속에는 성실함과 사랑이 있었을 것이다. 우주에 대해 성실하게 쌓아온 그의 사랑이 이 책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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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얼굴들
황모과 지음 / 허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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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독서가들의 마음을 씹어먹었던 김초엽 작가의 SF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의 출판사 허블의 신작 소설집 <밤의 얼굴들>! 사실 황모과라는 작가의 이름은 생소했지만, 역시 믿고 읽는 허블이다.

 sf적 세계를 동경한다. 인간 상상력의 극한 지점에 바로 sf가 위치해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을 잘 몰라서 엄두는 못 냈지만, 언젠가는 나도 sf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장르이다.

 첫 단편부터 마음을 붙잡혀 내내 재밌게 읽었다. 그래도 역시 마음에 가는 건 첫 단편인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사랑과 쓸쓸함을 통과하는 상상력과 글들. 이런 소설을 계속 읽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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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문지 스펙트럼
사무엘 베케트 지음, 전승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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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너무나 좋아진 사뮈엘 베케트! 나는 문학 갈래 중에서 희곡이 제일 좋다. 왜냐하면 희곡은 그 자체로 (널리 읽히는 게) 목적이라기 보단 연극 상영을 위한 수단 중 하나니까. 연극론 하나도 몰라서 이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읽은 베케트. 이번엔 단편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인상 첫 번째는 역시 베케트라는 것. 두 번째는 쉼표가 너무 많다는 것. 쉼표가 많으면 호흡이 빨라서 좋기도 하지만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베케트가 생각하는 사랑이 뭔지 알 수 있다. 그것이 내 취향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부차적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베케트는 베케트라는 것. 나는 그의 문장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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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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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좋아한다. 칸트와 헤겔의 철학도 좋아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 남성이라는 것이다. 나는 철학과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여성학 강의를 빼곤 여성 철학자의 사유를 접해본 적이 없다. 그런 내게 이 책이 꼭 필요했다. 지금 현존하는 여성들의 생과 철학과 사유를 들여다보며 나의 생각 또한 넓힐 수 있었다. 부담 없는 에세이 형식이라 읽기도 수월했고, 번역도 복잡하지 않았다. '철학'하면 무겁고 진중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누구나 '철학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이 책에 나의 바람을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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