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필드 파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6
제인 오스틴 지음, 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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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략적인 줄거리: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패니는 고향이었던 포츠머스를 떠나, 부자인 이모들과 이모부가 살고 있는 맨스필드 파크로 넘어가서 살게 된다. 10대 초반 정도부터 맨스필드 파크에 머물러 살게 되면서 이모들과 여사촌들의 말하기 힘든 압박에 힘들어져 고향을 그리워 하기도 하고, 가끔씩 패니를 위해 마련된 작은 방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패니는 토머스 경 집안의 둘째 에드먼드의 심지 굳은 보호와 그와의 오랜 기간 꾸준히 이어진 대화를 통해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여러 사람들과 깊고 얕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패니는 사람을 보는 자신만의 뛰어난 안목을 갖게 되고, 사람이 조용하면서도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굳센 성격으로 변모하며, 한 편으로는 그런 정신력을 기르는 데에 큰 도움을 준 사촌 에드먼드에 대해 연모하는 마음이 커지게 된다. 동네 이웃이 된 크로퍼드 남매와 패니, 그리고 에드먼드와의 관계에서 패니는 크로퍼드 남매 각각에 대해 사람됨이 부족하다고 느껴 여러모로 불편함을 느끼고, 크로퍼드 양에 대해 적극적이면서도 소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에드먼드에 대해 답답함을 느낀다.

이 소설을 읽으며 느낀 점:

작품 초반과 중반을 읽으면서 집안별로 돈의 많고 적음과, 신분의 우열 관계가 패니에게 다가오는 중압감을 지켜 보면서 패니가 참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 당시에 여성이 자유로운 연애도 할 수 없고, 마땅한 직업을 갖기 힘든 시대였음을 고려한다면, 작품의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가 겪는 고통과 괴로움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가 굳은 여성으로 성장한 패니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또한, 제인 오스틴만의 문체, 등장인물들이 각자 생각하고 느끼는 마음이 굉장히 정확하게 그 자리에 깃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작가로서 작중 등장인물들을 정말 정확하고 속속들이 잘 알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작품을 초반부터 후반까지 읽으면서 떠나질 않았던 것 같다.

작품 외적으로는 그 당시에 소설을 편집자도 없이 홀로 완벽하게 여럿 써 내면서, 영국 왕실을 알현하기도 했던 제인 오스틴이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소위 '자기만의 방'도 없었던 제인 오스틴은 거실의 탁자에서 원고지에 소설을 쓰고, 누군가 그녀의 주변을 지나갈 때는 원고를 탁자 밑으로 숨기기도 했다는데, 오스틴 그녀가 당시에 겪었을 삶의 풍파가 나로서는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다. 병세에 시달리면서 어떻게든 여러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을 써내려 갔던 제인 오스틴은 4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데, 그녀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았다면 얼마나 많은 대작을 써내려갔을지 한 편으로는 너무 아쉽기도 하다. 그녀가 집필한 모든 작품이 명작이라는 평가를 온전히 받고 있는 점에선, 그녀가 쓴 작품들을 보고 여러모로 도와줄 편집자도 없었고, 그 당시에 책이란 것이 21세기의 현재처럼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어서 독서란 것에 온전히 몰입하기에도 힘들었을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이 집필된 그 시대로부터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독자를 매료시키는 작가로 남아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김영희 선생님의 번역도 굉장했다. 그 분의 번역이 정말 엄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문장 한 문장이 역자 선생님께 소홀히 여겨지지 않았구나.' 읽으면서 그런 마음이 가득했다. 이런 뛰어난 번역으로 책을 읽게 해 주신 김영희 선생님과 민음사 출판사에 정말 무한한 감사와 존경뿐이다.


다른 한 편으로, 최근 열화당 출판사에서 출판되고 있는 상허 이태준 전집에 대한 칼럼을 써 주셨던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님의 글을 읽었는데,

(매일경제 칼럼 : https://www.mk.co.kr/news/contributors/10954722 )


(네이버 뉴스 :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266187 )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에선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는 반면, 근대 시기 작가들의 작품에선 늘 편안함을 느껴왔다. 동시대의 글들은 심리적 거리가 충분치 않다. 작품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딜레마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반면 근대 시기의 작품들은 시간적 거리로 인한 여유가 있다. 동시대 작품엔 미학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쉽게 평가자의 입장이 되곤 한다. 몰입을 방해하는 미숙한 표현, 작위적 설정, 윤리적 회피나 과잉을 만나면 머릿속에선 처형극장이 연출된다.

반면 근대 시기의 작품들은 우리가 넘볼 수 없는 경험적 지평에서 얻어진 것들이라 호기심과 경외감이 감상의 주조를 이루게 된다." 이라는 대목에서 제인 오스틴 작품을 읽으면서 떠오른 감상이기도 했어서, 많은 공감을 했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지점을 온전히 글로 표현하지 못한 점을 너무나 정확하고 아름답게 적어 주셔서, 어렴풋이 느끼던 생각을 재확인하게 돼 감사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건 일반적인 얘기다. 이것 말고 좀 더 개인적으로 나는 근대라는 시기의 특수성에 더 이끌리는 것 같다. 나는 궁핍한 시대의 문학이 좋다." 이 부분을 읽고 '대표님께선 김우창 선생님의 대표작 <궁핍한 시대의 시인>과 횔덜린을 감명깊게 읽으셨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제인 오스틴 다른 작품을 언제 또 읽을 지는 기약이 없지만, 아마 다음에는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을 읽게 될 것 같다. Sense and Sensibility라니! 언어적 유희가 너무 멋진 것 같다.작품이 전체적으로 지루할 수 있지만, 그 지루함을 무기 삼아 스토리의 과정과 결과를 빌드업 해내서 후반부에 굉장히 크게 터트린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아, 내심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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