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새로운 문화 읽기와 부르디외 읽기
문화와 아비투스 - 부르디외와 유럽정치사상 나남신서 241
홍성민 지음 / 나남출판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왜 어떤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비틀즈의 음악을 좋아하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설렁탕을 즐겨 먹는데, 어떤 사람들은 서양식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를 선호하는가? 개인적 취향으로만 여겨졌던 것들이 개인의 타고난 특징이나 선호가 아닌 다른 요인, 즉 사회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문제들에 대한 믿을 만한 해답을 얻으려는 고민이 최근 사회학에서 진지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런 문제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노동자의 푸른 작업복이 경영자의 하얀 셔츠에 대해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가지며, 왜 노동자의 자식은 다시 푸른 작업복을 입는 노동자로 재생산되는가에 대한 단서를 문화적 차원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문화적 선호와 사회적 지위를 연결시키려는 가장 뛰어난 시도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문화적 상징을 통한 개인과 사회의 연결지점을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한다. 「지속성을 지니면서도 다른 것으로 전이될 수도 있는 성향의 체계」로 정의되는 아비투스는, 개인의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개인의 실존의 조건에 근거하는 특정한 계급과 관련된 조건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개인의 성향이란 한 개인의 사적인 삶의 과정을 통해서도 만들어지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계급적 위치에 따라 달리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때의 성향은 한편으로는 구조화되어 굳어진 것이면서도 동시에 끊임없이 구조화를 계속하는 변화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계급적 기반에 의해 만들어지는 문화적 성향은 단순히 개인의 성향과 취향을 결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개인의 문화적 자본으로 작용하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때로는 개인의 학업 성취에도 작용하여 문화적 자본을 풍부히 소유한 계급의 자식이 학교에서 보다 높은 성적을 올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높은 보상을 받게 되면 마침내 문화적 차별성은 계급구조의 재생산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문화와 사회의 관계를 부르디외와 같은 방식으로 읽어내는 것은 분명 새로운 시각임에 틀림없다. 부르디외가 현대 사회학 연구에 던진 문제의식과 영향은 상당히 크고, 그에 따라 그의 이론을 소개하려는 시도 역시 다양하게 있었다. 그 가운데, 저자의 『문화와 아비투스』는 지금까지 출판된 어떤 저서보다도 부르디외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뛰어나다. 저자는 난삽하고 비체계적인 것으로 유명한 부르디외의 모든 저서를 섭렵하여 그 속에 흐르는 일관된 논지를 끄집어 낼뿐만 아니라 이를 아주 쉽고 평이한 언어로 옮기는 데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고 있다. 부르디외의 난해하고 방대한 이론체계를 이렇듯 정리해낼 수 있는 것은 분명 다른 저서에서 볼 수 없었던 이 책만의 장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깊이가 얇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저자는 부르디외의 사상체계가 구축된 지성사적 맥락은 물론이며 동시대 지식인들의 이론과 비교함으로써 그 위상을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비범한 능력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부르디외의 사상체계를 이해하기 위해 지성사적 접근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베르그송(그리고 메를로 퐁티)이 부르디외에 미친 영향과 사르트르에 대한 부르디외의 비판이다. 부르디외에게 있어 개인과 문화, 사회를 연결하는 핵심적 개념은 앞에서 지적한 아비투스인데, 아비투스를 통해 개인의 성향이 형성되는 과정은 「개인의 의식 밖에 있는 사회구조가 의식 안으로 침투하고 나면, 과거의 기억을 담지하고 있던 의식의 내부가 이런 외부적 요인에 대해 일정한 가치관을 형성한 뒤 다시 의식 외부로 반작용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의 의식상태는 정지된 사물이 아니라 진행과정이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에 대한 파악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베르그송의 「의식의 흐름」이란 개념에 맞닿아 있는 생각이다. 이처럼 시간의 개념을 단순히 과거에서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가는 일차원적 인식이 아니라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동시에 담는 것으로 인식한 베르그송의 인식론을 받아들이면서, 부르디외는 개인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전제된 경우에만 행동을 하게 된다는 상황적 인식으로 발전시킨다. 이것은 극단적 개인주의의 입장에 서서, 개인의 행위가 과거의 상황이나 세계에 대하여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 사르트르는 물론이며 모든 목적론적, 합리주의적 설명을 극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부르디외의 사상체계를 구축하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 학자는 맑스이다. 저자는 맑스와 부르디외를 정치학적으로 읽으면서, 맑스의 물신숭배 개념을 부르디외의 상징적 권력과 비교하여 두 사람의 공통된 문제의식을 찾고 있다. 저자는 두 사람이 모두 인간들 사이의 지배구조를 중심 문제로 삼고 있으면서도 맑스가 객관적 사회분석을 통해 밝힐 수 없었던 부분을 부르디외는 분석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즉, 맑스의 물신숭배는 사회적 세력관계에서 비롯된 물질적 지배가 이데올로기의 지배로 나타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는데, 부르디외는 이 둘 사이의 괴리를 인식하고 「정치권력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도록 만드는 과정에 문화가 어떻게 개입하면, 그것이 사회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재생산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르디외는 경제적 구조와 의식의 상관관계를 연결하려 했던 맑스와는 대조적으로 의식과 행위를 매개하는 문화를 연구함으로써 맑스의 이론을 보완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저자는 이해한다.


  물론 저자가 무비판적으로 부르디외를 받아들이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부르디외의 동시대인인 푸코와 비교하여 부르디외를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정당한 인식으로 생각된다. 특히, 권력 개념에 대한 부르디외와 푸코의 비교는 이 책에서 가장 즐거운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비교에서 저자는 푸코의 권력 개념에 대한 부르디외의 문제제기가 가진 허점을 집어내고 오히려 부르디외가 제시한 권력개념의 한계를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 부르디외가 지나치게 물질적 조건을 강조했다는 것이나 부르디외의 권력 개념에서 중요한 설명변수로 등장하는 인지구조의 애매모호함을 지적한 것에는 대부분의 독자가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부르디외와 푸코에 관한 저자의 인식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푸코의 역사적 접근이 지닌 장점을 살려 푸코의 생체권력과 부르디외의 상징적 권력이 대립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보완적일 수 있음을 주장하는 부분이다. 즉, 푸코의 분석에서 나타난 주체화의 과정이 사회적 주체가 스스로 자아를 형성시켜 가는 점에 주목한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과 접목될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설득력 있게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이 지닌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두 가지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그 하나는 부르디외의 문화연구에 대해 갖는 의문이고, 다른 하나는 저자의 부르디외 읽기에 대해 갖는 문제제기이다. 부르디외의 핵심적인 개념은 그의 저서를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파악하듯이 아비투스의 개념이고 이 개념은 저자도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애매하기 그지없는 개념이다. 부르디외가 제시한 개념의 풍부한 의미를 조금 희생시키고 단순화하여 개념의 명료성을 얻고자 한다면, 이 개념은 개인의 실존적 조건(가령, 계급)이 성향을 결정하고, 이 성향에 따라 행동이 일어나며, 그 결과 행동은 하나의 구조로 표현됨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구조는 끊임없이 재구조화되는 가변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개인의 성향과 행동이 일단 구조화된 이후 이를 다른 구조를 바꾸어가도록 만드는 동인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는 많은 기존의 문화연구를 접하면서 가졌던 의문, 즉 어떤 경우에 한 문화구조가 지속성을 갖고 어떤 경우에 변화의 계기를 갖게 되는가를 부르디외를 읽으면서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부르디외의 방대하고 난해한 글들을 읽어낸 방식에 대해서는 앞에도 지적했듯이 놀라움과 칭찬으로 맞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을 모두 읽고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든 생각은 과연 부르디외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었다. 부르디외를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학자로 여기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저자의 부르디외 읽기가 가져온 조금의 당혹스러움을 피하기는 힘들 것이다. 저자는 일관되게 부르디외를 철학자로 혹은 정치학자로 읽으려고 애썼고, 그 결과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음은 분명하다. 저자가 왜 부르디외를 이런 식으로 읽으려하는지에 관해서도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다. 아마도 저자는 가장 프랑스다운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부르디외를 프랑스 밖의 상황에서 어떻게 읽어야 그 활용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가를 고민한 듯하다. 「인간 행위의 아비투스적 속성은 개별 사회구성체를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보편적 담론 속으로 뭉뚱그릴 수 없다」는 염려를 저자는 하고 있고 그 해결책이 프랑스라는 사회의 독특성을 한껏 담고 있는 그의 이론을 프랑스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회학이 아닌 철학과 정치학의 눈으로 부르디외를 읽어야 했을 것이다.


  부르디외를 철학으로 읽든 정치학으로 읽든, 그것이 오독이 아닌 이상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르디외를 부르디외로, 즉 사회학자인 부르디외를 사회학의 눈으로 읽지 않음으로써 그가 강조하려고 했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면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당할 것이다. 부르디외를 사회학의 눈으로 읽지 않음으로써 나타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계급문제에 대한 무관심이다. 부르디외가 보기에, 개인의 일상적 생활에서 아비투스를 통해 문화적 성향을 결정하는 개인의 실존적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인의 계급적 배경이다. 동시에 개인의 아비투스에서 문화적 성향이 달라짐이 의미를 갖게되는 것도 개인의 문화적 자본이 이것에 의해 결정되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문화적 자본으로 전화되어 사회의 계급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게 된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부르디외의 방대한 저서를 섭렵한 저자가 유독 이 문제와 관련된 글들에 대해서만 정당한 관심을 돌리지 않음으로써 그는 부르디외를 사회학적으로 읽었을 때 얻었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소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부르디외와 그의 새로운 사회와 문화인식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수립한 것으로 평가되는 현재의 한국상황에서 다음 과제는 사회적 민주화와 문화적 민주화일 것이다. 아비투스의 정상화를 통해 문화권력을 폭력으로부터 민주화시키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할 새로운 과제이고, 이에 대한 중요한 시사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새삼 불러보는 로자 룩셈부르크
나는 지배받지 않는다
마리아 자이데만 지음, 주정립 옮김 / 푸른나무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로자 룩셈부르크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다. 90년대 초반 급작스런 사회주의 몰락에 따른 정신적 충격과 긴장 속에서 사회주의가 몰락하게 된 정치적 원인을 분석하고 있던 필자는 레닌주의 당이론에 대한 세련되고 날카로운 비판자로서 로자 룩셈부르크를 처음 대면했다. 베른슈타인과의(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당의 의무) 마르크스 수정주의 논쟁(룩셈부르크의 사회개혁이냐 사회혁명이냐), 레닌과의 당이론 논쟁, 스파르타쿠스단,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암살. 이러한 것들이 필자에게 남아있는 로자에 대한 인상이다.
한 혁명가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그의 사상과 열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인가를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때론 화려한 이론 뒤에 숨어있는 어두운 이야기들. 강철같게만 보이는 한 혁명가의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 등. 로자 룩셈부르크의 전기인 ‘나는 지배받지 않는다’는 이제껏 필자가 주목하지 못했던 이러한 점들을 보여준다.

당시의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핸디캡이라는 핸디캡은 다 가지고 살았던 로자 룩셈부르크. 그녀는 미움받는 유대인이였으며, 가정에서 뜨개질이나 하고 애들이나 키우는 것이 여성의 본분 그리고 천성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에 정열적인 정치활동을 했으며, 15세 연하인 클라라 체트킨의 아들 코스챠 체트킨과 열애했으며, 다리를 절뚝거리는 불구였으며, 왕권신수설을 굳게 신봉하는 빌헬름 2세 치하에서 코뮤니스트였고, 조국 폴란드는 강대국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학대받고 있었다.
프로이센 군인들에겐 늙은 갈보라고 불리었던 로자 룩셈부르크, 혁명이라는 악의 유혹을 퍼뜨리는 갈리시아의 유대인을 추방해야된다고 떠들어대던 독일의 우익 보수언론들의 마녀 사냥식 지탄. 로자의 첫 애인이었고 그녀와 더불어 폴란드왕국 사회민주당의 대표자이자 창설자인 레오 요기헤스에게서 받아야 했던 봉건적인 남성 우월주의의 억압. “당신은 고압적이고 노골적으로 지시해대고 있어요. 아돌프하고 이러저러해라. 라브로브를 찾아갈 때는 이러저러하게 처신해라, 이것을 준수해라, 저것을 준수해라, 이것들 모두를 생각하면 불쾌감과 피곤, 허탈, 불안이라는 지울 수 없는 인상만 얻게 되는군요.”
또한 로자는 자유로운 학문적 연구와 활동을 위해서 스위스 쮜리히로 가야만 했다. 1893년 유학시절 쮜리히에서 열린 사회주의 인터내셔날 제3차 총회에서 폴란드 왕국 사회민주당의 대표자라는 로자의 자격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심지어 폴란드 사회주의당은 그녀와 레오 요기헤스, 율리한 마르흐레브스키가 이끄는 폴란드 왕국 사회민주당이 짜르정권의 비밀경찰 조직이라는 전혀 근거 없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로자는 자신의 대표권을 주장하기 위해 열정적인 연설을 하여 각국 사회주의 지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권위에 맞서야 했던 로자. 레오 요기헤스와 함께 그녀는 플레하노프의 권위에 단지 순종하여 따르는 것만으로 혁명의 열정을 식히지 않았고 폴란드 왕국 사회민주당의 독립을 지키기에 힘썼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러시아 볼셰비키의 지부로 행동해서는 안될 것입니다.”(레오 요기헤스가 감옥에서 스파르타쿠스 단원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그러나 그녀와 레오 요기헤스는 플레하노프의 비신사적인 비난을 들어야 했을 뿐 아니라 그가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는 로자와 레오를 무너뜨리기 위해 편협되고 옹졸한 평가절하와 비난이 담겨졌다.
자신의 신체적 핸디캡을 감추기 위해 옷입기에도 신경을 써야했던 그녀는 한마디로 당대의 사회모순을 온몸에 떠안아 그것을 넘어서며 살아가야만 했다. 그녀가 고등학교 졸업 후 남긴 고백은 이러한 그녀의 실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내 이상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사회질서이다. 그것을 추구하면서, 그리고 이러한 이상의 이름으로 나는 언젠가 증오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베른슈타인, 레닌과의 화려한 논쟁의 이면에는 그녀가 겪어야 했던 삶의 아픔들과 고통이 있었다. 부르주아의 탄압보다 더 힘들게 했던 소위 동지에게서 받은 억압과 오해. 남성우월주의와 봉건적 권위주의 성향이 강한 다소의 마르크스주의자들. 권력욕과 명예욕에 불타던 혁명가들. 화려한 이론의 뒷 이야기들은 자주 더러운 것들이며, 그것에 의해 그녀는 가장 힘들어하고 고뇌했는지도 모른다.
망명차 머무르던 핀란드의 쿠오칼라에서 역시 망명생활을 하던 레닌과의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만남. 그녀는 자주 레닌과 만남을 가졌고, 특히 당조직 문제에 있어서 그녀는 이미 레닌과는 무척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녀는 자기 논문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조직문제」에서 레닌의 당이론을 메마른 야경꾼 정신이라 비난했다. 그녀는 러시아 혁명이후 진행될 볼세비키당의 관료화 독재화를 예견하며 다음과 같은 경고를 했다. “진정으로 혁명적인 노동운동이 범하는 오류는 가장 우수한 중앙위원회의 완벽성보다도 역사적으로 훨씬 더 풍요롭고 귀중한 것이다.”
쿠오칼라에서 벌써 레닌과 로자는 분열하고 있었으며, 러시아 혁명과 함께 하기 위한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의 봉기 역시 실패함으로써 쿠오칼라에서 시작된 레닌과 로자의 분열은 회복할 기회를 완전히 잃게된다. 그리고 실패자인 로자의 사상은 한 동안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녀의 사상이 필자에게 다시 다가오는 것은 승리자 볼셰비키의 패배가 당시 패배자인 로자의 사상을 새롭게 조명해주는 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어쩌면 역사는 승리자의 담론을 서술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로자의 사회주의든 레닌의 사회주의든 모두 패배해버린 오늘날의 역사적 국면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의 삶과 사상을 다시 생각해본다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하고 질문해본다.

“양쪽 끝에서 타들어가는 양초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그녀의 말과 그녀의 운명적인 삶. 로자 룩셈부르크가 걸었던 삶과 혁명활동, 그리고 그녀가 맞이해야 했던 죽음을 보면 몽테뉴가 테르모필레 전투에 남긴 글귀가 떠오른다.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이 부친 다리우스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정벌하고자 나섰다. 25만 명의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바다와 절벽으로 배수진을 치고 싸웠던 7000의 그리스 연합군은 예상외로 잘 맞서 싸웠다. 배신자의 안내로 페르시아군은 절벽으로 올라오게 되었고, 스파르타인 레오니다스는 군대를 대부분 해산시키고 직속부대인 300 명의 스파르타인과 소수의 군인들만 데리고 최후의 결전을 할 작은 언덕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최후의 일인까지 싸웠고, 전멸했다. 헤로토투스에 의하면 그들은 칼을 놓친 후에는 손과 이로 싸웠다고 한다. 그들은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고향으로 보냈으며 그것이 그들의 묘비명으로 남게 되었다: “낯선 이여, 우리는 스파르타인들이 기대했던 대로 행동했고 이제 여기에 묻혔노라고 그들에게 전해주오.” 이들의 죽음은 그리스인들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불러 일으켰고 이것은 그 이후 살라미스 전투와 플래테 전투에서 거둔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는 30 년 안에 강력한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테르모필레(300 인이 전원 전사한 유황온천이 있는 절벽)전투를 떠올리며 몽테뉴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승리에 필적하는 성공적인 패배가 있다.”

인간다움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에요. 그것은 확고하고 명쾌하며 명랑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래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명랑하다는 것을요. 흐느끼는 것은 약하다는 표시예요. 인간답다는 것은, 꼭 그래야 한다면 자신의 전 삶을 운명의 거대한 저울에 기꺼이 던져버리는 것을 의미해요.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화창한 날을 맞을 때마다, 아름다운 구름을 볼 때마다 그것들을 즐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로자가 1916년 12월 그녀의 옥살이를 돕던 마틸데 부름에게 보낸 편지)

로자 룩셈부르크여!
내 이상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사회질서이라면,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이 조건이 되는 그러한 미래사회에 있다면, 그리하여 꼭 그래야 하기에 내 자신의 전 삶을 운명의 거대한 저울에 기꺼이 던져버려야 한다면, 나도 당신처럼 이러한 이상의 이름으로 증오하는 법을 배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증오하지 않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것인지?

로자가 활동하였고, 필자가 유학하였던 독일 베를린시에는 해마다 로자가 서거한 날이면 유대인이자 폴란드인인 그녀의 죽음을 기념하는 사람들이 있다. 20세기말을 사는 독일인들에게 로자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길래 그들은 그녀를 추모하는 것일까 하고 질문해 보았다. 승리에 필적하는 패배를 거둔 자에 대한 무관심과 우리의 편향된 역사인식이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코모리 요우이치 외 지음, 이규수 옮김 / 삼인 / 200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셔널리즘은 진부하지만 영원한 話頭다 역사교과서 개정운동으로 나타난 일본의 自由主義史觀硏究會의 동조자들의 발언은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민감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우리의 눈에는 국수주의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전전의 제국주의 일본을 부활시킬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우선 묻고 싶으며, 그것을 일본의 대중들이 어떤 의식 속에서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우리가 자유주의사관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자행한 일본군의 잔학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들, 식민지 조선에 대하여 좋은 일도 했다는 소위 망언들, 국수주의적인 냄새가 짙게 풍기는 일본문화 우위론적 언급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감정을 더욱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단지 역사학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임을 생각한다면, 일본 내에서도 폭 넓은 분야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반박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인상을 주고 있다.

논쟁의 타당성을 떠나서 자유주의사관에 동조하는 사람들이나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나 공통적인 것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관점을 서구 중심적인 역사주의에서 벗어나 자아의 행위에 대한 인식론적 관점으로 옮겼다는 점일 것이다. 즉 이것은 對自的 자아로서의 역사에서 卽自的 자아로의 역사적 관점의 이동이라 할 수 있다. 근대화의 의미를 서구화와 동일시하여 온 지금까지의 고정된 인식의 틀을 벗어나고 지식과 권력이 상호 담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왜곡된 편견을 아무런 의심 없이 수용한 것을 반성하면서, 역사를 주체적인 입장에서 보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움직임의 반영이 동아시아적 담론이나 유교적 가치 논쟁으로 나타났으며, 일본의 경제가 활황을 보일 때 서구에서 유행하였다가 경제의 쇠퇴로 자취를 감춘 日本人論 또는 日本文化論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는 것을 먼저 인지하여야 한다. 지난 3세기 동안의 세계사를 특징지어 온 서구와 비서구간의 불평등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관계가 역전되지 않는 한 이러한 담론들은 단지 무력한 것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보수세력이나 권위주의세력에 악용되기도 하는데, 자유주의사관의 동조자들이나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의 성격이 그러하다고 보여진다.

자유주의사관론자들이나 그것을 반박하는 사람들 양 진영에 아쉬운 것은 현재와 같이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논쟁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일본과 동아시아를 포함한 근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들의 논쟁에만 그쳐 자기목적적인 논리가 되는 것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구의 역사인식에 대한 편견을 탈피하고자 제기되었던 오리엔탈리즘이 현실적인 상황과 대안의 부재로 인하여 소멸되어 버린 것에서도 우리는 대안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어떤 입장을 수용하는가는 우리가 취사선택할 문제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이해관계가 있는 입장에서는 대중매체의 감정적인 입장을 벗어나 객관적 위치에서 자유주의사관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싶다. 자유주의사관이 일본의 입장에서는 국민국가의 아이덴티티를 위한 하나의 가교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의 입장에서 무조건적으로 비판만을 할 수는 없으며 이 기회에 자유주의사관이 주장하는 논점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라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