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권하다 - 삶을 사랑하는 기술
줄스 에반스 지음, 서영조 옮김 / 더퀘스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들어가는 글’ 앞장에 있는, 스물일곱의 라파엘로가 바티칸궁전의 도서관 벽에 그렸던 <아테네 학당>을 본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낯이 꽤 익지만, 이렇게 세세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세와 표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처음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디오게네스...... 철학책 속의 이름들이 살아있는 사람이 되어 내게 말을 거는 순간이다.

 

지은이 줄스 에반스는 이 그림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그림 속에 깃든 질서와 무질서의 균형을 사랑한다’고 했고, 이 그림에 대한 그의 영감이 이 책을 탄생시킨 밑바탕이 된 것 같다. 각기 개성이 뚜렷하고 저마다 급진적인 사상을 전개했던 다양한 유파의 철학자들이 바티칸궁전의 벽에 모여있는 이 그림이 그토록 그를 사로잡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원인지 시장인지, 아미면 어느 이상적인 도시의 회랑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모여서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하루하루가 신성함과 맞닿는 곳이다. 이 그림을 바라보노라면 슬슬 궁금해진다. 나도 저 토론에 끼면 어떨까? 아테네학당에서 공부하고, 위대한 스승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히’ 그들에게 말을 걸면 어떤 기분이 들까?”(13~14쪽)

 

그의 이런 상상은 ‘아테네학당에서 하루쯤 청강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낳았고, 이렇게 그지없이 사랑스러운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이 학당의 교장인 소크라테스의 아침조회시간이 끝나면 오전수업시간에는 에픽테토스와 무소니우스 루푸스, 세네카를 만나고, 점심시간에는 합리적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와 점심을 즐긴다. 오후수업 1부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피타고라스, 2부에는 디오게네스와 플라톤, 플루타르코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듣고 하루 수업이 다 끝나면 다시 교장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잘 떠나는 기술’에 귀 기울이며 졸업한다.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하루가 아닌가.

 

너무나 다채롭고 풍성한 이 ‘1일 학당’의 수업을 사흘 동안 아껴가면서 수강했다. 기뻤다. 앞으로도 종종 들러서 힘을 얻고 싶은 귀한 수업이다. 철학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오랫동안 비웃음의 대상이었지만 그가 옳았음을 우리는 안다. 이 기쁨은 확실히, 자기계발서적을 읽으면서 얻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대세계에서 가기계발은 현대의 자기계발보다 훨씬 더 야심차고 포괄적이었다. 고대의 자기계발은 심리적인 것을 윤리적인 것, 정치적인 것, 우주적인 것과 관련지었다. 한두 달 정도 실천하다가 금세 새로운 자기계발법이 유행하면 버려질 단기적 해결책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오랫동안 날마다 실천해야 하는 지속적인 삶의 방식이었다.”(34쪽~35쪽)

 

철학은 현실과는 상관없는, 현실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 난해하고 이론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아테네학당에서의 하루를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철학은 단지 추상적 사고과정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고, 사려 깊은 선생님들이 그렇듯 다채로운 예들과 차근차근한 설명으로 철학의 세계로 안내해주는 학교. 교장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 영혼을 얼마나 잘 돌보고 있을까. 그리스 철학자들은 반복적인 운동으로 근육을 강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적 근육’도 연습과 훈련을 통해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철학이 내 정신의 근육이 된다는 것,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꾸준한 정성과 용기와 겸손함이 필요한 길. 하지만 몽테뉴의 말대로, ‘우리 모두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는 걸 믿고, 한걸음씩 계속 나아가고 싶다. 2500년 전 훌륭한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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