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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평점 :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선생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안동에서 40년을 보내며 여러 작품을 발표하고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어느 신문에서 어떤 작가가 이 책을 추천한 글을 읽고 찾아보았고, 책을 사서 읽다보니 이 선생님이 사셨던 곳이 내가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권정생 선생은 안동 조탑리라는 곳에서 살았다. 이 곳은 현재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톨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지금도 가면 권정생 동화나라가 있다고 한다. (사실, 아직 가보지 않았다.) 선생은 이곳에 살면서 한국전쟁과 개발의 아픔을 겪었다. 옛 마을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겉만 농촌이지 도시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굉장히 괴로워했다. 그리고 개발을 하며 사라지는 생명체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졌다. 책의 여러 글을 읽다보면 그 괴로움과 안타까움이 군데군데 묻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은 1996년 처음 나온 책이다. 지금 나온 책은 선생이 돌아가신 후 나온 개정 중보판인데, 이 책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먼저, 선생이 자신의 글이 이런 식으로 묶여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하잘 것 없는" 글이 출판사에서 출간되길 원치않으셨다고 한다. 글의 가치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회의적이었으며 그로 인해 출판사를 곤경에 빠뜨리지 않을까 걱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글을 모으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선생께서는 자신이 쓴 글을 보관하지 않았고, 그리고 글을 주었더라도 누구에게 줬는지 기억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들이 선생의 글을 수소문하여 찾고, 많은 곳을 뒤져 이 책을 냈다고 한다. 그렇게 나온 책이 1996년 판이고, 선생께서 돌아가신 뒤 또다른 글을 찾아 새로 내려고 하였으나 찾지 못해 선생을 추모하는 분들이 쓴 글을 추가하여 개정 중보판으로 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선생은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살아있을 때는 물론이고, 돌아가신 후에도 선생을 기억해서 선생을 기리는 책을 냈으니 말이다.
책은 현대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직접 겪지 못한 일제치하의 고통, 한국전쟁, 이념갈등의 모습들을 민초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준다. 또한 도시화에 밀려 황폐해지는 농촌의 모습, 자본에 찌들려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개발에 의해 사라지는 옛 고향의 모습들. 지금의 세대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다. 책에서만 보고 TV에서만 봤던 내용일 뿐 실제로 피부에 와닿지 않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세대의 사람들은 징용자로, 노무자로, 위안대로 고통을 받았고 그 다음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친구가 친구를 죽이는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나니 개발한다며 자신의 고향이 고속도로에, 댐에 밀려 사라진다. 이런 고통을 과연 지금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들에게 이런 내용은 너무나 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지금 현재의 일을 멈추고 이 글들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우리 앞의 어른들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그 덕분에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 과연 지금의 사회에서 행복은 무엇인지. 해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려가던 폭주기관차를 한번 멈추게 한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지 않을까? 오늘 밤은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준 선생에게 가서 인사를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