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주 - 우연이라 하기엔 운명에 가까운 이야기, 2018년 뉴베리 대상 수상작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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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사랑스러운 작품을 읽다가 엉뚱하게 옛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학창 시절, 처음으로 그녀의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그녀의 집에 가까워지면서 '어, 어?'하는 놀라움이 점차 커져 갔다. 그녀가 출생 때부터 주욱 살아온 집이 있는 곳은 내가 어릴 때 자주 원정가서 뛰어놀던 이웃 동네였다. 그 동네 아이들은 유난히 착해서, 옆 동네에서 온 나와 내 친구들에게 텃세를 부리긴 커녕, 오히려 잘 어울려서 놀아 주었었다. 확인은 안 되지만, 우리는 이미 어릴 때 구면이었다는 추정이 들면서 '이거.. 운명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2. 장만옥 & 여명 주연의 영화 '첨밀밀'을 보셨다면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실 것이다.
3. 영화화 되기도 했던 데이빗 미첼의 소설 '클라우드 아틀라스'도 연상되었다. 이 '안녕, 우주'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동화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 하다.
4. 불교 용어 중에 善根(선근) 혹은 他生之緣(타생지연)이란 말이 있다. 소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의미다. 너무 진부한 용어이지만, 이게 우주이고 이게 우리다. 우리 하나하나가 우주를 이루는 한 단위이고, 어쩌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직간접으로 상호 작용을 하면서 어우러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5. 이런 사고 방식은 서양인들은 하지 못하는 아시아인들의 것이다. 역시나 작가의 이력을 보니 필리핀 계이다. 며칠 전 읽은 2021년 뉴베리 대상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의 작가가 한국계였듯이 요즘 뉴베리 대상은 영미 문화권 외의 민족들에게 주어지는 게 주 흐름이다. 독창성과 신선함. 이는 영미 문화권에서보다 그 밖에서 찾아낼 확률이 더 높으니까 어쩌면 당연하다.

6. 재미 하나도 없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보다 얼라들을 주 독자층으로 한 이 뉴베리 상이 내게는 훨씬 더 잘 다가오고 공감을 준다. 당분간 뉴베리 수상작들을 위주로 골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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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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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당신 인생의 이야기' 

2010년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이번 작품집에도 실렸다.

무려 17년만에 드디어 두 번째 작품집 '숨'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냉큼 구입했다.

테드 창이다. 

무슨 긴 말이 필요한가.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시간 여행 이야기인데, 과학 소설이라기 보다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환상 소설에 가깝다.  사전 지식 없이 읽으면 한 편의 아름다운 아라비안 나이트 소설로 여기기 딱 좋다.


2. 숨 (Exhalation)

: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다가, 뭔가 희한하다는 느낌을 받더니, 다 읽고 나서는 결국 한 번 더 읽어야 했다.

테드 창, 정말..

엔트로피 개념을 소설화 하다니.


3. 우리가 해야 할 일

: 여기까지 읽으면서 테드 창이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자유 의지의 부정' 즉 운명론 쪽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집의 첫 두 단편도 결국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고 이 단편도 그러하고, 특히 전작 '네 인생의 이야기'도 바꿀 수 없는 미래를 알면서도 순응해 가는 엄마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https://blog.naver.com/mogulkor/220940265964 

약간 우울한 결론인 셈이다.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https://blog.naver.com/mogulkor/130174038767 


5.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이건 좀 쉬어가는 페이지.


6.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이번 작품집에서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단편이었다. 

실로 여러 가지를 말해주고 있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얼마나 주관적으로 왜곡된 것인지,

혹은 차라리 왜곡 시켜서 기억되고 전승되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닌지 등을 주제로 미래 사회의 인류와 아프리카 오지 미개인들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하면서 전개하고 있다.

미래에서는 최 첨단 동영상 기억 장치를, 오지에서는 종이와 필기구를 매체로 기록 하지만 결국 주제는 하나로 모아지는 절묘한 구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이 내 가슴을 쳤던 것은 (조금 주제에서 벗어나지만)

주인공과 딸 사이에 있었던 갈등을 묘사하는 대목이었다.

소설 속에서의 내용이지만 정말 그 조그만 반전(읽어 보시면 안다)에 뒤통수가 얼얼하였다.

가족은 사랑으로 맺어지고 있지만, 평생 가는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것도 가족이다.

내가 아비랍시고 내 딸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줬던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또한 나 자신이 기억을 왜곡시키면서 자기 합리화를 했었던 적이 없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금 반성하게 되었다.

인생은 짧다.

사랑해 주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나는 잊었는데, 자식들은 가슴 속에 반흔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금 돌이켜봐야 하겠다.


7. 거대한 침묵

음.. 이건 뭐랄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돌고래들의 경고를 연상케 하였다. 혹시 그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나 하고 이 작품집 말미에 있는 작가 노트를 읽어 보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8. 옴팔로스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과학이라는 것이 종교에 잠식되어 버려서 창조론이 진화론을 밀어내고, 모든 것이 조물주의 의도대로 이뤄졌다고 믿는 세상이 되었다면 아마 이 단편에서 묘사되는 그런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9.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수 없이 갈라진 평행 우주들의 자아와 노트북(이 작품에서는 프리즘이라 칭한다)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설정을 하고, 이에 따른 각종 상황들을 현란하게 풀어간다. 테드 창의 상상력에 다시금 경의를 표하게 한 작품이다.  이번 작품집에서 영화화할 작품을 하나 고른다면 단연 이 단편이다!

감독은 당연히 드니 빌뇌브가 해야 하고.


이번 작품집은 수학, 물리 지식을 기반으로 깔고 있었던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비교해서 전반적으로 읽기가 좀 더 쉬워졌고, 좀 더 아름다운 느낌이다.  문과적 감성이 강하신 분들도 전작에 비해 꽤 친근하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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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 젊은 괴짜 곤충학자의 유쾌한 자력갱생 인생 구출 대작전
마에노 울드 고타로 지음, 김소연 옮김 / 해나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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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파브르 곤충기에 빠져서, 그를 롤 모델 삼아 곤충학자의 길을 시작한 순수한 (정말 순수하다...) 일본 젊은이. 

메뚜기로 평생 전공을 삼았다가, 메뚜기의 본 고장(?)인 아프리카로 용감하게 뛰어든다. 

어찌 보면 별로 지혜로운 결단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무모한 오다쿠는 아니었고, 현실 인식이 확실히 되어 있는 기특한 젊은이였다. 

그 증거는 바로 이 문장 속에 함축되어 있다. 


꿈을 말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회라는 집단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위대한 파브르조차 곤충 연구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어 교사를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본 책 117쪽).


나름 현실 감각은 있으되, 학문적 순수 열정이 더욱 압도적이라 그런 결단을 내린 듯. 

그래도 아프리카 현지로 가서 정열적으로 메뚜기 연구에 임하지만, 돈 문제(주로 연구비를 말함이다) 등등에 대해서는 또 그렇게 현실적일 수가 없다. 물론 이재에 밝은 건 아니고, 오히려 어리숙해서 항상 당한다는게 문제. 

(이거 웃기는 상황 맞지?)


그의 최고의 꿈은 수억마리의 메뚜기 떼를 직접 영접(?)하며 연구에 하이라이트를 만들고 싶은 것.

그가 간 모리타니가 바로 거대 메뚜기 떼가 출몰하는 곳이었다.  벅찬 희망을 안고 모리타니 메뚜기 연구소에 정착했으나..

아 글쎄...

하필 그 시기가 모리타니에서 역대급 가뭄이 온 탓에 메뚜기 떼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연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설마 '메뚜기 없는 상황'이 생길 줄이야. 최악이다.

떼로 발생한다던 메뚜기가 흔적도 없다니, 대체 나는 뭐하러 아프리카까지 왔단 말인가. - 190쪽.

(이거 웃기는 상황 맞지?)


초조하게 세월을 보내며, 연구비마저 다 떨어지고(끊기고), 이 젊은이의 궁상맞은 처절한 생계형 몸부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메뚜기 연구 관련 블로그질에다 아프리카 메뚜기에 대해 쓴 책 출간, 잡지 연재, 토크 콘서트, 인터넷 동영상(니코니코) 활동, 이 책 표지에 나온 것처럼 초록색 전신 타이츠를 입질 않나(종반부에 거대 메뚜기 떼를 영접하는 의상으로 쓴다), 모리타니 민속의상을 입고 메뚜기 채를 들고 나오질 않나...

Money 가 문제인데 무슨 짓인들 못하리?

이렇게 닥치는대로 처절하게 몸부림을 치며 대중의 시선을 모으고, 이는 결국 훗날 재기의 발판으로 삼게 된다.


이 책은 일단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여서 딴 생각을 하거나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전형적인 page-turner 다(실제 고생담을 기술한 수기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읽는 내내 자주 웃음보가 터진다.

뭔가가 될 것처럼 잔뜩 변죽을 울리다가 갑자기 허무하게 고난에 빠지곤 하는 주인공의 상황들이 내 머릿 속의 웃음 중추를 어김없이 건드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거 웃어도 되는거야?' 하는 guilty pleasure 또한 동시에 들면서 말이다.  이런 걸 요즘 표현으로 '웃프다'고 하던가?   그저 순진하기만 한 주인공의 행보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결국 고난 끝에 낙이라 했던가?

나름 무사히 연구 활동을 마치고, 모리타니를 떠나려는 순간 그렇게 그리워 했던 거대 메뚜기 떼와 드디어 마주친다.  초록색 전신 쫄쫄이 타이즈를 입고.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을 정도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메뚜기들아! 나를 잡아 먹어!"


젊음과 열정으로 순수하게 학문 연구에 정진한 젊은이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런데 자꾸 웃음이 나면서도 슬픈 감정도 동시에 드는 희한한 수기였다. 


이 책은 실화에 근거한 수기이지만 여느 소설들보다 훨씬 나은 흥행성을 가지고 있다.

단언컨대, 반드시 영화화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마 대단한 블랙 코미디 작품이 나올 듯 하다. 


사족: 이 책에서 가장 웃겼던 대목은 주인공이 다리를 전갈에 쏘인 후의 상황들이었다.  하필이면 독성이 강한 전갈에게 쏘인지라, 다리가 퉁퉁 부었고 생명의 위협까지도 느끼던 상황이었다.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면서 연구소장과 경비아저씨가 민간 요법(?)을 시전한다.  그건 다름이 아니고, 쏘인 다리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외우는 것이었다.  주인공이 그들의 정성(?)에 고마워 하면서도 속으로 '저.. 그냥 약 주시면 안 돼요? ㅠㅠ; ' 하는데 왜 이리도 guilty pleasure 와 함께 웃음을 참을 수 없던지..   이 책에는 이런 식의 개그가 정말 빈번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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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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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때는 SF 소설같은 장르 소설 한 권 읽는게 역시 꿀맛이다.

이번에 읽은 것은 휴고, 네뷸러 상 등을 석권한 중국계 미국인 작가 켄 리우의 단편 작품집이다.  

대륙의 작가인 류츠신의 충격적인 SF 소설 '삼체'를 영어로 번역하여, 그 또한 아시아 작가 최초로 휴고상을 타게끔 해 준 일등 공신.


켄 리우는 미국 국적이고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중국에서 출생한 이래 정서적으로 동아시아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것 같다.  영미권 독자를 대상으로 쓴 작품들이지만,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는 우리들 시각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주제들이 풍부하다.  솔직히 테드 창과 비교해서 SF 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인 생각이 들지만, 전반적으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 나는 너무 좋다.


종이 동물원 - 2012년 휴고, 네뷸러, 세계 환상 문학상까지 모두 석권한 문제의 작품이다.  읽는 내내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자꾸 생각나서 가슴이 아렸다.  단편이지만 많은 주제를 담고 있다.  모성애, 효심, 인종 차별, 문화혁명의 광기까지.  종이 접기로 만든 동물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에서는 판타지로 분류될 수도 있겠지만, 순수 문학으로 봐도 무리가 없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동물원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zoo 말고도 menagerie 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원래 유럽 귀족들이 자기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집에다 마련했던 동물원을 menagerie 라고 칭했고 (귀하고 화려한 것들을 모아놓는다는 의미의 어원에서 비롯), zoo 라는 단어는 20세기 들어서서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동물원을 뜻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제목인 '종이 동물원'은 아마도 테네시 윌리엄즈의 희곡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를 차용한 듯.


천생연분 - 인공지능을 다룬 것인데, 얼마전에 본 영화 '업그레이드'가 연상되기도 했다.  구글과 포털들 모바일 디바이스에 코를 박고 사는 젊은 세대들을 보면 이 단편이 그리는 내용이 전혀 허황되지는 않은 듯.


즐거운 사냥을 하길 - 구미호를 잡는 퇴마 액션물로 시작했으나,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어느새 모든 요기가 사라진다.  그리고 스팀 펑크로 변하는 기막힌 전개.  이건 영화화하면 딱 좋은 소재다. 상당한 매력이 넘치는 단편.


상태 변화 ​- 이건 좀.. 그냥 그랬다.

파자점술사 - 한자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단편인데, 영어권 독자들이 얼마나 이해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타이완 사람들도 우리 나라 못지 않은 시련기를 겪었다는 것도 알게 되고.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 초반 이 대목에서 감탄했다: '모든 생물종은 대를 이어 지혜를 전수하는 나름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 사유를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거스리지 못할 시간의 파도에 맞서는 방파제처럼 잠시나마 동결된 것으로 만드는 방법 말이다.  모두가 책을 만든다.'

이탈로 칼비노의 걸작인 '우주만화'의 영향을 받은 듯한 단편이다.


시뮬라크럼

'종이동물원'과 더불어 내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단편이다.

딸 아이 키우는 아빠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

이제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난 내 딸이지만, 내 꿈 속에서 가끔 나타나는 내 딸의 모습은 아직도 일곱살 때 모습 그대로이다. 


레귤러

이 단편집 초반부의 따뜻한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스릴러.  같은 작가가 맞나 할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작품이다.  이것도 영화화하면 괜찮을 듯.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역시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 풍의 단편.  테드 창의 영향도 살짝 느껴진다.


파(波)

레이 커즈와일의 그 유명한 저서 '특이점이 온다(Singularity is near)'가 연상되는 작품이었다.

인류가 결국 특이점에 다다르면 그 이후에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소설적 상상력을 사용하여 제대로 기술하였다.  결국 우주가 된다는 것.  이런 식의 결말은 참 마음에 든다. 


모노노아와레 

2012년 3관왕에 이어 2013년 휴고상 2연패를 달성한 작품.  이 단편집에서 조금 이질적인 작품이다. 

이 단편만 읽으면 작가가 일본 빠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어지는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와 '...다큐멘터리' 까지 읽으면 그런 오해는 불식된다.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略史)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 때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외교적 수완과 터널 횡단 공사로 번영을 했고, 그 바람에 세계 공황이 해결되었으며, 독일 나치는 아예 발흥을 하지 못했고 제2차 세계대전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대체 역사물이다.  그러나 조선인 일본군 성노예와 강제 징용 등이 또 다른 형태로 있었다는 것.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후반부에 가서야 알게 된다. 

앞선 '모노노아와레'에서는 질서를 지키고 남에게 폐를 안 끼치며 이타적이기까지 한 일본인 개개인을 그렸다면, 이 단편에서는 그런 일본인들이 전체주의라는 집단이 되었을 대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가는 일본인들에 대한 이해도 매우 깊은 듯 하다.


송사와 원숭이 왕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평소 환영 속에서 제천대성 손오공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이 작품을 꿰뚫는 사건은 청나라 건국 전후에 양주성을 함락하면서 자행된 대학살이다.

이를 생생히 기술한 책이 금서가 되고, 이를 찾아서 은폐하려는 정부와, 이를 지켜서 후세에 전하려는 이들과의 쫓고 쫓김에 주인공이 말려드는 이야기다. 

읽어 보면 우리 나라의 비극적인 1980년 현대사와도 중첩이 된다.

매우 강렬했던 작품이었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 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이 단편집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묵직한 작품으로, 2차대전 당시 일본 731 부대의 참상을 과거 시간 여행을 통하여 목격한 유족들의 증언과 실제 인체 실험에 참여했던 퇴역 군의관의 증언, 그리고 이를 부정하는 일본인들과 정치인들, 무관심한 중국인들, 일본 편을 드는 미국 정치인들 등의 증언들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술된다. 사과하지 않는 일본.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거사임을 알 수 있다.  


아, 모처럼 맛 보는 즐거운 독서였다. 

켄 리우는 같은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앞서 언급했던 테드 창과의 비교가 불가피할 것 같다.  

테드 창은 인간미가 넘치면서도, 과학 이론은 정통적으로 철저하게 녹여내고 있어서 비교적 하드 SF 로 분류되는 반면에 켄 리우는 테드보다는 좀 더 문과적이고 좀 더 판타지에 가깝다.  쉽게 말해서 테드 창보다는 켄 리우가 좀 더 쉽게 읽힌다. 

둘 다 따뜻하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말이다. 

앞으로 켄 리우의 작품들이 더 번역되어 출간된다고 한다.

특히 '초한지'의 SF 판타지 버전인 '민들레 왕조기'가 가장 기대된다.

테드 창, 켄 리우, 류츠신, 그리고 여기서 소개하지 않은 마보융.. 중국인 작가들의 약진이 유달리 두드러지는 요즘이다.   중국 국력의 신장과도 무관하지는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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