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공산당 선언] 이 제기하는 문제
0. 이 텍스트의 제목은 [공산주의당 선언] 입니다. 흔히는 [공산당 선언]으로 얘기가 되기도 하고, ‘당’이라는 말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공산주의자 선언]으로 이야기하고 하죠. 또는 [공산주의 선언]으로 말하기도 하고. 그런데, 맑스가 글의 서두에 공산주의라는 유령에 당이라는 실체를 부여해주고자 하는 의미로 이 글을 쓰고 있기에 우리는 공산주의당 선언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 당시 맑스가 ‘당 PARTY'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당‘에 대한 관념은 맑스 사후에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파티라는 말은 사실 부분들의 집합이라는 의미일 텐데, 그 당시 맑스는 그러한 말을 공산주의적 의견을 가진 모든 부분들, 모임들에게 붙여주고 싶었던 거 같구요. 그래서 맑스 당시의 당이라는 표현과 현재의 당에 대한 우리의 관념 간에는 격차가 존재한다고 생각이 드네요.
1. 저작선집에서 다루어진 첫번째 서문인 1872년 독일어판 서문에서 맑스는 [선언]에서 개선될 부분을 몇 가지를 얘기합니다. 특히 2절 뒤에 실린 혁명적 방책들이 시대적 변화 속에서 낡았음을 말합니다. 그 이유로 몇 가지를 들고 있는데, 대공업의 엄청난 발전과 이와 함께 전진된 노동자 계급의 당 조직, 그리고 빠리꼬뮌의 경험을 통해 "노동자 계급이 기존의 국가 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동시킬 수는 없다"는 것.
세 번째 문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 같은데요. 국가기구를 장악하는 것이 의미없음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좀더 정확한 의도 즉 국가소멸을 목적으로 하는 계획적인 그룹이 국가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당시, 즉 맑스가 서문을 쓸 당시에 맑스가 강조하고자 했던 정치적 관점이 어떤 것인지를 향후에 고찰해봐야 할 것.
어쨌든 [독일 이데올로기]와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맑스의 전략의 중요한 부분은 어쨌든 당시의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정향되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될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맑스의 정치학의 주요한 측면 중의 하나를 저는 현실주의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은 맑스 자신도 누차 강조하는 바이기도 하죠. 현실적인 조건에서 혁명으로 향해가는 도정에서, 국민국가들의 본격적인 형성기에 맑스가 취할 수 있는 혁명전략의 상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에 그리고 그러한 노동자국가들을 국제적으로 연결하는 것에 방점이 취해졌다는 것, 그것인 바로 인터내셔날(INTER-NATIONAL 간 - 국가)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이 드네요. 본문상에서도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내용상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상 처음에는 일국적일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자국의 부르주아지를 끝장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에 와서 문제가 되는 그러한 부분을 사고할 때 중요한 건 다시금 "현실주의"라고 생각이 드네요. 현실적 조건 속에서 맑스의 사고를 재평가하고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겠죠. 현재의 일국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상대해야 하는 자본의 힘이 단지 일국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일국적 관점을 채택해서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운동을 전개해야만 하느냐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문제제기들 속에서 맑스 사유의 낡은 부분과 새롭게 사용될 수 있는 부분이 가려질 것이니깐요.
2. 1882년 러시아어판 제2판 서문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지적된 것은, 맑스가 그 동안 간과해왔던 기존의 공동체적 관계에 대한 인정입니다. 러시아의 오브쉬치나라고 불리는 공산주의적 공동점유가 자본주의적 생산에 맞설 수 있는 힘이 될 것인가를 맑스는 묻고 있습니다. 즉 서구의 역사발전을 이루고 있는 해체과정으로 나아갈 것으로 이 공동체를 사고해야 할 것인지, 즉 해체될 낡은 관계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힘으로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겠죠. 그러나 중요한 점은 맑스가 이러한 공동체 문제를 고립적으로 러시아의 문제로만 사고하는 것은 아니고, 서유럽의 혁명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의 문제로 사고하면서 양자가 서로 연결된다면 러시아의 공동체적 관계는 공산주의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1890년 독일어판 서문에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를 맑스 자신이 설명하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간략히 말하면 1847년에 사회주의 운동은 부르주아 운동이었고, 공산주의 운동은 노동자운동을 의미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노동자들의 해방은 노동자 게급 자신의 사업이어야 한다”를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에,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은 공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운동 외부에서 교양있는 사람들에게 후원을 요청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하네요.
4. 지배계급이 자신의 반대자로 낙인찍은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에 대해 맑스와 엥겔스는 하나의 세력으로서, 자본주의와 관계 속에서 그러한 세력이 처한 조건과 힘을 구체화시켜주기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5.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이다라는 말로 본문은 시작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너무나도 중요한데, 많은 역사서들은 이러한 계급투쟁의 역사를 그리기보다는 승리자의 역사로, 자본 주체성의 역사로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렇다면 계급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맑스의 계급개념은 사회학적인 실체적이고, 계량적인 계급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사회를 수량화하고 계량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범주화를 시도하면서, 실제로는 끊임없는 실천의 관계에 놓인 것을 정태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사회학적인 계급개념인데요,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은 계급을 역사적인 개념으로 파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상대되는 계급개념을 우리는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계급이라는 말을, 경험이라는 정제되지 않은 소재와 의식의 측면 모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며 외관상 연관이 없어 보이는 수많은 사건들을 통합하는 역사적 현상으로 이해한다. 나는 계급이 역사적 현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나는 계급을 ‘구조’나 심지어 ‘범주’로서가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 실제로 발생(happen)하는(그리고 발생해온 것으로 입증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더욱이 계급 개념은 역사적 관계라는 개념을 필요로 한다. 다른 어떠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계급은, 만약 우리가 어떤 주어진 시기에 그것을 정지시켜놓고 그 구조를 해부하고자 한다면 분석망을 빠져나가는 유동적인 어떤 것(a fluency)이다.
… 만약 우리가 어떤 주어진 시기에 역사를 정지시켜놓는다면, 거기에는 계급은 없고 단지 다양한 경험을 지닌 수많은 개인들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사회변화가 진행되는 적당한 기간에 걸쳐 이 사람들을 관찰하면 우리는 그들의 관계와 관념 그리고 제도에서 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 계급은 그들 자신의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규정되며 이것이 바로 계급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정의이다.”
6. 맑스와 엥겔스는 이 글에서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역할을 정당하게 평가했다고 서문에서도, 그리고 본문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역할은 인간을 과거의 봉건적 구속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주었지만, 그러한 자유는 오직 상업적인 자유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역할은 종결되겠지요.
현대에도 그러한 자본주의의 혁명적 역할이 일부지역에서는 나타나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해본 것은 인도의 경우인데요.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가장 강력하게 붕괴시키고 있는 힘이 바로 자본주의적 힘이거든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직업과 계급만을 고수하면서 평생 살아가고자 하고있는 상황에서, 그런 것들이 산업의 발전에 장애가 되자 그런 것들을 파괴하려고 하는 힘이 자본주의적 관계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힘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문제가 나타납니다. 자본주의적 관계가 인도에 잘 침투하길 바래야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파괴의 힘을 자본주의적 관계의 측면에서만 사고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외관상 자본의 힘으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인간들 간의 교류의 증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본이 그러한 것을 상당부분 강제해왔고, 그 결과 기존의 관계들이 파괴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에는 인간들 사이의 교류 속에서만 자본은 자신의 이윤을 증대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자본은 그런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자본관계는 부정해야 할 것이지만, 그러한 자본관계가 점유하고 있는 인간능력 마저도 부정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자본을 그렇게 해외로 밀어붙이는 힘의 원천 역시도 인간교류의 증대를 통한 노동계급의 역량의 성숙에서 발견해야 하겠지요. 지금 현재 인도에서 카스트제도를 붕괴시키는 힘이 외관상 자본주의적 세력의 힘일 지언정, 그것을 넘어서는 교류의 힘의 증대가 진정으로 인도의 고전적인 억압관계를 붕괴시킨다고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본의 지구화를 넘어서는 운동의 지구화 속에서 인도의 고전적 억압의 문제와 함께하려는 움직임은 더욱더 커졌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러한 두 가지 지점에서 인도의 카스트문제를 봐야하지 않을까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앞서도 언급되었듯이, 맑스가 러시아공동체에 대해 말하면서 중요하게 언급한 것은 러시아공동체자체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서유럽혁명과의 연결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아야겠지요.
7. 부르주아지들이 공산주의자들이 가족의 폐기를 주장하면서 더 나아가 부인공유제를 주장한다는 것에 대해, 맑스는 현대 부르주아가족이 근거하고 있는 바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신생활과 공인된 매춘이라고 말하면서, 부르주아는 부인을 단지 소유물로서, 생산도구로서 사고하고 있다고, 그리고 부인공유제는 부르주아지의 난잡한 사생활 속에서 그리고 부르주아지가 만들어내는 공식적 매춘 속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응수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를 사적소유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사적소유의 폐지를 통해 비공식적인 매춘과 공식적인 매춘을 소멸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을 상품으로 보는 관계의 폐지를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독신생활과 공인된 매춘으로 유지되는 사회관계의 폐지를 통해 맑스는 매춘관계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말은 지금까지의 정통적 맑스주의의 언어 속에서는 모든 남성우위적 노동자계급운동 속으로 모든 여타운동들이 환원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신사회운동의 출현이후에 많은 운동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의한 운동을 추구하는 분리운동으로, 계급과의 관계단절로 나아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초적 운동들에 대한 명확한 반대를 해야하지만, 그것이 계급문제와의 단절로 나아가서는, 정체성 운동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자에 관해서는 남성들 자신이 스스로를 자본의 명령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계급관계를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한 위치가 되는, 어떻게 보면 스스로 자본가가 되는 방향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은 남녀관계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힘입니다. 자본은 남녀관계를 평등하게 만들고자 하지 않습니다. 평등한 관계는 착취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않지만, 불평등한 지배관계는 자본이 보이지 않는 착취(가사노동과 같은)를 가능케하기 때문에 자본은 그러한 관계를 누구보다 선호합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가부장제를 누가 가장 많이 지지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되겠지요. 따라서 마초적인 운동을 지향하는 남성들은 또 다른 자본가가 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분리를 추진하는 정체성 운동들에 대해서도 불가피하게 비판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기존의 노동운동이 가진 억압성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위에서 상당부분 이야기가 진행되었지만 우리를 옭아매는 가장 커다란, 모든 사회관계를 자신으로 환원시키는 허리케인 같은 존재가 바로 자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본과 대결하지 않고는 우리 각자가 놓인 관계(가령 남녀관계)의 해결은 불가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이버맑스]라는 책의 1장이 그런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8. 현재의 사적소유의 폐지를 부르주아지는 개인적 소유의 폐지로, 더 나아가서는 개인들의 폐지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맑스는 개인적 소유의 폐지가 아닌 사적 소유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이며, 실제로 현행의 자본주의적 관계에서 개인들은 개인들의 대립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지않느냐고 하면서, 사적 소유의 폐지를 통해 계급적 차이들을 폐지하고, 각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연합체를 만들어내고자 한다고 주장합니다.
9. 맑스는 당시의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비판을 행한 후에 마지막 장에서 각 나라별로 구체적인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공산주의 혁명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간략하게 전개합니다. 역시 현실주의적 측면을 볼 수 있겠죠.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기 위해서 공산주의자들은 민주주의정당들과도 결합해야 하고, 합의해야한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운동은 소유의 문제를 중심으로 제기되어야 하며, 그리고 결국에는 공산주의 혁명으로 가야함을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