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알고 있다 - 5500명의 죽음과 마주한 뉴욕 법의조사관의 회고록
바버라 부처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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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히 고백하면, 나는 이 책을 호기심 때문에 읽었다. 죽음을 5500번이나 조사한 사람은 과연 무엇을, 어디까지 보았을지 궁금했다.


어떤 내용이 쓰여있을까? 너무 생생해서 잔인하거나 징그러울까? 아니면 참혹하고 서글플까? 살인범의 마음이 드러나 있을까? 아니면 CSI나 범죄 수사물에 나오는 법의학자들처럼 죽음을 분석하는 내용 위주일까?


나는 이 책이 죽음 그 자체보다 살인 사건 조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죽일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인지 같은, 범죄 심리도 다루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내 기대나 호기심이 안일하고 짧았다는 걸 깨달았다.

<죽은 자를 알고 있다>. 제목을 더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었다. '죽인 자'가 아니라 '죽은 자'이다. 이 책은 죽음이 발생한 후에 현장과 죽은 자에게서 무엇을 알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 죽음 그 자체로부터 무엇을 알아낼 수 있는지, 죽음이란 어떤 실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다뤄지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말하자면, 이 책은 죽음의 '물성'에 대해 생생하게 알려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때론 거부하고 싶거나 버거울 만큼, 피부에 와닿을 만큼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 그 이유는 저자가 여성의 몸으로 20년도 넘게 뉴욕 맨해튼에서 법의조사관으로 일하며 죽음을 조사하고 시체를 조사하며 겪은 모든 경험이 이 한 권에 집대성되어있기 때문이다.


법의조사관이란, 범죄 수사물에 나오는 법의학자와 주인공이 흔히 맡는 수사관의 중간 단계에 있는 사람이다. 감식반은 현장을 검증한다면, 법의조사관은 사체를 검증한다. 살인만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그 자체를 조사한다. 그래서 살인 뿐 아니라, 자연사, 자살, 사고사 등도 모조리 조사한다.


살인범이 있는 경우, 경찰은 누가(who)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 찾아야 한다. 법의학자는 사인 즉, 무엇(what)을 밝혀낸다. 내 일은 어떻게(how) 사망했는지, 즉, 사망 유형을 규명하는 것이다.

(중략)

이건 살인일까, 자살일까, 아니면 단순한 사고일까? 나는 법의학자의 눈과 귀를 대신해, 사망 유형을 특정하기 위한 증거를 수집한다.

71p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이 시체가 타인에 의해 살해당했는지, 병사했는지, 자연사했는지, 불의의 사고로 죽었는지, 무모한 무언가를 스스로 벌이다가 예기치 않게 죽었는지, 스스로에 의해 살해당했는지(이것이 자살의 진짜 정의다)를 판별해 내는 것이 법의조사관이 하는 일이다.



저자는 조사 현장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더러는 비위에 상할 법한 상황도 덤덤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인(死因)을 밝히기 위해 시체를 조사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담고 있어서, 단지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사관들의 멋진 활약을 보는 것보다 훨씬 실감난다. 어떻게 죽은 사람의 몸에서 여러 가지 단서나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해내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확인해 보면 된다.


또한 죽은 다음 사람의 몸이 어떻게 부패되는지, 사후 경직이나 시반 등으로 죽은 시간을 알아내는 방법, 어떤 방식으로 죽었을 때 사람 몸에 어떤 흔적이나 상처가 남는지 등등 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생각보다 죽은 사람의 몸엔 많은 흔적이 남는다. 과연, '죽은 자'는 많은 걸 알고 있다.


<죽은 자를 알고 있다>는 아주 뛰어난 범죄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을 만큼 생생하다. 저자는 직접 경험하고 오감으로 느낀 죽음을 그대로 표현한다. 한 대목을 옮겨본다.


방에 들어왔을 때, 다섯 가지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진한 레드와인의 향, 피비린내, 소변 냄새, 마리화나 특유의 역한 향 그리고 공기 속에 짙게 배어 있는 공포의 냄새였다.

(중략)

와인의 은은한 향과 방 안에 가득한 마리화나의 풋내가 은근히 어울렸다. 그 여러 겹의 냄새를 뚫고 나온 것은 짙은 공포의 냄새였다. 그것은 혀끝에서 느껴지는 구리나 아연 같은 금속성 냄새에, 지나치게 익은 양파를 잘랐을 때 나는 고약한 냄새가 섞인 복잡한 향이었다.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불쾌한 냄새였다.

267p


직접 죽음의 현장을 경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 아닐까.


차마 여기에 소개하기 힘든 극도로 생생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해서, 픽션이나 뉴스에서 어떤 '장면'이나 '사건'으로만 경험하던 죽음에 대한 막연하고 피상적인 환상, 인식을 무참히 박살내 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좀 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대면하게 된다. 픽션에서 콘텐츠로만 보던 죽음에서 벗어나 논픽션의 해일 같은 '진짜 죽음'을 맞이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깨어나게 된다.



저자의 활동 무대는 뉴욕이다. 죽음의 면면 뿐 아니라 뉴욕의 면면과 민낯을 저자는 가감없이 책에 옮겼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다양성만큼이나 죽음의 스펙트럼도 다채롭다. 저자는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뉴욕의 삶, 다양한 계층 및 지역의 삶을 여과없이 모두 다룬다.


부자의 죽음, 가난한 자의 죽음, 유색인종의 죽음, 범죄자들의 죽음, 노숙자의 죽음, 불법거주자의 죽음, 부유한 자선가의 죽음, 거지의 죽음, 이성애자의 죽음, 동성애자의 죽음....


때론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 명백함에도 증거가 없어 자살로 결론지을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고, 병사라는 증언에도 불구하고 타살이라고 밝혀내기도 하는 등 부조리한 일들도 등장한다.

또한 치정이나 복수, 우발적인 분노 같은 일로 일어나는 살인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대부분 마약 거래나 불법 조직에 연루되어 벌어지는 '사업적인' 죽음이 많다고 한다. 추리물에서 등장하는 '인간적인' 죽음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는 저자의 말이 씁쓸하다.


그런데, 자연사든 타살이든 자살이든 5500번이나 되는 죽음을 목격하고 면밀히 조사해야 하는 일을 저자는 어떻게 버텨낸 것일까.


의외로 저자는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했다. 사체를 조사하러 간 현장에서도 하늘의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호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혹은 죽은 사람의 방에 장식된 명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일부러 그렇게 아름다움을 찾으며 조금이라도 마음을 보호하려 애썼다.


왜 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풍경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가 했는데, 알고 보니 저자가 일부러 그런 아름다운 풍경을 찾고 집중하려 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마음을 지키고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폐허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데 능숙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내게 기쁨을 주었고, 내 세계를 넓혀주었으며, 나와는 다른 삶의 존재를 깨닫게 했다.

176~177p


또 감정을 차단하고, 일에서 나를 분리해 무심해지려는 노력도 무던히 했다. 피해자의 사연이나 심정에 일일이 이입을 했다가는 단 하루도 버텨내지 못할지도 모를 사건들이 끝도 없이 일어나기에.


나는 강한 척 해야만 했다. 우리 모두 그랬다.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보통 사람보다 더 강한 모습을 유지해야 했다.

(중략)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단번에, 적당히 거리를 두던 태도에서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에 마음을 쓰며 괴로워하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나마 편안해지는 길밖에 없었다. 나는 그 중간 지점을 찾지 못했다.

300p


이 책은 죽음이나 범죄 현장을 조사하는 내용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이 저자의 삶과 깊은 감정도 담아내고 있기에 한층 깊이가 있다.


저자는 중증의 알코올 중독자였고 우울증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법의조사관이라는 천직을 만나서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인생을 바꿨다. 그 과정이 아플 만큼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벅차기도 하고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중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는 이들도 종종 등장하기에, 중독을 다스리지 못하면 맞이하게 될 말로에 대해 생각해 보며 마음이 힘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자살을 다루는 부분이나 9.11 테러 현장을 수습하면서 저자가 겪은 참담한 현장들을 읽으면서 감정적으로 버거워 잠시 책을 덮고 쉬어가야 하는 때도 있었다. 이 책은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세계가 확실히 달라지는 그런 책이다.


<죽은 자는 알고 있다>는 회고록인 만큼, 저자가 법의조사관 일을 그만두게 된 후의 여정까지도 담고 있어 의미가 더욱 깊다. 처음엔 가볍게 죽음이나 살인에 대한 정보가 궁금해서 열었던 책인데, 바버라 부처라는 한 인간의 인생 여정을 통해 죽음 뿐 아니라 삶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맞서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해 주었다.


나는 사망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려 애쓴 노력에 대해 결코 판단하지 않았다.

삶이 두려울 때가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6p


9.11의 어마어마한 참상을 견뎌낸 후 매사에 예민해진 저자에게 상사가 건네는 말이 인상깊다.


바버라, 인생은 계속되는 거야. 사람은 먹고, 싸우고, 사랑하고, 섹스도 하지. 그냥 흘러가는 거야. 파티를 해도 돼. 삶을 누려도 괜찮아.

339p


무슨 일이 일어나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은 계속된다는 것. 그리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



내가 직장에서 보아온 비극적인 자살들에 비하면 얼마나 운이 좋은지 깨달았다. 나는 살아있었다.

376p



<죽은 자는 알고 있다>를 읽으며 수많은 죽음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결국 마지막에 저자가 전하는 것은 생명, 삶이었다.

때로 삶과 죽음의 현장이 너무 생생해서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종종 막연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는데, 손에 만져질 듯 죽음의 물성과 현장에 대해 알고 나니 오히려 삶에 가까워진 기분이다.

지금까지는 죽음의 그림자만 보며 두려워했다면, 오히려 횃불을 들고 실체를 마주함으로써 허황된 두려움과 환상을 떨칠 수 있었다.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나의 죽음을 확인하고, 대처하고 처리할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죽음이 주변에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도 새삼 깨달았다.

죽음에 대해 배우려 했다가 오히려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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