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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정신 의학 에세이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가 청소년을 위해 쉽게 풀어쓴 정신 의학에 관한 모든 것 ㅣ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하지현 지음 / 해냄 / 2012년 6월
평점 :
제목에는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이라는 말이 들어있지만, 청소년들이 흔히 겪는 성장통이나 마음의 변화를 위로해주는 책과는 거리가 먼 책이다. 또 '에세이'라기에 정신과 의사가 그간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이나 사례들 위주로 쓴 글이 아닐까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폭이 뭐 워낙 넓긴 하지만.
즉 이 책은 신변잡기적이거나 감상적인 얘기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정신건강의학과적 병리 현상들을 소개하고 알기쉽게 설명해주는 쪽에 중점을 두었는데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란 얼마나 궁금하고 미지의 공간이 많은 영역인가. 지은이는 정신 의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정신과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서, 기억이나 수면과 같은 뇌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여러 주제들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낸다.
1장의 시작인 '정상과 비정상은 어떻게 구분할까?'부터 내가 평소에 관심을 갖던 주제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정상인지 확인할 때 가장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분야'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저자의 표현에 정말 공감한다. 사실 정신은 육체와 달리 '정상성'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까. 엑스레이를 찍을 수도, 피 검사나 조직 검사를 할 수도 없는, 딱히 진단법이라 할 것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도 많고, <오체불만족>의 저자처럼 팔다리가 없어도 정신적 균형감각을 훌륭히 갖춘 사람도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정상인지, 정상이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들을 제시한 저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자신이 지닌 정상성의 장점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라"는 것이다(쬐끔 싱겁게 느껴지는 것은 '청소년용'이라선가?^^;).
또 저자는 한 발 나아가 '정상이라고 다 건강할까?'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건강함과 정상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개념이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건강함에 대한 정의는 매력적이다. 밑줄을 그어둔다.
"말하자면 건강함은 정상이므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수준을 가리킨다...(중략)... 적극적으로 집중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리고 최대한 능력을 낼 수 있는 '몰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자주 몰입하고 이 상태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건강한 것이다."(24쪽)
앞으로 친구가 "건강하게 지내니?"라고 안부를 물으면, "응!"하고 기분좋게 대답하면서 속으로 "자주 몰입하고 그 상태를 오래 지속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회복력, 성격,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나를 보호하는 무의식적 방어기제, 뇌의 기능에 대해 설명한 1,2부가 지나면 3,4,5부에서는 본격적으로 고장 난(?) 정신에 대해서 다루는데 이 부분은 더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우울증, 망상, 공황 장애, 강박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ADHD, 거식증, 자폐증... 청소년들을 위한 정신의학 소개서라는 책의 목적에 맞추어 한 주제에 대해서 깊이있게 파고들어가기보다는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서 이야기해준다. 각 증상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참 잘 해 놓았다. 공황 장애라면 공황 장애의 증상,공황장애의 원인, 공황 장애에 대처하는 자세 이런 식으로... 이 명료함이 이 책의 장점이고 살짝 아쉬움이 남는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의 본 목적이 청소년들에게 인간의 마음과 정신 병리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해결해 주는 데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훌륭히 제 사명을 다한 셈이다(맛보기로는 아쉬워 더 먹고픈 마음이 간절한 독자라면 각 증상별로 더 깊이있게 다룬 책들을 찾아보면 될 것이고.^^;).
물론 청소년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이 앎은 유용하다. 결국 정신 의학이라는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 주고, 나의 마음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