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제안들 31
에두아르 르베 지음, 한국화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말할 때, 그들은 너의 죽음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p.36~37) 이 작품을 쓴 작가 르베는 이 책의 원고를 편집자에게 넘기고 10일 뒤 자살했고, 이 책이 몇달 뒤 출판됐을 때,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해 말하면서 이 자살 ‘사건’에 대해 언급한다. 결국 르베가 써둔 p.36~37에서의 예언은 적중했다. 책 전체적으로 줄거리는 없다. 작가 르베는 작품에 줄거리를 적는 일을 거부했고, 모든 문장엔 각각의 모든 사실만이 위치할 뿐이다. 작품 내에서는 ’나‘가 말하는 ’너‘가 중점적으로 서술돼있고, ‘너’에 대한 특징들이 사전적으로 나열돼 있다. 책 페이지를 넘겨 가면서 우리는 ’너‘ 라는 존재의 특징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너‘가 가졌던 고상하다 싶은 취미, 습관, 행동, 생각, 생활 패턴, 루틴 등을 파악하고 나면, ’나‘와 ’너‘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작품 내에서의 특정 일화 중에서 ’너‘는 분명 혼자 여행을 떠났다고 서술돼 있는데, 그것에 대해 ’나‘는 이상하게도 구체적으로 이것저것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독자인 우리들은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가가 ’너‘가 사실은 ’나‘의 분신이라는 것, 그 사실이 되는 심증과 물증들을 여기저기 흩뿌려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페이지를 처음부터 넘겨가며 초반엔 ’너’와 ‘나’ 사이의 관계성을 생각하게 되지만, 책을 다 읽을 즈음엔 ‘너’와 ‘나’의 동일성에 대해 생각하고, 더 나아가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 본질적으로, 그리고 실존적으로 생각해보며 살며시 책을 덮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